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박제현
주연 : 이미숙, 김원희, 김민, 김현수, 김보성
개봉 : 2002년 4월 26일
쭈니가 영화보러 같이 갈 사람을 꼬시는 방법... 일단 술을 먹입니다. 그리고 얼큰하게 술에 취할때를 기다린 후 내일 영화보러 가자고 살짝 꼬십니다. 상대방이 얼떨결에 '그래.'라고 대답하면 이때를 놓치지않고 영화 예매를 해버립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하죠. '어제 영화보러 가기로 했잖아. 벌써 예매했는데 어떻게해...' 그러면 십중팔구 그 친구는 어쩔수없이 나와 영화를 보게 되는 거죠. ^^;
이 계획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꼬시느냐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꼬시면 꼬실수록 다음날 반항을 포기하고 어쩔수없이 영화를 저와 보게 되는 거죠.
근로자의 날... 달력에 버젓이 까만 글씨가 새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라는 이유만으로 떳떳이 쉬는 날... 전 그날을 위해 그 전날 음흉한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제 거미줄에 걸린 사람들은 우리 회사에서 파견 근무중인 현우씨와 학교 후배인 은희 그리고 결혼을 앞둔 터프과장 이과장. 일단 그들에게 술을 찐하게 먹인 후 술에 어느정도 취할때쯤 전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내일 쉬는 날인데 우리 영화나 보러가자."
마치 아주 무심한척... 그냥 지나가는 소리인척... 영화보러 안간다고 해도 별로 상관 없는척...
그러자 바로 제 계획에 사람들이 걸려들기 시작하더군요. 남자친구가 지방에 출장중이어서 약속이 없었던 은희가 먼저 제 계획에 넘어왔으며 현우씨는 얼떨결에... 이과장은 제가 현우씨 핑계대며 강제로 꼬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이때가 중요합니다.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인양 말을 했기때문에 모두들 그 다음날이되면 농담이겠거니 하고 생각합니다. 그때 전화를 거는 거죠.
"4시까지 나와... 영화 예매해놨어."
이러면 게임 끝... 약속있다고 버티는 사람들은 바로 어제의 일을 상기시키며 나쁜놈으로 몰아부칩니다. 그러면 어쩔수없이 약속시간에 나오게 되는 거죠. ^^
왜 그렇게 사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보고싶고, 같이 보러 갈 사람은 없고, 혼자보기는 싫고... 좀 비굴해보이긴 해도 어쩔수없습니다.
제 계획에 걸려든 사람들은 공짜로 영화봐서 좋고, 저는 보고 싶었던 영화 궁상맞게 혼자보지 않아서 좋고...
돈이 아깝지 않냐고요? 절대로 아깝지 않습니다. 전 영화보는 돈과 맛있는 것 사먹는 돈은 아깝지 않습니다. ^^;
암튼 이런 치밀한 계획끝에 근로자의 날 본 영화가 바로 <울랄라 씨스터즈>입니다. 사실 <마제스틱>이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보고 싶었지만 <마제스틱>은 시간이 맞지않아 볼 수 없었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결혼을 며칠 앞둔 터프 과장 탓에 볼 수 없었죠. 결국 남은 영화는 <울랄라 씨스터즈>뿐...
<울랄라 씨스터즈>... 솔직히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더군요. 거대한 자본으로 만들었던 유치했던 블럭버스터 <단적비연수>의 감독이었던 박제현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이라는 사실부터 불안했었습니다. 이미숙, 김민 등 제가 싫어하는 배우가 한명도 아니고 두명이나 나온다는 것도 불안했고, 영화의 스토리도 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박제현 감독이 '코미디 영화에는 자신이 있다'며 큰소리를 쳤다고하니... 하긴 누구나 실수는 있는 법... 전 그래도 박제현 감독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난후의 나의 허탈한 기분은...
