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케이티>- 스릴러가 되려다가 지루한 역사 다큐가 되다.

쭈니-1 2009. 12. 8. 14:35

 



감독 : 사카모토 준지
주연 : 김갑수, 사토 코이치, 김병세, 최일화
개봉 : 2002년 5월 3일

"오빤 내 심심풀이 땅콩이야."
만약 여러분이 친한 후배한테 이런 소릴 듣는다면? 당연히 "뭬야?"그러며 화내시겠죠? 그런데 전 왠지 그 소릴듣고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
제겐 대학때부터 친했던 여후배가 있습니다. 그녀는 저희 과에서는 꽤 소문난 미녀였죠. 그만큼 콧대도 쎘고요. 전 그녀를 처음봤을때 꼬질꼬질한 복학생이었답니다. 제가 군대가기 전에는 저희 과에 여자라고는 거의 없었는데 군대에 갔다와보니 반 이상이 여자더군요. 복학하고 처음 학교갔던 날 얼마나 황홀하던지... ^^
그래도 그녀는 그 수많은 여후배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죠. 하지만 그녀는 항상 몰려다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전 그녀에게 쉽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습니다. 우린 이제 졸업반이 되었죠.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제게 지갑을 선물하더군요. 그땐 얼마나 황당하던지... 그렇게 친하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결국 우린 그날을 계기로 무지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졸업을 앞둔 어느 겨울날... 그녀는 갑자기 내게 사귀자고 했습니다. 정말 꿈만 같았던 순간이었죠. 그런데 그날 저녁 밤새 생각해봐도 그녀가 친한 후배가 아닌 내 애인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부담스럽더군요. 그래서 결국 다음날 저는 그녀에게 그냥  지금처럼 친구사이로 지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간혹 만나고 있고요.
만약 그때 우리가 정말 사귔다면? 아마 싸움만하다가 금새 헤어졌겠죠. 그리고 다신 만나지도 않았겠죠. 결국 전 그녀와의 짧은 연인관계보다는 긴 친구사이가 더 좋았던 겁니다.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요? 며칠전 그녀에게 '심심풀이 땅콩'이라는 소릴 들었을때 그 단어만큼 우리 사이를 잘 표현하는 단어도 없을거라는 생각을 했기때문이죠.
'심심풀이 땅콩' 만약 그녀가 절 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우린 '심심풀이 땅콩'사이조차도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전 그녀에게 '심심풀이 땅콩'으로 만족하고 있으며 저도 그녀를 '심심풀이 땅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주 편하고, 부담없고, 없어도 상관없지만 있는 것이 더 좋고... 제가 이상한 건가요? ^^
하지만 전 많은 사람들의 '심심풀이 땅콩'이 되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절 편하고, 부담없이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심심풀이 땅콩'이 필요하지 않나요? ^^;
'심심풀이 땅콩'사이인 그녀. 요즘 남자 친구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요즘들어 절 찾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날도 그랬죠. 화창한 일요일에 갑자기 전화해선 약속없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그녀... 저야 물론 솔로인 탓에 휴일엔 완전 자유입니다. 우린 그냥 만나 영화보고, 밥먹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웃지만 마음속엔 무언가 속상한 일이 있나봅니다. 하지만 전 묻지 않습니다. 원래 '심심풀이 땅콩'이란 그런거니까요. 그냥 가만히 그녀의 곁에서 그녀가 편안함을 느껴주기만 하면 제 임무는 완수된거죠.
그런데 그날은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잘못 선택한 영화탓에... 어쩜 그리도 재미가 없던지... 하긴 모든 영화가 매진이고 그 영화만 사람이 없어서 어쩔수없는 선택이었지만...


 

 

