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아바타] - 특수효과보다 스토리에 매료된 것은 나 뿐인가?

쭈니-1 2009. 12. 20. 22:25

 

 

 

감독 : 제임스 카메론

주연 : 샘 워싱턴, 조 살다나, 시고니 위버, 스티븐 랭

개봉 : 2009년 12월 17일

관람 : 2009년 12월 18일

등급 : 12세 이상

 

 

난 입체안경이 싫다.

 

제임스 카메론의 신작 [아바타]가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아바타]를 손꼽아 기다려온 저는 당연히 개봉일이 잡히자마자 예매를 서둘렀답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에 봉착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바타]를 어떤 상영관에서 볼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일반 상영관도 있고, 3D 상영관도 있으며, 3D 아이맥스 상영관도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저는 망설임 없이 일반 상영관을 선택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영화 관람비가 올라 부담이 되고 있는데 일반 상영관보다 몇 천원이나 비싼 3D 상영관이나, 일반 상영관의 두 배 수준인 3D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영화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깟 몇 천원 차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제 입장에선 집이 아주 부자이거나, 아니면 아직도 부모님의 돈으로 영화를 보는 학생으로 보입니다. 하루종일 일해서 힘겹게 돈을 버는 분들이라면 그깟 몇 천원이라는 발언은 절대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3D 상영관이나, 3D 아이맥스 상영관을 꺼리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그 무거운 입체안경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안경잡이입니다. 중학교 3학년부터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쓴 안경은 어느새 제 몸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경 위에 입체안경을 또 쓰면 두 개의 안경 무게가 제 콧등을 짓눌러 절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전 3D 영화를 꺼립니다.

하지만 [아바타]만큼은 달랐습니다. 이미 일반 상영관에서 영화를 본다면 [아바타]의 진정한 재미를 십분의 일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는 여러 리뷰어의 글들을 읽었기에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려온 [아바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전 돈과 시간(저희 집 근처 멀티플렉스가 아닌 영등포 CGV까지 가는 수고를 하며) 그리고 입체안경의 무게에 의한 불편함까지 모두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바타]는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신세계의 탄생... 제임스 카메론은 神이 되고 싶었나보다. 

 

[아바타]의 가장 놀라운 것은 역시 영상입니다. [아바타]에 대해서 실망하신 분들도 대부분 이 영화의 영상에 의한 볼거리는 인정을 하는 분위기니까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특히 제가 이 영화에 마음이 들었던 것은 판도라 행성의 아름다운 자연과 제임스 카메론이 탄생시킨 새로운 생명체였습니다. 

처음엔 비호감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었던 판도라 행성의 토착민인 나비족을 비롯하여, 나비족의 운송 수단인 다이어호스, 비행 수단인 이크란, 숭배의 대상인 그레이트 리오놉테릭스, 그리고 무시무시한 육식 동물들인 바이퍼울프와 태나토어 등 제임스 카메론이 새롭게 창조해낸 동식물들이 영화를 보는 제 눈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영화 속에 구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 물체를 앞에 두고 그것의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상상 만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마치 내 자신이 창조주가 된 듯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사실 [아바타] 속의 동식물들은 전혀 새롭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말, 늑대, 코뿔소, 그리고 익룡 등 지구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던 것들을 약간의 변형으로 창조해낸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제임스 카메론이 창조해낸 판도라 행성은 놀라운 상상력의 집결지이며,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재미를 안겨줄 수 있는 멋진 선물 상자였습니다.

 

 

  

제이크 설리 VS 쿼리치 대령 

 

하지만 제게 진정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빈틈없는 캐릭터의 구축과 많은 분들이 지적한 빈약한 스토리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입체 안경의 무게에 의한 불편함 때문에 영상미에 의한 감흥이 다른 분들에 비해 조금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저로써는 남들보다는 조금 더 캐릭터와 스토리 라인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아바타]의 빈틈없는 캐릭터부터 이야기해보죠. 이 영화엔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와 쿼리치 대령(스티븐 랭)이라는 서로 대치되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들은 서로 닮아 있습니다. 둘 다 완벽에 가까운 군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이크 설리는 지구에서의 전투로 두 다리를 잃고 불구가 되었고, 쿼리치 대령은 판도라 행성에서 치욕스러운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한 이유로 제이크 설리는 자신에게 불구의 몸을 준 지구에서의 생활보다는 자유로운 몸을 안겨준 판도라 행성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고 나비족에 동화되어 가는 것이며, 쿼리치 대령은 판도라 행성을 증오하게 되고 나비족을 없애버려야할 방해물로만 여기게 된 것입니다. 

