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위 워 솔저>- 뻔한 전쟁씬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잔잔한 슬픔이...

쭈니-1 2009. 12. 8. 14:35

 



감독 : 랜달 월레스
주연 : 멜 깁슨, 그렉 키니어, 매들린 스토우
개봉 : 2002년 5월 3일

너무나도 억울하게도 휴일인 5월 5일 어린이날이 일요일과 겹쳤습니다. 이럴땐 정말 하루를 완전히 도둑맞은 기분이... ^^;
암튼 이번 주말도 나의 계획은 무조건 영화보기 였습니다. 그러나 토요일 늦게까지 회사일을 하느라고 제 계획은 여지없이 무너졌죠. 주말동안 영화 4편 정도는 보려했었는데...
일을 끝내고 서둘러 집에 왔습니다. 그랬더니 왠걸... 집은 조카들에게 점령되어 있더군요. 아니 어린이날이면 놀이 공원에 놀러갈 것이지 왜 우리 집에 오냐구요... -_-;
암튼 조카들때문에 정신은 하나도 없었지만 전 영화를 보겠다는 일념하나로 컴퓨터에 앉았습니다. 비디오는 이미 조카들한테 점령되었으니 이제 영화 볼 수 있는 수단은 컴퓨터밖에 안남은 셈이죠.
그런데 항상 문제는 컴퓨터에 앉으면 알게 모르게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이곳 저곳 인터넷 서핑도 하고 영화 사이트에 들어가 영화 정보도 보고... 뭐 이러다보면 몇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버립니다.
암튼 인터넷 서핑하다가 시계를 보니 5월 5일 새벽 2시... 이럴수가... 황금같은 토요일이 영화 한편 보지 못하고 지나가 버리다니...
부랴부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영화 파일을 꺼내든 시간은 새벽 2시가 약간 넘어서였습니다. 졸음은 오고 눈꺼플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이미 영화를 보기로 마음 먹은 이상 졸음따위가 영화 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죠.
이렇게 졸음과 한바탕 전투를 벌이며 본 영화가 하필 제가 싫어하는 전쟁 영화인 <위 워 솔저>입니다. 다른 영화보면 되지 왜 하필 <위 워 솔저>를 봤냐구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오늘은 꼭 <위 워 솔저>를 보고 말겠다고 결심한 상태였으니 제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 참 고집불통이죠? 졸리우면 자고 영화는 다음날 봐도 되는 것을... 그리고 전쟁 영화가 싫으면 안보면 되는 것을... 그런데 그게 잘 안됩니다. 보고싶은 영화는 너무 많고, 영화 볼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요즘...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은 시간에 영화를 보지않으면 그 시간들이 자꾸 밀려버립니다. 그리고 한번 마음먹은 영화를 보지 않으면 결국 그 영화는 평생 볼 수 없게 됩니다. 새로운 영화가 자꾸 나오는데 지난 영화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거든요.
<위 워 솔저>... 아주 오래전에 컴퓨터에 다운 받아 놨었습니다. 그리곤 전쟁 영화길래 자꾸 안보게 되더라구요. 만약 그날 <위 워 솔저>를 보지 않았다면 전 평생 <위 워 솔저>를 보지 못했을 겁니다.
암튼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스피커를 가득 채운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전 반쯤 감은 눈으로 <위 워 솔저>를 봤습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또 왜그리 길던지... 1시간 20분을 그렇게 사투를 벌이며 본 후 결국 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5월 5일 오전 11시에 일어나 세수도 하지않고 다시 컴퓨터에 앉아 <위 워 솔저>를 이어서 봤습니다. 정말 그래서인지 <위 워 솔저>에 대한 내 느낌은 지루했던 전반부와 제법 감동적이었던 후반부라는 전혀 판이한 느낌으로 남아 있군요. 역시 영화는 맨정신으로 봐야한다니까... ^^;

 

 

