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제임스 맥티그
주연 : 정지훈, 나오미 해리스
개봉 : 2009년 11월 26일
관람 : 2009년 11월 26일
등급 : 18세 이상
이 영화의 전 세계적인 성공을 간절히 기원했다.
이번 주에 [닌자 어쌔신]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이 영화만큼은 꼭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만능 엔터테이너 정지훈이 단독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서 우리 배우들의 세계 시장 진출이 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0년 전만해도 홍콩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에 부러운 시선을 보내기만 했었고, 박중훈이 미국의 B급 액션영화 [아메리칸 드래곤]에 출연하다는 소식만으로도 신기해했었지만 이젠 아닙니다. 정지훈은 이미 [스피드 레이서]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었고, 이병헌 역시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에서 비록 악역이지만 꽤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했으며,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서는 세계적인 배우인 조쉬 하트넷과 기무라 타쿠야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 배우의 해외 시장 진출은 일일이 꼽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엑스맨 탄생 : 울버린]의 다니엘 헤니, [블러드]의 전지현, [드래곤 볼 : 에볼루션]의 박준형 등등 하지만 이들 영화의 공통점이라고는 할리우드 영화라고 할 수 없었던 [블러드]를 제외하고는 한국 배우의 역할은 모두 조연에 불과했으며, 흥행에서 별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은 미국에서만 1억5천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이 영화의 순수 제작비는 무려 1억7천5백만 달러임을 감안하면 흥행 성공작이라 하기 어렵고, [엑스맨 탄생 : 울버린] 역시 미국에서만 1억8천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제작비가 1억5천만 달러임을 감안한다면 역시 불만족스러운 흥행 스코어입니다.)
[닌자 어쌔신]의 의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우리 배우가 단독 주연작을 맡았다는 점입니다. 정지훈은 [스피드 레이서]의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매력을 인정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만약 [닌자 어쌔신] 마저 실패한다면 아직 흥행적인 면에서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한 한국 배우의 경쟁력은 할리우드 시장에서 급속도로 식어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닌자 어쌔신]의 전 세계적인 흥행 성공을 기원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전 세계적인 흥행 성공을 거둘 수만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닌자 어쌔신]의 흥행 성공에 대한 간절한 마음에 이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만사 제쳐두고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목요일 늦은 밤에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닌자 어쌔신]은 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절망스러운 영화였습니다.
일단 저는 공포영화를 싫어합니다. 처음부터 싫었던 것은 아닌데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그냥 공포영화가 보기 싫어졌습니다. 그런데 [닌자 어쌔신]의 오프닝은 정확히 [고스트 쉽]의 오프닝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고스트 쉽]의 오프닝은 화려한 유람선에서 평화롭게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지가 절단되며 몰살당하는 장면입니다. 제가 본 공포영화 중에서(많지는 않지만)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되는 [고스트 쉽]의 오프닝이 [닌자 어쌔신]에서 재현된 것입니다. 물론 [고스트 쉽]과 비교한다면 [닌자 어쌔신]의 오프닝은 양호한 편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액션영화를 보길 원했던 제게 이 영화의 오프닝은 처음부터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랬습니다. [닌자 어쌔신]은 액션영화라기 보다는 고어영화라고 하는 편이 맞을 정도로 화려한 액션 보다는 사지절단과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의 향연을 제게 지속적으로 선사했습니다. 그러한 이 영화에 대한 제 느낌은 고품격 사극 스릴러를 보러 들어갔다가 전설의 고향 식의 어정쩡한 귀신 영화만을 보고 말았던 [궁녀]를 봤을 때의 당혹감과 비슷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가장 먼저 제 머리 속에 들었던 생각은 '이건 내 스타일의 영화가 아닌데...'였습니다. [닌자 어쌔신]이 개봉하기 전에 공개된 피투성이 정지훈의 스틸 컷으로 이 영화의 분위기를 눈치 챘어야 했지만 할리우드 액션영화라는 장르의 선입견에 함몰되어 화려한 액션만을 기대했던 제게도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암튼 정말 오랜만에 공포영화를 본 느낌입니다.
미안하다. 내가 좀 잔인했다.
이건 할리우드 스타일도 아니지 않은가?
