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셜록 홈즈] - 사상 최고의 명탐정을 액션 히어로로 바뀌놓다.

쭈니-1 2009. 12. 24. 10:53

 

 

감독 : 가이 리치

주연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드 로, 레이첼 맥아덤스, 마크 스트롱

개봉 : 2009년 12월 23일

관람 : 2009년 12월 23일

등급 : 12세 이상

 

어린시절 영웅을 만나다.

 

어린 시절 저는 참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시골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동네 아이들과 뛰어 놀기보다는 집에서 책 읽기를 좋아했고, 그림 그리기, 공상 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바로 추리 소설이었는데 그 중에서 최고는 역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였습니다. 집에서 공상하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제게 셜록 홈즈의 모험은 대리만족을 안겨줬습니다. 어려운 사건도 뛰어난 추리력으로 간단히 해결하곤 하던 그의 이야기는 어린 제겐 최고의 영웅이었죠. 

어른이 되고 회사에 다니면서 그러한 어린 시절의 영웅은 조금씩 잊혀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눈에 들어온 것이 있으니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출간한 '셜록 홈즈 전집'이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며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던 저는 망설임 없이 제 용돈을 쪼개 '셜록 홈즈 전집'을 구매했습니다.

하지만 '셜록 홈즈 전집'에서 드러난 홈즈는 제가 알고 있던 어린 시절의 영웅과 많이 달랐습니다. 괴짜에 마약 중독자이기까지 한 홈즈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기억하는 홈즈는 밝은 이미지였는데, '셜록 홈즈 전집'에서 표현된 홈즈는 상당히 어둡기까지 했습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제가 읽은 책은 어린이 눈 높이에 맞춰 상당 부분 편집을 한 버전이었나봅니다.

비록 제가 기억하는 홈즈와는 많이 달랐어도 어른이 된 후에 만난 홈즈 역시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 어린시절의 영웅이자 어른이 되고 나서도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셜록 홈즈가 가이 리치 감독에 의해서 영화화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영화화된 적은 별로 없었던 셜록 홈즈... 과연 가이 리치 감독은 이 고전적인 영웅을 어떻게 그려냈을까요? 궁금한 마음에 개봉 당일부터 서둘러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내 인기는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군. 

 

 

여전한 홈즈... 그러나 많이 달라진 캐릭터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확인한 [셜록 홈즈]는 어린시절 제 영웅이었던 홈즈와는 달랐지만 어른이 되어 '셜록 홈즈 전집'에서 만났던 홈즈와는 이미지가 비슷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괴짜로 변해 있더군요. 영화의 초반 블랙우드(마크 스트롱)를 체포하고 나서 사건이 뜸해지자 방안에 두문불출하는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모습은 괴짜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여전한 홈즈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가 낯설어 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영화 속의 그의 모습은 명탐정이라기 보다는 액션 히어로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해결하기 보다는 몸으로 부딪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그의 방식은 제 기억 속의 홈즈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셜록 홈즈]에 대한 제 아쉬움은 바로 이러한 홈즈의 낯선 모습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영화의 초반 권투 경기 장면에서 몸짱의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라던가, 목숨을 걸고 적의 내부에 침입하는 장면 등은 할리우드 액션 히어로에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장면들이지만 제 기억 속의 홈즈와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 장면들이었습니다.   

홈즈의 캐릭터가 이렇게 새롭게 바뀌고나니 이에 질세라 왓슨(주드 로) 박사의 캐릭터도 상당 부분 바뀌었습니다. 물론 그는 여전히 홈즈의 든든한 조력자이며 친구였지만 영화 속의 왓슨 박사는 캐릭터의 활약도에서 원작보다 상당 부분 중요하게 부각되었으며, 홈즈와 티격태격하며 홈즈의 조수가 아닌 동등한 조력자로써 위치가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100년 만에 부활하려면 몸짱은 기본 옵션이지!

 

 

추리 대신 모험이... 

 

이렇게 홈즈와 왓슨의 캐릭터가 변해서인지 영화의 분위기 역시 추리영화라기 보다는 액션영화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홈즈의 숙적으로 등장하는 블랙우드는 제가 보기엔 홈즈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로 보였습니다. 마치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듯한 초현실적인 그의 악행은 영화의 중반까지 [셜록 홈즈]가 혹시 SF 영화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다행히 이 영화는 그 정도까지 막장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이 영화의 빈약한 추리는 명탐정 홈즈를 기대한 제게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제가 기대한 [셜록 홈즈]는 저도 홈즈와 함께 블랙우드의 음모를 파헤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게도 동등하게 추리를 펼쳐나갈 기회와 단서를 제시해야 합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분명 블랙우드의 음모를 밝힐 단서를 제공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단서들은 영화의 후반부 홈즈가 그 단서에 내포된 의미를 설명하기 전까지 제겐 그저 아무런 의미없는 것들에 불과했습니다. 과학적인 상식이 풍부하지 않은 저로써는 아니 아무리 과학적 상식이 풍부하다고 할지라도 이 영화의 단서의 의미를 알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이 영화는 제가 기대한 추리영화로써의 [셜록 홈즈]보다는 할리우드 블럭버스터로 재탄생한 액션 히어로로써의 [셜록 홈즈]를 감상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사상 최고의 명탐정 홈즈를 주인공으로 했으면서도 추리영화로써의 재미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머리 아프게 추리할 필요가 있나? 몸으로 부딪히면 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이유!

 

제 관점에서 본다면 [셜록 홈즈]는 실망스러운 영화가 분명합니다. 제 어린 시절의 영웅인 홈즈는 낯설었고, 기대했던 추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셜록 홈즈]가 재미없는 영화라고 단정짓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분명 [셜록 홈즈]는 기대에 못미치는 영화였지만 오락영화로써의 재미는 충분히 지켜나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단 이 영화의 캐스팅에 합격점을 주고 싶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완벽하게 셜록 홈즈의 이미지와 맞았습니다. 그의 퇴폐적이고 자폐적인 이미지는 [아이언 맨]이라는 전형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마저도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게 했었습니다. [셜록 홈즈]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홈즈라는 인물이 그리 반듯한 캐릭터가 아님을 감안한다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이미지와 연기는 거의 완벽했습니다.

홈즈의 파트너이면서도 그와 정 반대의 이미지를 지닌 왓슨 박사의 주드 로도 상당히 잘 어울렸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퇴페적이고 자폐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정갈하고 반듯한 주드 로의 이미지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어우러지며 시너지 효과를 냈습니다.

홈즈를 쩔쩔매게 하는 팜므파탈 아이린을 연기한 레이첼 맥아덤스도 정말 매력적이더군요.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서는 '참 예쁜 배우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셜록 홈즈]에서는 예쁜 배우에 머물지 않고 예쁘면서도 당찬 배우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과연 액션 히어로로 변한 홈즈가 흥행에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만약 성공하여 2편이 만들어진다면 블랙우드와 같은 사이비 악당이 아닌 셜록 홈즈의 진정한 맞수인 모리아티 교수가 등장할 것 같습니다. 캐스팅이 완벽했던 영화였던 만큼 2편에서 홈즈가 좀 더 명탐정의 면모를 잘 발휘한다면 어쩌면 굉장한 시리즈 영화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셜록 홈즈]의 캐릭터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