서로 닮았지만 각각 다른 상처 때문에 서로 대치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은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대결을 벌입니다. 영화는 비록 제이크 설리의 편이었지만 그렇다고해서 쿼리치 대령을 악역으로 치부하기에도 석연치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늑대와 춤을]과 비교하지 말아라. 

 

제이크 설리와 쿼리치 대령 이외에도 각각의 캐릭터가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서 행동을 합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엔 캐릭터의 성격이 부족하다는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흔하게 터져나오는 불만이 최소한 제겐 전혀 없었습니다. 이렇게 빈틈없는 캐릭터가 구축이 되었기에 영화의 스토리 라인 역시도 제겐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이 빈약하다고 하시는 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대부분 [늑대와 춤을]과 비교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하긴 나비족에 동화되어 가는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의 모습에서 [늑대와 춤을]의 존 던바(케빈 코스트너)의 모습을 떠오르는 것은 분명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틀립니다. [아바타]는 [늑대와 춤을]보다 진화된, 아니 어쩌면 정반대의 지점에 서있는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일단 저는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양인들에게 자신들이 살던 땅을 빼앗긴 인디언을 향한 이 영화의 동정어린 시선 때문입니다. 특히 서양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자는 과격한 인디언들을 악으로, 서양인의 핍박을 피해 도망다니는 온순한 인디언들을 선으로 지정한 이 영화의 이분법도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바타]는 다릅니다.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들은 적극적으로 우수한 기계 문명을 지닌 인간들과 대항해 싸웁니다. 비록 그 싸움의 선두에 선 것은 인간인 제이크 설리의 아바타이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땅을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나비족들의 자유 의지가 중요한 것이죠. [늑대와 춤을]을 보며 인디언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답답함을 느꼈던 저로써는 [아바타]의 마지막 전투씬은 속 시원한 최고의 희열을 안겨 주었습니다.

 

 

 

서양의 제국주의에 대한 뒤늦은 반성문?

 

제가 보기엔 명백히 [아바타]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토착민인 인디언을 몰아내고 미국이라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룬 나라에 대한 뒤늦은 반성문입니다. 과학의 발달로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해야할 것으로 인식했던 서양인들은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길 원했던 인디언을 미개인이라 치부했고 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에서 몰아냈습니다. 마치 [아바타]의 인간들이 나비족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현실의 서양인들은 인디언족을 내쫓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세계의 초 강대국이 되었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로 인하여 자연은 급속도로 훼손되었습니다. 만약 [아바타]처럼 인디언이 그들의 땅을 지켰다면 어땠을까요? 아니 서양의 제국주의를 동양의 나라들이 힘을 합쳐서 막아냈다면 어땠을까요?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절대 승산이 없는 인간과 나비족의 전쟁에서 나비족이 승리를 거둔 것처럼, 서양과 동양의 전쟁에서 동양이 그들의 나라와 정신을 지켜냈다면 어땠을까요?

영화를 보며 판도라 행성의 아름다운 자연이 그깟 언옵타늄이라는 에너지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무차별한 개발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현실의 세계에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저 우리가 모르는척 할 뿐이죠.   

그러한 시선으로 [아바타]를 바라본다면 [아바타]의 스토리 라인이 부실하다고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영화적 재미를 담보로 해야할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통찰력있는 스토리 라인을 구축해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위대해 보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각적인 볼거리도 결코 놓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거장이 아닐까요? 

 

자연을 정복하며 살아가는 인간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비족.

누가 과연 옳게 살아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