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7년 영화노트

붉은 장미 흰 장미(Red Rose White Rose) ★★★★1/2

쭈니-1 2009. 12. 9. 11:26

 

 



감독 : 관금봉
주연 : 조안 첸, 베로니카 입, 조문선

왕가위와 함께 홍콩 포스트뉴웨이브를 이끄는 관금봉 감독. 그러나 이상하게도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은 모두 국내 극장가에서 선보여 주었으나 관금봉 감독의 영화는 좀처럼 극장에서 보기 힘들다. 이 영화 [붉은 장미 흰 장미]도 극장에서 개봉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조용히 창고에서 썩다가 비디오로 관객에게 소개된 작품이다.
84년 주윤발, 종초홍 주연의 멜로극 [여인심]으로 데뷔한 관금봉 감독은 주윤발, 양조위 주연의 [지하정], 매염방, 장국영 주연의 [인지구]와 91년 시카고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장만옥에게 베를린 영화제를 비롯한 많은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했던 [완령옥]등 영상미가 탁월한 영화들로 느와르와 SF무협영화가 성행하던 홍콩영화계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며 작품성을 지켜온 젊은 감독으로 유명하다. [붉은 장미 흰 장미]는 9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여 좋은 평가를 얻어낸 작품으로 1930년대 상해를 무대로한 여성영화이다.
남자 주인공인 젠 바오(조문선)는 영국에서 유학을 한 중국의 현대화를 이끌어나갈 주역으로 꼽힌 젊은 남성이다. 그는 홀어머니에겐 효자였으며, 동생들에겐 자상한 오빠, 형이이었고, 친구들에겐 의리있는 남자였으며, 사회에선 능력있는 젊은이였고, 이웃에겐 도덕적인 이상형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그에겐 두명의 여자가 있었다. 바로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그녀들이다. 붉은 장미 왕교예(조안 첸)는 열정으로 대비시킬 수 있는 그런 여인이다. 그녀는 젠 바오의 친구의 아내였으며, 열정적이면서도 순수한 그런 여인이다. 결국 젠 바오는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에 반해 그녀를 유혹하고 불륜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젠 바오에게 그녀는 애인이었을뿐 결혼할 상대는 결코 아니었다. 그녀가 남편에게 이혼하자는 연락을 했다는 소릴듣고 젠 바오는 차갑게 그녀를 외면한다.
흰 장미 맹연려(베로니카 이)는 순결이란 단어로 설명되는 그런 여성이다. 교예와는 반대로 내성적이며 현실적인 그녀는 젠 바오가 원하는 정숙한 아내형이었고 둘은 사랑이 없는 전략적인 결혼을 한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외형적으로 완벽한 남자였던 남편에 비해 사교적이지 못했던 연려는 점점 외부와 고립되어 갔고 결국 자기만의 세상에 갇히고 만다.
중국이 근대화되어가던 30년대를 배경으로한 이 평범해보이는 멜로 드라마는 그러나 관금봉 감독의 섬세한 영상미와 두 여배우 조안 첸과 베로니카 입의 열연으로 인해 빛난다. 조안 첸은 열정적이며 자유분방하면서도 순수한 왕교예라는 캐릭터를 심도깊게 완성해나간다. 그녀의 열정적인 연기는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사로잡고 있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아왔던([마지막 황제], [죽음의 땅], [하늘과 땅], [저지 드레드]) 미숙한 이미지의 그녀를 잊기에 충분했다.
젠 바오와 왕교예가 헤어지게되는 영화 후반부의 분위기는 베로니카 입이 새로 단장한다. 순결하고 조용한 전통적 동양 이미지의 맹연려. 그녀는 완벽해 보이는 남자 젠 바오에 의해 내팽겨쳐진다. 처음엔 아들이 아닌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시댁 식구들과 고립되고 남편의 외도로 인해 세상과 고립된다. 그녀가 만든 자기만의 공간은 화장실뿐. 하루종일 화장실에 앉아 자기 자신을 내면속에 가두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순결해보이며 안타깝기까지 하다.
영화는 젠 바오가 우연히 왕교예와 만나게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 와서야 남자의 반성어린 독백을 내보낸다.
그렇다면 관금봉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단순히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애증의 관계라고 하기엔 어딘가 모르게 석연치 않다. 젠 바오는 중국정부를, 왕교예는 서양문화를, 맹연려는 중국인민들을 대비시켰다고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는 중국이 근대화되며 서양문화와 자국의 국민들에게 스스로 고립되고 외면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독백 '다음날 젠 바오는 마음을 고쳐먹고 새사람이 되었다'라는 자막처럼 관금봉 감독은 홍콩이 반환되는 1997년의 중국이 새면모를 보여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물론 순전히 내 생각이다.)

1997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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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마지막의 제 멋대로 영화해석은 제가 스스로 잘난척해본 결과물입니다. ^^ 그래도 그럴듯 하죠? 그나저나 이 글을 오랫만에 다시 읽다보니 고나금봉 감독의 주옥같은 영화들이 다시 보고 싶어지는 군요. [여인심], [지하정], [인지구], [완령옥]... 출연배우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가슴이 설레이네요. 관금봉 특별전은 안하려나??? ^^  2005/05/06   
개갱
영화평 8번째줄에 자시 ->자신 덧글에 세번째줄에 고나금봉 -> 관금봉 오타발견요~^^ ㅋㅋ 심심해서..  2005/08/10   
쭈니 감사합니다. 개갱님... 본문의 오타는 고쳤지만 덧글의 오타는 수정이 불가한 관계로 그냥 두었답니다. ^^  2005/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