  
그럼 먼저 지루했던 전반부부터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올해들어 제가 몇번이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전 전쟁영화 싫어합니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중 한명으로 영화속에서 아무리 전쟁의 참혹함을 이야기해도 별로 마음에 와닿지도 않고, 단지 아군과 적군으로 나뉜 단선적인 캐릭터들의 총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헐리우드 영화들이 전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영화인것을...
<위 워 솔저>는 전쟁 영화입니다. 그것도 제가 전쟁 영화중에서 제일 싫어하는 베트남전 영화입니다. 미국인들에게 베트남전이 어떻게 기억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전 베트남전 영화가 싫습니다. 아마 베트남전이 미군이 유일하게 패한 전쟁이라죠? 그래서 그런지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마치 미군은 전쟁의 피해자인척 하며 유별나게 애국심을 강조합니다. 베트콩들은 마치 좀비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죽여도 죽여도 계속 미군을 괴롭히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베트남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미군은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위해 전쟁에 참가한 것이었겠지만, 베트콩들에겐 조국을 지키기위한 힘겨운 싸움이었을 겁니다.
분명 미군은 자신의 나라의 국익을 위해 전쟁에 참가했을 겁니다. 만약 베트남전이 미국의 국익과 상관없다면 그들은 절대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베트콩들에게 이 전쟁은 자신의 조국을 위한 전쟁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삶을 위한 전쟁이기도 했죠. 그렇기에 그들은 막강한 화력의 미군을 이길 수 있었던 겁니다. 그들에게 공산주의나 민주주의같은 이념이 중요했을까요? 아마 아닐겁니다. 단지 그들은 살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가족을 지키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언제나 미국의 베트남전 영화는 그들은 죽여야 하는 적군이고 자신은 세계의 평화를 위해 나선 영웅인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위 워 솔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헐리우드의 일급 스타인 멜 깁슨을 내세운 이 영화는 캐스팅에서부터 또 한명의 베트남전 영웅을 탄생시키겠다고 노골적으로 관객에게 말하죠.
그리고 멜 깁슨의 인자한 모습과 리더쉽 넘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관객을 현혹시킵니다. 이제 관객들은 대부분이 멜 깁슨의 편이 되어 버리며 그렇게 됨으로써 멜 깁슨의 적인 베트콩들은 모두가 함께 죽여야 하는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리는 거죠.
영화는 <라이언일병 구하기>나 <블랙 호크 다운>처럼 제법 전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합니다. 잠복해 있던 적군에 의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는 미군들... 그러나 이 장면에서도 영화는 '그래도 조국을 위해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식의 낯뜨거운 대사를 끼워 넣음으로써 노골적으로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강조합니다.
과연 영문도 모르는채 전쟁터에 투입되어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 '조국을 위해 어쩌구 저쩌구...'하는 헛소리를 하는 군인이 정말 있을까요? (전 모르겠습니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해서... 쩝~)
이렇게 이 영화는 멜 깁슨을 앞세운 영웅주의와 사실적인 전투씬을 앞세운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부르짖으며 전반부를 채웁니다.

 

 

    
이러한 너무 뻔한 전쟁씬이 지겨워졌을때쯤 전 이 영화의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남겨진 사람들의 불안과 슬픔이죠.
한마디로 전 이 영화가 자랑하는 멜 깁슨을 앞세운 스타시스템과 사실적인 전투씬보다는 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군인의 아내들의 모습에서 이 영화의 재미를 발견 한 겁니다.
택시기사가 전해주는 전사 통지서... 만약 제가 이 영화속의 군인의 가족이었다면 하루종일 창밖만 바라보며 불안하게 하루 하루를 보냈을 겁니다.
결국 멜 깁슨의 아내인 매들린 스토우는 택시 기사 대신 자신이 직접 전사 통지서를 자져다 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녀의 생각으론 알지도 못하는 택시 기사의 손에 남편의 죽음을 아느니 같은 처지에 있는 자신이 직접 죽음을 알려 주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것이라 생각한 거죠.
정말 그녀는 대단한 결심을 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이런 끔찍한 소식을 전해준다는 것... 그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겠죠. 아마 다른 여자들은 매들린 스토우의 모습만 봐도 저승 사자를 보는 것 같았을 겁니다.
하지만 매들린 스토우 역시 불안하긴 마찬가지겠죠. 언제 그 수많은 전사 통지서속에 남편의 전사 통지서가 함께 끼워져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전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나타나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수많은 베트콩들과의 전투씬 보다는 오히려 조용한 미국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 자그마한 사건들이 더 스릴있었습니다. 어제는 정말 안됐다며 위로해 주었던 사람도 언제 남편의 전사 통지서를 받을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죠.
주인공인 멜 깁슨은 죽지 않을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매들린 스토우에게 새로운 전사 통지서가 전달될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것은 아마 그만큼 이 영화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불안과 슬픔을 잘 포착했기 때문일겁니다.

 

 

  
이제 영화는 후반부로 치닫습니다. 상부에선 미군의 패배를 인정하고 퇴각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멜 깁슨은 전쟁 영화의 영웅답게 상부의 명령을 불복하고 끝까지 전투를 감행합니다.
여기에서 이 영화는 군인 정신을 강조합니다. '내 뒤엔 누구도 남기지 않겠다.'던 멜 깁슨의 단호한 목소리... 부하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끝까지 전투를 고집하는 투철한 군인 정신.
과연 그런 것들이 한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일까요? 멜 깁슨이 끝까지 전투를 감행함으로써 그 부하들은 최소한 한명 이상은 더 전사하였을텐데...
이 의미없는 전투에서의 승리가 과연 그들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단 말입니까?
미군의 강력한 화력으로 적군이 몰살되고 결국 승리했다며 환하게 웃는 멜 깁슨의 모습에서 전 또다시 전쟁 영화가 제겐 맞지 않다는 사실만을 깨달았습니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라서 그런지 그들의 전쟁의 의미도 모르겠으며 승리의 의미도 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가 이 전쟁의 지휘관이었다면 한명의 사상자를 더 내기전에 서둘러 퇴각하였을 겁니다. 그랬다면 비록 전쟁에서 패배하였더라도 소중한 수많은 생명은 구했을 겁니다.
마지막에 가족앞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는 멜 깁슨. 그는 '부하들은 죽고 자신은 살아 돌아와서 괴롭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 퇴각 명령을 어기고 전투를 고집하다니...
이 영화는 아마 실화라죠? 멜 깁슨이 맡았던 할 무어 중령과 중군기자였던 죠 갤러웨이가 쓴 논픽션 'We were soldiers and ...young'가 원작이라고 하는 군요. 제가 보기엔 이 영화의 원작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한때 군인이었다. 그렇기에 패배를 인정할수 없었다. 부하가 몇명 더 죽는 한이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