추억의 영화노트/1997년 영화노트

첨밀밀(甛蜜蜜) ★★★★★

쭈니-1 2009. 12. 9. 11:36

 

 



감독 : 진가신
주연 : 여명, 장만옥

1997년 6월 30일을 마지막으로 홍콩은 중국으로 소환된다.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의 통치권안에 있었던 홍콩이기에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으로의 소환은 홍콩인들에겐 커다란 충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이민을 떠나고 홍콩은 커다란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의외로 세기말에 홍콩에서 유행하는 장르는 멜로물이다. 암흑가를 소재로한 느와를 거쳐 [황비홍]시리즈의 전통 액션, [동방불패]의 SF무협 등 유행에 민감한 홍콩 영화의 추세로 보아선 좀 뜻밖에 일이다. 왕가위 감독으로부터 시작한 홍콩의 감각적 멜로 영화 붐은 [첨밀밀]에 와서 극에 치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첨밀밀]은 97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비경쟁 부문인 파노라마 부문에 선정되어 세계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으며 홍콩이라는 국호아래 열린 마지막 금상장 시상식에서 작품상등 9개 부문을 휩쓸기도 했다.
[첨밀밀]은 성공을 위해 중국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두남녀의 감각적이고도 슬픈 사랑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여소군(여명)은 낯설은 홍콩땅이 신기하고 당혹스럽기만 하다. 거리엔 자동차가 가득하고 빌딩은 하늘을 치솟는듯하고 사람들은 바쁘기만 하다. 오직 꿈이라고는 중국에 있는 애인 소정을 홍콩으로 데려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뿐인 순진하고 착하기만한 그 앞에 이요(장만옥)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같은 대륙 출신이지만 소군과는 다르게 악착스럽고 약삭빠른 이요. 그는 거부가 되는 것이 꿈이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두 사람은 낯설은 홍콩땅에서 우정을 쌓아가고 결국 하룻밤을 같이 지새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이 사랑이 아닌 우정이라고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결국 소군은 소정과 결혼나고 이요는 암흑가 보스인 표의 도움으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다. 이렇듯 서로의 꿈을 이루지만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낀 두 사람은 결국에는 서로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이요는 경찰에게 쫓기는 표를 따라 소군의 곁을 떠나고 소군 역시 소정과 헤어져 무작정 이요를 찾아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 표는 길거리에서의 사소한 다툼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이요는 불법이민으로 중국에 소환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우연히 소군의 모습을 본 이요는 경찰차에서 뛰어나와 소군을 뒤쫓지만 인파속에서 놓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1995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이요는 두 사람이 함께 좋아했던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TV 프로그램앞에서 재회한다.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그리 특별함을 지닌 영화가 아니다. 두 남녀의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재회하는 라스트까지 멜로 영화의 룰을 철저하게 지켜나간다. 그러나 홍콩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을 생각해볼때 이 영화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주인공들이 중국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이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서로 분리되어 다른 체제를 가지고 발전해온지 벌써 100년 가까이 되는 중국과 홍콩. 이 두 나라는 분명 같은 민족의 같은 나라이다. 그러나 소군이 홍콩에 와서 느꼈던 이질감처럼이나 두 나라의 문화는 너무나 다르다. 열차에서 내려 에스켈레이터 때문에 당혹스러워하는 소군. 물론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언어조차 잘 통하지않는 홍콩에서 소군은 점차 외톨이가 되어간다. 결국 그가 사귄 친구는 같은 중국 출신인 이요뿐. 이러한 상황은 어쩌면 1997년 7월 1일 이후에도 계속될지 모른다. 자유 경제체제에서 돈벌기 쉬운 홍콩이기에 '돈을 벌기위해 몰려드는 중국인들을 어떻게 해야할까?'는 소환이후 홍콩이 치루어야할 첫번째 숙제이다.
두번째는 외국에 대한 홍콩인들의 갈망이다. 이 영화의 대사중 이런것이 나온다. '중국인들은 홍콩에 가기위해 안달인데 홍콩인들은 오히려 홍콩을 떠나고 있다'라고. 공산주의라는 홍콩인들에 대한 두려움은 외국으로의 이민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소군의 홍콩에서의 단 한명뿐인 친척인 이모는 같이 식사한적이 있는 미국인 배우를 평생 그리다가 눈을 감는다. 소군이 잘 알던 창녀는 서양인 영어 강사와 살림을 차렸다가 에이즈에 걸린다. 도피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표는 흑인 꼬마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진가신 감독은 외국에 대해서 그리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이민을 갈망하는 홍콩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렇듯 홍콩반환에 대한 이야기를 가벼운 멜로 영화로 쉽게 풀어나간 이 영화는 스토리 전개면에서도 아기자기함을 과시한다. 두 남녀의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과정이 우연으로 처리되었다면 분명 극적 재미가 떨어졌을텐데 진가신 감독은 그런 것들을 잘 극복하고 있다.
소군과 이요가 처음 만난 곳은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서이다. 낯설은 홍콩땅에서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햄버거 가게에서 소군의 어눌함과 햄버거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이요의 당찬 모습이 잘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이후에도 소군은 이요에게 이용만 당한다. 이요는 소군에게 '내가 널 이용만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넌 왜 맨날 당하기만 하니?'라고 물었을때 소군은 '그러지않으면 넌 날 만나주지 않을테니까. 넌 내 유일한 친구야.'라고 대답한다. 두 주인공의 외로움과 서로에 대한 감정이 잘 나타나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두 사람사이에는 대만 출신 가수 등려군의 존재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중국인들이 특히 좋아하여 등려군을 좋아하면 중국출신이라고 말할정도. 두 사람은 등려군의 테이프 노점상을 같이 차리다 실패함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쌓아올린다. 그리고 실패하던 그날 두 사람은 관계를 가진다. 서로의 길을 가다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소군이 등려군에게 싸인을 받던 날이었고 마지막에 두 사람이 미국에서 재회하는 것도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알리던 TV앞에서였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재회후 마지막에 첫장면으로 내보냈던 소군이 홍콩에 도착하는 장면을 흑백장면으로 다시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제서야 소군이 머리를 맞대고 자던 뒷자리의 사람이 이요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의 천생연분적 관계를 설명하는 이 부분은 매우 인상적인 영화의 마무리였다.
어눌하지만 착한 이미지를 풍기는 여명과 홍콩 최고의 여배우 장만옥의 열연이 너무나도 돋보였던 이 영화는 분명 세기말 홍콩의 걸작 멜로 영화이다.

1997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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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중의 한편입니다. 오랜만에 읽어보니 스토리 라인을 쭈욱 적어 놓음으로써 이 영화의 기억을 새롭게 하네요. ^^  200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