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테리 길리엄
주연 : 히스 레저, 크리스토퍼 플러머, 릴리 콜,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파렐
개봉 : 2009년 12월 23일
관람 : 2009년 12월 27일
등급 : 12세 이상
나의 크리스마스 연휴를 위해 Daum이 나서줬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금요일인 덕분에 오랜만에 3일이라는 연휴가 생겼습니다. 당연히 직딩으로써 뛸 듯이 기쁜 일이지만 자가용도, 돈도 없는 저로써는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쿡'하기로 일찌감치 마음 먹은터라 3일 연휴에 대한 큰 감회는 없었습니다.
3일 내내 '아빠 놀아줘!'를 입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웅이를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하던 어느날, 이런 절 불쌍히 여긴 Daum에서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의 예매권 이벤트에 당첨을 시켜줬습니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지난 주에 개봉한 [셜록 홈즈], [전우치]와 더불어 제가 2009년 안에 꼭 보겠다고 결심한 영화였으니 저로써는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었죠.
예매권을 평일에 쓰는 것보다 주말에 써야 이익이라는(극장비가 주말에 1인당 천원 더 비쌉니다.) 이상한 논리로 구피를 설득하여 연휴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 목동 메가박스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토요일부터 목감기에 걸렸다며 비실거리는 구피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한 끝에(아파서 영화 보러 못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드디어 일요일 저녁 눈이 소복히 쌓인 거리를 거닐며 목동 메가박스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맥스무비 예매 Tip : 맥스무비에서 예매할 경우 CGV는 절대 예매해선 안됩니다. 맥스무비에서 CGV는 좌석선택불가 극장입니다. 따라서 자동으로 CGV좌석이 배정되는데 제가 2~3번 예매해본 결과 제 좌석은 (관객이 없어도) 항상 앞에서 네 번째 줄이었습니다. 영화를 편안하게 보기엔 힘든 좌석입니다. 하지만 메가박스는 좌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으로 어서 오세요!
감독이 테리 길리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의 유작으로 유명한 영화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촬영 도중 히스 레저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자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파렐이 히스 레저의 역을 자청하고 나서며 하나의 캐릭터를 네 명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스타급 배우가 연기하는 새로운 볼거리를 완성해 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 영화의 풍부한 화제성 덕분에 대부분의 관객들은 히스 레저와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파렐의 이름에 이끌려 극장에 갔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나면 여기 저기에서 '이게 뭐야.'라는 불평불만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배우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엄연히 감독인 테리 길리엄의 영화입니다.
테리 길리엄 감독... 일반 관객들에겐 [12 몽키스]와 [그림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로 알려진 감독입니다. 하지만 영화 매니아임을 자처하시는 분들이라면 테리 길리엄 감독의 대표작으로 [여인의 음모](원제는 [브라질]입니다.), [바론의 대모험]을 꼽을 것입니다. 그는 몇 편의 대중 영화를 만들기는 했지만 대중과 가까운 감독이라고 하기에 어려운 감독입니다.
저 역시 [12 몽키스]를 너무 재미있게 본 후(브루스 윌리스와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이 영화 역시 일반 할리우드 SF영화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영화입니다.) 그의 초기작인 [몬티 파이튼 시리즈]를 모두 섭렵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이게 뭐야?'였습니다. 유치하고, 난해하고, 그로테스크하고, 호화찬란한 [몬티 파이튼 시리즈]는 그러나 제 뇌리에 테리 길리엄의 이름을 아주 깊숙히 박아 놓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테리 길리엄의 영화를 만난다는 것은 마법의 거울 속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기대했던 영화는 아니다.
[몬티 파이튼 시리즈]를 본 분이라면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을 보며 오히려 콧웃음을 칠 것입니다. '테리 길리엄 감독이 많이 대중과 친해졌는걸.'이라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듯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그의 이력에 비춰본다면 상당히 대중화된 영화이지만 일반 대중영화와 비교한다면 여전히 그로테스크하고 난해하고, 유치하면서 화려한 영화입니다.
악마와의 내기를 통해 5명의 영혼을 사로 잡지 못하면 딸의 16살 생일에 악마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한 파르나서스(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의문의 사나이 토니(히스 레저)의 도움으로 악마와 싸움에 나선다는... 어찌보면 상당히 매혹적인 판타지 영화의 외피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면은 이 영화 속 거울의 반대편 세상과 같습니다. 거울의 반대편 세상은 그 거울 속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세상입니다. 그렇기에 천진한 아이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면 원색의 화려한 게임기 속의 세상으로 변하고, 술에 취한 주정뱅이가 들어가면 탐욕스러운 세상으로 변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거울 반대편의 세상이 난해하고 유치하다는 점입니다. 거울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탐욕의 결말을 선택하면 악마의 승리이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면 파르나서스 박사의 승리인데 그 선택의 순간이 일반 관객들이 느끼기에도 상당 부분 뭔 짓을 하는지 이해가 어렵고(아! 저도 당연히 일반 관객입니다. ^^) 상상의 세계를 표현한 특수효과는 매끈한 할리우드 특수효과와 비교한다면 유치할 뿐입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기대한 조니 뎁, 주드 로의 출연 분량은 상당히 적고, 콜린 파렐은 다른 토니들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로 바뀌며 영화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히스 레져도 [다크 나이트]에서 보여준 폭발적인 연기력을 선보이지는 않습니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의 이 모든 것을 참아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당신이 기대했던 영화를 바라지 말아라.
그래도 난 그를 지지한다.
전 충분히 이 영화를 본 후 '이게 뭐야!'라고 투덜거리시는 분들의 심정을 잘 압니다. 저 역시도 [몬티 파이튼 시리즈]를 본 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첫번째, [몬티 파이튼 시리즈]에 비해 관객과 소통하려는 테리 길리엄 감독의 노력이 가상하기 때문이며, 두번째, 팀 버튼 감독의 영화가 약간 착해지며 그로테스크한 영화를 만들 감독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서 테리 길리엄 감독은 여전히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엔 수 많은 영화가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영화들이 모두 대다수의 관객 입맛에 맞는 착하고 아름다운 영화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테리 길리엄 감독처럼 유치하지만 난해하고, 그로테스크하지만 호화찬란하기도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한 명쯤은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비록 히스 레저의 폭발적인 연기력을 볼 수 없으며, 조니 뎁과 주드 로는 우정 출연 정도의 분량 밖에 출연하지 않아 그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많은 관객들을 실망시켰고, 콜린 파렐의 갑작스러운 캐릭터 변신은 뜬금 없지만 이 영화엔 무엇보다도 독특한 테리 길리엄의 스타일이 녹아 있기에 저는 좋았습니다.
제 글을 읽으며 아직도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을 봐야할지, 말아야할지 결정을 내리시지 못하는 분들께 조언을 해드리겠습니다. 히스 레저,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파렐이라는 할리우드 스타급 배우들이 나오지만 이 영화는 배우에 의한 영화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들을 보기 위해서 극장을 찾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마세요. 하지만 당신이 테리 길리엄이라는 당대 최고의 그로테스크한 그의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조금도 주저없이 극장으로 달려가세요. 그곳엔 순수하게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의 캐릭터 포스터들(마지막 포스터는 제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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