화려한 액션영화를 기대했다가 사지절단의 고어영화를 보고 말았던 것은 제 정보력의 부족 탓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인 것은 [닌자 어쌔신]이 미국에서 흥행 성공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1월 26일에 개봉합니다. 아직 개봉 첫 주 흥행 성적이 나오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하지만 개봉 첫 날 흥행성적은 3백30만 달러로 [뉴 문], [더 블라인드 사이드], [2012]에 이어 4위에 랭크되었다고 하네요. 물론 주말 흥행성적에서 [닌자 어쌔신]이 더욱 뒷심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내심 개봉 첫 주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대했던 저로써는 분명 아쉬운 흥행 스코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흥행성적은 사실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지훈이라는 이름 값이 있어서 개봉 첫 주 반짝 흥행이 가능하겠지만 미국의 관객 입장에서는 정지훈은 동양의 무명 배우에 불과하니 그러한 스타 마케팅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상대가 전 편의 흥행성공에 기댄 [뉴 문], 산드라 블럭이라는 스타급 배우가 버티고 있는 [더 블라인드 사이드], 엄청난 물량 공세가 돋보이는 [2012]이니 아무래도 어려운 싸움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미국 관객의 성향을 본다면 흥행성적의 상위에 랭크된 액션영화들은 대부분 특수효과가 빛나는 영화들이었습니다. 2009년만 해도 전체 흥행 순위 1위는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이고, 그 뒤로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스타트랙 : 더 비기닝] 등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액션영화에 대한 미국 관객의 취향은 SF, 혹은 판타지영화인 것입니다.
그런데 [닌자 어쌔신]은 말 그대로 날 것 그대로의 영화입니다. 특수효과는 최대한 자제되었고, 배우들의 온 몸을 불사르는 액션이 우선시 되었습니다. 성룡이 요즘 할리우드에서 뜸한 이유도 역시 날 것 그대로의 액션보다는 특수효과에 의지한 액션을 미국관객들이 더욱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아는데 [닌자 어쌔신]은 그러한 미국 관객이 원하는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것 같습니다.
온 몸을 불사르는 액션영화는 이미 한 물 갔단 말이야!
이건 정지훈의 스타일도 아니다.
자! [닌자 어쌔신]은 제 취향의 영화는 아닙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킬 영화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과연 배우 정지훈이 얼마나 관객에게 어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문제입니다. 만약 [닌자 어쌔신]이 실패하더라도 정지훈의 매력을 미국 관객에게 충분히 어필 할 수 있다면, [스피드 레이서]의 흥행실패에도 불구하고 정지훈이 [닌자 어쌔신]의 주연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정지훈은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이며 한국배우에 대한 상품성은 당분간은 유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닌자 어쌔신]에서 정지훈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제 개인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처음 정지훈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단발머리에 쌍 커플이 없는 밋밋한 얼굴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던 것은...
할리우드에서 동양배우는 그 입지가 상당히 좁은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이 액션배우였고, 그들에게 드라마, 로맨스, 코미디 배우로써의 역량은 과소평가되었습니다. 과거 이소룡이 그랬고, 성룡, 이연걸, 주윤발도 그러한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그들이 할리우드에서 출연한 영화들은 대부분 액션영화입니다. 할리우드 입장에서 아직 동양 배우는 쿵푸, 태권도 등 신기한 무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배우일 뿐입니다. 동양에서 홍콩배우가 가장 먼저 할리우드에 안착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덕분입니다.
하지만 정지훈은 다릅니다. 그는 액션 전문 배우가 아닙니다. 파워풀한 댄스를 추는 가수였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따뜻한 감수성을 선보인 배우입니다. 그러나 스토리 전개가 철저하게 배제된 [닌자 어쌔신]에서 정지훈은 그저 액션 배우에 불과했습니다. 감정의 선이 약간 엿보였던 과거 회상장면은 정지훈이 아닌 이준이라는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정지훈으로써는 액션이 아닌 다른 부분은 철저하게 배제된 셈입니다. 결국 정지훈은 [닌자 어쌔신]에서 자신의 매력을 50%도 채 발휘하지 못한 것입니다.
고작 어제 개봉한 영화를 두고 아직 성공과 실패를 말하기엔 이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제 취향의 영화가 아니고, 미국에서의 개봉 첫 날 흥행 성적도 4위에 불과하고, 정지훈의 매력 역시 다른 동양 배우처럼 액션에만 한정되어 있으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상대 여배우의 얼굴을 보니 액션에만 전념하는 편이 나일지도 모르겠다.
할리우드의 선입견에 갇힌 정지훈의 매력을 어서 빨리 보여줄 수 있기를...
IP Address : 211.227.13.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