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사유키,츠루마키 카즈야
더빙 : 오가타 메구미, 미츠이시 코토노
개봉 : 2009년 12월 3일
관람 : 2009년 12월 6일
등급 : 12세 이상
시원섭섭했던 2009년도 이제 지나간다.
2009년을 새롭게 맞이하며 기대에 부풀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009년도 달력이 달랑 한 장만 남아 버렸군요. 2009년은 제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2008년 불어 닥친 세계 경제위기로 저희 회사도 자금난에 봉착했고, 결국 직원들도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간다는 의미로 연봉을 30%~10% 깎았습니다. 제 경우는 20% 삭감되었는데 그 20%가 제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엄청나더군요. 다행히도 회사의 자금난은 2009년 하반기에 풀렸고, 2010년 연봉은 원상복귀 + 알파가 될 전망입니다.(물론 확정된 것은 아니고 제 희망사항입니다. ^^;)
이렇게 12월이 되면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해에 대한 기대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종 술자리와 모임으로 눈코쉴 새 없이 바쁘기도 합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유난히 기대 작들이 많이 개봉되는 탓에 술자리와 함께 기대 작 챙겨보느라 그야말로 쉴 틈이 없습니다.
지난주가 그랬습니다. 지난주에 약속된 술자리만해도 무려 세 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보고 싶은 영화도 무려 세 편이었습니다. 술자리에도 참가하고, 영화도 챙겨보려니 도저히 시간이 되지 않더군요. 그래도 [뉴 문]은 일찌감치 챙겨보았고, 일요일 저녁엔 매서운 겨울바람을 헤쳐 나가 [에반게리온 : 파]도 봤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시크릿]뿐이군요. 이번 주에도 기대 작이 많이 개봉하는 만큼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2009년 연말... 보고 싶은 영화를 전부 보려면 열심히 뛰어 다녀라!
새로움은 설레는 기대감을 안겨준다.
지난 번 [에반게리온 : 서]에서도 밝혔지만 전 [에반게리온]의 팬입니다. 워낙 일본 문화와 친하지 않고,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영화 볼 시간을 빼앗을 것이 분명한 외화 시리즈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편이지만 [에반게리온]만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오타쿠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팬은 아니고 10년 전 애니메이션 시리즈였던 [에반게리온]를 전부 챙겨보고 관련 기사를 스크랩한 정도...
그런 얼치기 팬인 제게 [에반게리온 : 서]는 적절한 재미와 추억의 향기를 안겨줬었습니다. 신지는 여전히 불쌍한 표정으로 보호본능을 자극시키고, 레이는 여전히 신비로웠습니다. 발전된 기술력은 에반게리온과 사도의 싸움을 정말 실감나게 재현했으며, 친절한 스토리 라인은 에반게리온을 처음 접한 구피에게도 재미를 안겨줬었습니다.
하지만 [에반게리온 : 파]는 다릅니다. 원작의 친절한 압축판과도 같았던 [에반게리온 : 서]와는 달리 [에반게리온 : 파]는 처음부터 원작의 파괴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새로움은 원작의 팬인 제겐 묘한 기대와 걱정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에반게리온 : 파]에서 시도한 새로움에 대한 제 첫 번째 감정은 일단 환희와도 같은 기대감이었습니다. 원작에선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캐릭터 마리가 대표적입니다. 마치 2호기 조종사인 아스카를 연상하게 만드는 당당함과 쾌활함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당연시되던 [에반게리온 : 파]를 단번에 밝은 빛으로 인도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어른들을 이용한다는 그녀의 독백은 간간히 나약함을 내비췄던 아스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더군요.
날 눈 여겨 보라고. 난 새로움의 화신이니...
새로움은 실망도 동반한다.
하지만 새로움이라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분명 마리의 등장은 [에반게리온 : 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지만 그녀가 조성한 밝은 분위기는 당혹감을 안겨 주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혹스러웠던 것은 캐릭터 성격의 변화입니다. 소심하고, 우울하며, 애정결핍의 모든 증상을 보이던 신지는 [에반게리온 : 파]에서는 레이와 아스카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자상남이 되었습니다. 원작에서도 그가 이렇게 인기가 높았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에반게리온 : 파]에서 인기남이 되어 버린 신지의 모습은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레이는 말이 많아 졌습니다. 말보다는 눈빛으로 이야기하던 그녀는 신지와 신지의 아버지이자 NERV의 사령관인 이카리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직접 나서기도 합니다. '어! 원래 레이가 저랬던가?'라는 당혹감은 제게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레이가 풍기는 신비함에 그녀를 좋아했던 저로써는 오히려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원작인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 우울했던 신지는 많이 밝아졌고, 신비했던 레이는 그 신비감을 벗어던졌다면 아스카 역시 밝고 당당했던 분위기가 상당히 누그러지고 오히려 우울하고 암울해졌습니다. 어둡기만 하던 원작에서 유일하게 밝은 빛을 안겨줬던 아스카는 [에반게리온 : 파]에서는 그 역할을 마리에게 떠넘기고 오히려 원작보다 더욱 우울해졌으니 아마도 [에반게리온 : 파]가 새로움을 위해 가장 중점적으로 파괴한 것은 캐릭터였나 봅니다.
