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7년 영화노트

안토니아스 라인(Antonia's Line) ★★★★★

쭈니-1 2009. 12. 9. 11:26

 

 



감독 : 마린 고리스
주연 : 빌레케 반 아멜루이

국내에 소개되는 기회가 거의 없었던 네덜란드 영화 한편이 96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이라는 후광을 등에 업고 국내에 소개되었다.
바로 여성 감독 마린 고리스의 특이한 대하 여성 드라마 <안토니아스 라인>이 바로 그것이다.
82년 <침묵에 대한 의문>으로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고발 형식의 페미니즘 영화로 데뷰한 그녀는 지금까지 페미니즘이라는 한결같은 주제에 매달려왔다.
<안토니아스 라인>은 4대에 걸친 여성 이야기이다.
2차대전이 끝난후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기위해 딸 다니엘을 데리고 고향에 돌아온 안토니아.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척박한 농장에 정착하며 그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펼친다.
이 영화의 특이성은 처음부터 관객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마린 고리스 감독은 안토니아의 어머니 장례식을 희극적으로 그린다. 엄숙해야할 장례식에서 갑자기 시신이 일어나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상도 그 노래에 동참한다. 다니엘의 환상으로 처리된 이 부분은 틀에 박힌 헐리우드나 우리나라에선 상상조차하지 못했을 명장면이다.
안토니아는 타고난 여장부적 기질로 마을의 보수성에 의해 희생되어가던 여인들을 끌어안고 가족, 친구, 연인들로 북적대는 농장에서 삶을 꾸려나간다.
안토니아의 딸 다니엘은 결혼없이 아이를 가지길 원한다. 그녀는 안토니아와 함께 대도시로가 튼튼하고 쓸만한(?) 남자를 골라 아이를 가지고 딸을 낳는다. 다니엘은 또 자신의 딸 테레사의 교사인 라라와 동성연인의 관계로 발전한다.
어릴때부터 신동이라는 소릴 들은 다니엘의 딸, 테레사는 공부와 섹스에 집착하게되고 결국 어릴때부터 같이 자란 농부의 아들 시몬과 결혼하여 사라라는 딸을 낳는다.
안토니아의 성품을 빼닮은 사라가 8살이 되던해 안토니아는 생을 마감한다.
4대에 걸친 여인들의 가족사를 담은 이 영화는 마을사람들을 꼼꼼한 관심과 애정어린 시선으로 감싸안는다. 그러면서도 사회에 뿌리깊은 남성 우월주의 사회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 예로 정박아인 자신의 딸을 노예 취급하는 농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농부의 아들은 자신의 동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한 다니엘에 의해 마을을 떠난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재산을 상속받기위해돌아온 그는 다니엘의 딸인 테레사를 강간하고 그 사실로 인해 마을 청년에게 몰매를 맞고 재산을 노린 남동생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남자에 대한 결코 좋지않는 시선을 보내는 이 영화의 성격은 안토니아 가족들의 성격으로 좀더 구체화 된다.
안토니아는 이웃의 농부와 오랜기간 우정을 쌓고 섹스를 하지만 결코 결혼을 하지 않는다. '내 아들들은 어머니가 필요하오.'라는 그의 청혼에 '난 아들이 필요없어요.'라고 거절하는 안토니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들을 중요시여기는 보수적인 사회에 반발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다니엘은 더 심하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상상도 하지못할 행위를 서슴치않고 한다. 결혼하지않고 아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에 낯선 남자를 골라 유혹하고, 딸아이의 선생님과 동성애까지 나눈다.
테레사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남자를 그저 섹스의 상대로만 느낀다. 그녀는 오랜 친구였던 시몬과의 실수로 아이를 갖지만 그가 유일하게 존경한 남성은 어린시절부터 자신과 지적 대화를 해준 이웃집 은둔자 아저씨뿐.
이렇듯 마린 고리스 감독은 카톨릭 윤리에 빠진 남녀차별주의적 유럽사회를 따갑게 비판했으며, 남자를 싫어하는 여자들의 대하극을 뛰어난 솜씨로 완성했다.
안타깝게도(?) 나도 남자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사랑스러우며 특이하고 무척이나 재미있는 그런 영화이다. 페미니즘 영화이긴 하지만 남성이 보아도 결코 거리감이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수작이다.  

1997년 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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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아주짧은영화평'에 실린이후 '영화노트'에도 실리게된 행운의(?) 글이네요. 덕분에 힘든 타이핑을 하지 않고 복사해서 붙였답니다. ^^  2005/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