<울랄라 씨스터즈>는 일단 코미디 영화입니다. 코미디 영화의 승부수는 관객을 얼마나 웃기느냐에 있습니다. 관객을 웃긴다는 것... 사실 그게 말이 쉽지 실제론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단 관객의 웃음보를 한번 터뜨려 놓으면 그때부턴 탄탄대로입니다. 작년 국내에 불었던 조폭 코미디의 흥행 돌풍도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작년 우리 관객들의 웃음 포인트는 조폭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조폭만 나오면 웃음을 참지 못했죠. 물론 그 영화들이 그만큼 웃겼지만 그래도 일년내내 조폭 영화가 성공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렇듯 일단 관객의 웃음 포인트만 찾아낸다면 흥행은 따논 당상이죠. 하지만 그게 어렵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바뀌는 웃음 포인트를 찾아 낸다는 것이...
<울랄라 씨스터즈>가 시도한 것은 바로 복고풍 코미디입니다. 멀쩡해보이는 4명의 여배우들이 사정없이 망가지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제공하려 했던 거죠. 물론 시도는 좋았습니다. 배우들의 이미지 변신도 좋았고 그들이 벌이는 쌩쑈도 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전 웃기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기전 다른 분들의 영화평도 보았는데 모두들 재미있었다고 쓰여 있더군요. 제가 다른 분들과 웃음의 기준이 다른지는 모르지만 암튼 전 이 영화가 전혀 웃기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나의 웃음 포인트를 찾아내지 못한 셈이죠.
그럼 이제부터 이 영화가 제게 재미없었던 이유들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영화가 웃긴다는 것... 그것은 영화속의 상황이 웃기거나 영화속의 캐릭터가 웃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둘다 웃긴다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만 웃겨도 분명 그건 성공한 코미디인 셈인거죠.
그렇다면 이 영화속의 상황을 한번 보죠.
이 영화의 상황은 라라클럽과 네모클럽의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어온 이권 다툼에 있습니다. 영화는 1972년을 비춰주며 라라클럽과 네모클럽의 상황을 설명하죠. 네모클럽의 사장이 무릎을 꿇며 라라클럽의 사장한테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아직은 어린 라라클럽의 장녀 조은자는 네모클럽의 장남 김거만에게 무시무시한(?) 테러를 감행하며 급기야 울립니다.
그리고 곧바로 완전히 뒤바뀐 현재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잘나가던 라라클럽엔 파리만 날리고 한때 라라클럽에 굴욕적인 항복을 했던 네모클럽은 이젠 버젓이 잘나가는 클럽이 되어 네모 백화점 건설까지 기획중입니다. 이제 라라클럽의 조은자 사장은 이 모든 상황을 다시 되돌려놔야 합니다.
이 영화는 일단 이 부분에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려 합니다. 라라클럽을 다시 일으키기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네명의 여성들. 그들은 '울랄라 씨스터즈'라는 이름으로 온갖 쌩쑈를 관객들에게 제공합니다. 거기에 이들을 방해하려는 라이벌 김거만 사장과의 관계를 영화속에 풀어 놓음으로써 선과 악이라는 기본적인 대결구도도 만들어 놓죠.
이제 관객들은 '울랄라 씨스터즈'의 기가 막힌 쇼와 이들의 마지막 인생 반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이게 너무 뻔합니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뻔한 구도를 제시함으로써 결국 마지막도 뻔한 결말을 관객에게 제시할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 누구도 라라클럽이 결국 네모 클럽에게 무릎을 꿇고 망할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 아주 당연히 라라클럽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네모 클럽을 이길 것이라는 이야긴데...
그렇다면 영화의 촛점은 어떻게 라라클럽이 네모클럽을 이길것인가에 맞춰지겠죠?
그런데 이 마지막 반전이라는 것이 너무 쉽습니다. 저의 경우 영화 초반 1970년대 장면과 정신병원에 있던 조은자 사장의 어머니가 간직하고 있던 열쇠 목걸이로 마지막을 예상해버렸죠.
결국 이 영화의 상황이라는 것이 뻔하고 마지막 반전이라는 것이 예측 가능할만큼 쉽다는 것인데... 뻔한 상황을 보며 웃을수는 없죠.
웃음이라는 것이 전혀 예측 불가능의 상황에서 터져나와야 더욱 기가 막힐텐데... 이처럼 영화가 예상한대로 흘러간다면 아무리 웃긴 상황이라도 그 웃음의 강도가 반감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캐릭터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긴데... 이 영화의 캐릭터들을 한번 살펴보죠.
