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영빈
주연 : 이정재, 손창민, 김지연, 오연수, 유인촌
남자들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김영빈 감독. 그가 지금까지 치중했던 액션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김영빈식 멜로에 도전한 영화가 바로 [불새]이다. 이 영화는 제작전부터 큰 화제가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이정재의 출연이다.
[모래시계]에서 비운의 보디가드라는 애절한 이미지를 남기고 홀연히 입대하여 여성팬들을 아쉽게 했던 그가 제대후 첫 영화로 [불새]를 선택한 것이다. 사실 군복무중 차인표, 이휘재 등과 군홍보영화격인 [알바트로스]에 출연했으나 이정재의 매력을 충분히 살려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불새]를 시작으로 활동의 날개를 편 이정재.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실패했다. 원인은 바로 최인호 원작의 소설에 있다.
70, 80년대를 대표했던 작가 최인호. 그의 드라마틱한 멜로소설들은 70, 80년대 영화 흥행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장호 감독과 배창호 감독이 그 시절에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등극하는데에는 최인호의 소설들의 절대적인 힘이 뒷받침해주었다. 그러나 90년대 들며 최인호 원작의 영화들은 추억의 한국영화로 물러섰다. 92년 배창호 감독이 예전의 영광을 뒤돌아보며 만든 최인호 원작의 [천국의 계단]은 완벽하게 흥행에 실패했다. 소위 X세대라 불리우는 90년대의 관객들은 이제 [별들의 고향]식의 멜로 영화들보다는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영화를 찾아다녔고 감각적인 로맨틱코미디나 액션영화들이 흥행을 주도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빈 감독이 먼저속에 묻혀있던 옛날옛적(?) 소설 [불새]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 것은 분명 시대착오적인 실수이다.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는 한 남자의 성공에 대한 야망과 처절한 최후를 지켜보기엔 관객들의 수준이 너무 높아져 버렸다. 김영빈 감독은 해외로케이션에 화려한 영화배경들을 삽입하여 영화의 분위기를 바꾸려했지만 어쩔수없이 이 영화는 구식 냄새가 난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런대로 재미있기도 하다. 먼저 이 영화에서 김영빈 감독은 자신의 취약점을 보완했다. 물론 거기에는 최인호 원작소설의 힘이 컸지만 암튼 김영빈 감독은 남자들의 세계에 치중하다가 벌인 여자들을 그저 눈요기거리로 취급하던 나쁜 습관을 극복했던 것이다. 그의 예전 영화들은 모두 여자들은 들러리였고 눈요기였다. 그의 최고 히트작 [테러리스트]에선 이현세 원작 [카론의 새벽]이 남여주인공의 로맨스에 촛점을 맞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인 염정아를 뒷전에 버려두었고, 최근작인 [나에게 오라]는 아예 윤수진, 지종은등을 눈요기거리 취급을 하였다.
그러나 [불새]는 좀 다르다. 성공을 위해 질주하던 이정재가 잠시 뒤를 돌아보게되는 계기는 재벌2세인 손창민의 애인 김지연 때문이고, 김지연과의 사랑때문에 그는 손창민의 적이 되어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또 한여자 오연수. 손창민의 동생으로 반항적이고 퇴폐적인 그녀는 이정재의 매력에 사로잡히지만 이정재와 김지연의 사랑을 목격하고 사랑했던 이정재를 죽인다. 이렇듯 이 영화에서 김지연과 오연수는 더이상 눈요기거리가 아닌 주인공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로써 등장했고 이것이 김영빈 감독이 가장 크게 변한 점이다.
영화는 분명 80년대 멜로 분위기이다. 그것을 결코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불새]는 80년대 멜로 영화에 대한 김영빈 감독의 아련한 추억과도 같다. X세대의 취향에 맞추어 너무 감각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한 한국영화에 대한 80년대 순애보적인 아련한 추억. 이정재는 [젊은 남자]에서의 퇴폐적 이미지와 [모래시계]의 비운의 최후를 리바이벌하듯 다시 보여주었고 오연수 역시 [게임의 법칙]에서 보여줬던 이미지를 [불새]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비록 시대착오적인 영화이긴하지만 그런대로 재미가 느껴지는 그런 영화이다.
1997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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