중반 부분을 상당히 많이 차지하는 신지와 레이, 아스카의 학교생활 장면도 그렇고, 어울리지 않는 신지와 레이, 아스카의 삼각관계도 그렇고, 아스카가 그 매력을 펼치기도 전에 희생당하는 것도 그렇고, 원작의 캐릭터 파괴에 의한 새로움이 제겐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젠장! 내 캐릭터가 왜 이리 우울해진거야?
심장의 박동수를 대폭 늘이는 전투장면의 매력!
[에반게리온 : 파]는 초반엔 마리라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으로 제게 기대감을 안겨주었지만, 중반엔 원작과 달라도 너무 많이 달라진 캐릭터들의 낯선 성격과 [에반게리온 : 서]와는 달리 전혀 친절하지 않은 내용전개(원작을 봤던 저도 10년 전 기억을 더듬느라 기운이 빠져버렸는데 원작을 보지도 못한 구피는 오죽했을까요?)로 실망감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전투장면은 '다른 모든 것 따위는 상관없어.'라고 중얼거리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중반의 난해함과 당혹스러움을 단번에 잊게 만드는 후반부의 전투장면들은 다시금 제 심장의 박동수를 대폭 늘리며 절 희열의 세계로 인도했습니다.
그 당당하던 매력을 채 펼치지도 못한 불쌍한 아스카를 단순에 앗아간 침식형 사도와 에반게리온 초호기의 더미 시스템으로 인하여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스카가 타고 있던 에반게리온 3호기를 부술 수밖에 없었던 신지의 절규는 영화를 보는 내 마음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지는 그 이후 에반게리온 초호기로 아카리 사령관에게 반항하는 전혀 그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신지에게 에반게리온을 안 타도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거부형 사도를 향해 자폭을 시도하던 레이의 모습은 제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습니다. 두려움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채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유아적인 욕구로 가득차있던 신지의 괴로움을 레이는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아스카와 레이의 희생으로 신지는 진정한 남자로 재탄생하고 그와 더불어 에반게리온 초호기도 각성하게 됩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괴력으로 레이를 구하고 감동적인 포옹을 나누던 신지와 레이의 감동적인 장면은 [에반게리온 : 파]의 새로움이 불러일으킨 실망감을 순식간에 없애버립니다.
신지, 그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닌 남자다.
인류의 멸망을 불러일으킬 서드 임팩트를 나는 기다린다.
[에반게리온 : 파]는 도저히 [에반게리온 : Q]를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수많은 기대요소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며 끝을 맺습니다. [에반게리온 : 서]에서도 [에반게리온 : 파]를 위한 떡밥 역할에 충실했던 카오로가 드디어 그 화려한 날개 짓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에반게리온 : 파]에서 그의 비중은 높지 않았지만 [에반게리온 : Q]에서는 떡밥 역할이 아닌 그의 멋진 활약(?)이 이루어 질것입니다.
원작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전부 보고나서도 '인류보완계획'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는데 [에반게리온 : Q]에서 드디어 상세하게 밝혀질 예정이라네요. 이미 구 극장판인 [앤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인류보완계획'의 실체가 밝혀졌다고 하던데... [앤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아직도 보지 못한 저로써는 10년 만에 이 수수께끼 같은 계획을 실체를 이제 몇 개월만 견디면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을 꿋꿋하게 기다린 끝에 카오루의 그 멋진 한마디를 확인하고 '서비스, 서비스'를 외치는 [에반게리온 : Q]의 예고편까지 모두 보고나서야 극장 좌석에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에반게리온 : Q]는 카오루의 활약도 원작의 파괴로 새로움이라는 칼질을 할 것인지, 새로 등장한 마리의 역할은 어떠한 결과를 안겨줄지, 모두들 두려워하는 서드 임팩트가 불러일으킬 파장은 어느 정도인지, 정말 궁금해 미칠 지경입니다.
비록 [에반게리온 : 서]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에반게리온 : 서]와는 달리 제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과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것이 새로움의 힘일까요? 기대감과 실망감을 동시에 안겨주지만 그 새로움의 결과는 언제나 모든 것을 상쇄시킬 만큼 거대한 매혹입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나서 카오루의 한마디를 듣지 못했다면
[에반게리온 : 파]를 진정으로 감상한 것이 아니다.
에반게리온, 그 거대한 실체가 이제 곧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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