먼저 이미숙이 맡은 조은자라는 캐릭터는 자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생활했던 라라클럽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여성입니다. 아무리 큰 돈을 준다고해도 라라클럽과는 바꿀수 없을 만큼 라라클럽에 대한 애착이 크죠. 좋아하는 노래는 민요이며 춤이라고는 전혀 추질 못합니다. 하지만 의리로 똘똘 뭉친 여장부죠.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 돋보였던 김민이 맡았던 혜영이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인 푼수입니다. 가수가 꿈이긴 하지만 노래는 전혀하지 못하며 립싱크의 대가이기도 합니다.
TV에서 껄렁한 캐릭터를 자주 맡았던 김원희가 맡은 미옥이라는 캐릭터 역시 전형적인 터프걸입니다. 혼자 남자 몇은 너끈히 쓰러뜨릴수 있는 여성입니다.
막내이며 상큼한 이미지의 김현수가 맡은 경애라는 캐릭터는 순진무구에 사오정 스타일입니다.
자! 이상이 '울랄라 씨스터즈'의 멤버들입니다. 분명 개성이 뚜렷하고 그만큼 맡은 역활들도 뚜렷이 나눠져 있습니다. 일단 거기까진 좋았습니다.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가 여럿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가 여러개의 웃음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니까요.
하지만 그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법이 전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과장되고 만화적인 연기로 캐릭터들을 표현합니다. 분명 코미디 영화이기에 이러한 캐릭터 표현은 강점이 될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도가 지나치면 영화가 유치해 질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캐릭터들이 너무 만화적이고 과장되었습니다.
특히 김보성이 맡은 김거만이라는 캐릭터는 무슨 만화책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더군요.
뻔한 내용에 너무 만화적이라서 유치한 캐릭터들... 그것도 모자라 이 영화는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영화의 재미에 이용합니다. 그것이 제가 가장 불쾌했던 부분인데...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라라클럽에 있다가 돈때문에 배신하고 네모클럽으로 돌아서는 유방희라는 캐릭터를 기억하실 겁니다.
유방희... 가슴을 한껏 강조시킨 의상으로 처음 영화에 등장하여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이름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선 당당하게 '유방흽니다.'라고 이야기함으로써 결국 관객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그녀...
가슴에 무얼 넣었는지는 모르지만 크긴 무지 크더군요. ^^;
결국 이 영화는 여성의 신체적인 일부인 가슴을 성적 웃음거리로 만들며 관객들을 웃겼지만 솔직히 그 웃음은 그리 깔끔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분명 웃긴 웃었지만 왠지 웃고나서의 그 찝찝한 기분은...
웃음이라는 인간의 감정... 그것에 이런식의 성적 코드가 끼워졌을때의 그 기분... 분명 성적 코드를 주내용으로 함으로써 관객들을 웃기는 성인 코미디 영화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의 경우 당연히 관객들은 그런 코미디를 보기위해 오는 것이기때문에 별 다른 부담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저도 성인 코미디 영화를 즐기는 걸요. ^^;
하지만 <울랄라 씨스터즈>처럼 상큼한 코미디를 기대하며 본 영화에서 이런 난데없이 얼굴 붉히는 코미디를 펼치면 왠지 전 불쾌해 집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성인 코미디는 아닌데... 아무리 관객을 웃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여성의 가슴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그렇다고 제가 이 영화에 무조건 실망만 하고 나온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가 자랑하는 '울랄라 씨스터즈'의 그 쌩쑈들... 배우들이 무지 연습 많이 했을거라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이미숙과 김민의 연기 변신... 그렇게 망가지기도 힘이 들텐데... 참 대단한 결심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모자란 느낌입니다. 아무리 쌩쑈가 재미있어도... 배우들의 연기 변신이 기가 막히더라도... 일단 영화가 재미있어야 그러한 것들도 재미있는 것 아닌가요?
거의 두시간동안 4명의 배우들의 쌩쑈만 보고 나온 느낌... 이것이 솔직한 나의 <울랄라 씨스터즈>의 관람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