  
제가 <케이티>라는 영화를 선택한 이유... 물론 정말로 모두 본 영화이거나 매진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래도 정말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면 차라리 영화를 안보고 다른 것을 찾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때 전 '심심풀이 땅콩'으로써의 임무를 완수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전 <케이티>가 볼만한 영화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 첫번째 이유는 바로 실제 상황을 영화화 했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죠. 그것도 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신 김대중 대통령의 납치 사건을 극화했다는 사실이 제 호기심을 마구 자극했습니다.
헐리우드에선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잖아요. 전 그런 영화들을 볼때마다 우리는 언제쯤 대통령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무지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그런 영화가 나온겁니다.
물론 순수 우리 영화는 아닙니다. 한일 합작 영화라는 형식을 빌려 일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고 하더군요. 그게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두번째 이유는 이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라는 겁니다. 전 스릴러 영화를 좋아합니다. 특히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J.F.K.'라는 영화를 좋아하죠. 케네디 암살 사건이라는 실화를 다루면서도 허구와 진실을 적당히 섞어 정말 재미있는 스릴러 영화를 만들어 냈었죠. 전 <케이티>가 'J.F.K.'같은 영화이기를 바랬던 겁니다. 실화를 소재로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끔 허구를 적당히 섞어 정말 재미있는 스릴러 영화가 되기를 바랬었습니다.
세번째 이유는 그날 아침 우연히 본 신문의 기사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사엔 김대중 대통령께서 영화를 보시고 무척 호평을 하셨다고 쓰여 있더군요. 실제 사건을 당했던 당사자가 호평을 한 만큼 영화의 사실성은 어느정도 확보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영화적 재미뿐인데...
하지만 이 영화... 이런 제 기대를 모조리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분명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당시의 시대 상황을 짧게 설명하더니 곧바로 '김대중 죽이기 (일명 KT)'작전이 실행됩니다.
이런 영화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등장 인물들이 대다수가 실존 인물이었던 만큼 캐릭터 설정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캐릭터는 무척 작위적입니다.
먼저 이 영화의 주인공인 김대중이라는 캐릭터를 한번 보죠. 이 영화는 당연히 김대중이라는 캐릭터에 상당한 카리스마를 넣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의 암살계획에 관객들이 발을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김대중이라는 캐릭터에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를 죽이려하는 KCIA 요원인 김차운을 더 비중있게 다룹니다.
관객들은 당연히 주인공의 시점에서 영화를 보게 마련입니다. 저 역시 김대중이 아닌 김차운이 되어 영화속에 뛰어듭니다. 아들들은 해외로 유학가 있고 딸은 얼굴에 상처가 있어서 미국에서 성형 수술을 해줘야 하는 평범한 가장인 김차운... 그에게 KT작전은 단지 자기가 살아남기위해 꼭 실행해야하는 임무일 뿐입니다.
하지만 전 김차운의 시점에서 영화를 보면서도 김차운의 편이 될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계획은 실패할 것이란걸 뻔히 알고 있으며 그의 임무가 아무리 자신이 살아남기위한 행위라고 할지라도 동정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김대중이라는 캐릭터의 편이 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김대중이라는 캐릭터는 너무 평면적이고 별 매력이 없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제가 이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제가 동일화 시킬 영화속의 캐릭터를 찾지못했다는 점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한일 합작 영화답게 김대중과 김차운 외에도 토미타라는 일본 자위대 장교를 등장시킵니다. 그가 과연 실존 인물이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감독은 철저하게 한일 영화라는 점을 의식했는지 토미타와 한국인인 이정미의 러브 스토리를 삽입 시킵니다. 하지만 그게 너무 어색해 보입니다.
토미타가 이정미를 사랑하게 되는 동기도 생략된채 영화는 막무가내로 토미타와 이정미의 러브스토리를 감행합니다.
하지만 이미 영화의 대부분은 김차운에게 맞춰져 있기에 이들의 러브 스토리를 섬세하게 잡아내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죠.
사랑이라는 감정... 제가 생각하기엔 그건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영화속의 대사로 '널 사랑해'라고 말한다고해서 관객들도 '아! 저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구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최소한 사랑을 표현하려면 그들의 감정의 변화를 좀더 섬세하게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엔 그럴 시간이 없었죠. 그럴바엔 차라리 토미타와 이정미의 사랑따위는 없애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군요.
그리고 또한 가지... 배우들이 한국말과 일본말을 번갈아가며 하더군요. 이거 원 헷갈려서... 특히 일본 배우들의 어색한 한국말을 들었을땐 어이없는 웃음마저...


 

 

  
이렇듯 이 영화는 영화로써의 재미를 상실한채 역사적인 상황 따라잡기에 급급합니다. 마치 TV에서 조금 긴 역사 다큐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듭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김차운 역의 김갑수만 눈에 띕니다. 아니 너무 눈에 띄여 좀 튀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다른 배우들은 마치 TV에서 상황 재현하러 나온 비전문 배우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화이트 아웃>, <링 라센>등 일본에서 1급 배우라는 사토 코이치는 어색한 사랑 놀음에 어눌한 한국말까지 하느라 지쳐 보이는 군요.  
그냥 이 영화에 대한 의미로 한국 대통령을 소재로 한 최초의 영화라는 것에 만족해야 하나요?
너무 아쉽군요. 이거 일본 감독이 만들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우겨 볼까요? ^^;
암튼 아쉬움이 많이 남는 너무 지루해서 눈물만 나온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케이티>가 포문을 열었으니 언젠가는 우리 감독이 만든 우리의 대통령 소재 영화를 만나볼수 있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