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소림축구>- 황당하지만 재미있다. 그리고 작은 감동까지...

쭈니-1 2009. 12. 8. 14:36

 



감독 : 주성치
주연 : 주성치, 조미, 오맹달
개봉 : 2002년 5월 17일

오늘은 우리의 유치한 터프 과장의 결혼날...5월 중순의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무더운 햇살속에서 전 회사동료들과 함께 터프과장의 결혼식에 참가하기위해 머나먼 성남까지 가야 했습니다.
시커먼 얼굴에 진지한 표정... 그러나 유치한 짓만 골라서하는 우리의 터프과장은 그래도 자신의 결혼만큼은 떨리는지 그 장난끼어린 표정을 뒤로 숨긴채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얀 분을 얼마나 얼굴에 발랐는지 그 새카맣던 얼굴은 하얗게 변해 있었고, 어울리지도 않는 턱시도를 입고 특유의 어눌한 말투와 어정쩡한 발걸음으로 우릴 반갑게 맞아주던 터프과장... 그날따라 터프과장이 얼마나 부럽던지...
예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 근처까지 태워다주시던 사장님께서 묻습니다.
'오늘 뭐 할건가?'
뒷자석에 앉아있던 회사 동료는 자신있게 말합니다.
'오늘 남자친구 만나기로 했어요.'
하지만 전...
'글쎄요. 그냥 혼자 영화나 보려고요.'
언제나 그랬지만 오늘따라 제가 더욱 초라해 지더군요.
'아직도 짝을 못찾았나?'
사장님의 질문은 자꾸 절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글쎄요. 그게 쉽지 않네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차에서 내린 저는 주말 오후의 화창한 날씨를 뒤로 한채 서둘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나도 올해 5월달에 결혼하려 했었는데...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그 누구한테도 지지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아직도 그녀를 못잊었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따라 그녀가 자꾸 생각나네요. 5월의 신부가 되고 싶다던 그녀가... 저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그녀에게 전화하고 싶은 욕망을 애써 참았습니다. 다시는 전화않겠다고... 너를 귀찮게하지 않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했었거든요. 아무래도 그 약속 괜히 했나봅니다. ^^
이런 우울한 기분을 달래줄수 있는 유일한 친구는 역시 영화밖에 없습니다. 전 주저없이 주성치 주연의 황당코미디 <소림축구>를 골랐습니다. 제 기분을 조금이라도 유쾌하게 해줄것을 기대하며...

 

 


일단 전 주성치 영화를 별로 싫어합니다. 아니 좀더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이젠 홍콩영화엔 더 이상 기대할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한때는 저도 홍콩영화팬이었습니다. <영웅본색>을 보고 또 봤고, <천녀유혼>, <동방불패>는 비디오 가게 아저씨를 졸라 비디오를 구입하기까지 했습니다. 성룡이 나오는 영화는 언제나 극장에서 봤으며, 혼자 극장에 가는 것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혼자 극장에서 보는 것을 즐겼습니다. 어떤날은 주윤발이 죽는 영화를 하루에 5편이나 본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홍콩 영화들이 조금씩 식상해 지더군요. 오우삼, 주윤발, 이연걸 등 홍콩의 스타들은 헐리우드로 떠나버렸으며, 홍콩의 영화들은 화려한 SF를 앞세워 새로운 무협영화로써 부활을 시도했지만 제가 보기엔 완전 실패였습니다. 홍콩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에선 홍콩영화의 화려한 시절은 다신 오지 못할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홍콩영화에 대한 기대를 마지막으로 놓아버린 것은 서극감독의 <촉산전>을 보고나서입니다. 홍콩영화의 마지막 희망(?) 서극이 큰 돈들여 만든 <촉산전>은 특수효과만 화려할뿐 비장한척 하는 속빈 캐릭터들만 난무하는 실망스런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그래, 홍콩영화는 끝난거야.'
<소림축구>는 홍콩영화입니다. 게다가 주성치의 영화입니다. 제가 주성치의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너무 황당하고 유치해서 입니다. 그의 코미디가 홍콩에선 통할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하나도 안웃기고 재미도 없더군요. 아마 웃음의 기준이 틀리기때문일겁니다.
하지만 제 친구중에는 주성치의 열렬 팬도 있긴 합니다.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소림축구>는 예전의 주성치 영화와는 틀리다고... 나처럼 주성치 코미디를 싫어하는 사람도 충분히 웃고 즐길수 있다고... 그땐 설마했는데...

 

 


얼마전에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인터넷 영화 상영 사이트에서 공짜로 <희극지왕>이라는 주성치의 영화를 본적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주성치 영화라서 본건 아니고 <파이란>에서 너무나 가슴아픈 연기를 보여주었던 장백지를 보기위해서 였습니다. 그땐 <희극지왕>을 보고 작은 충격을 먹었습니다.
주인공이던 주성치의 그 어눌하고도 진지한 모습속에서 전 웃음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패배자처럼 보이는 한 청년의 열정을 따뜻하게 감싸앉는 그 시선이 얼마나 예쁘게 느껴지던지... 특히 마지막 장면이 제 예상과는 틀리게 주성치가 연기자로써 실패하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함으로써 그의 코미디가 황당하지만은 않다라는 것을 깨달았었습니다.
<소림축구>는 마치 <희극지왕>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영화로 보입니다. 주성치적인 웃음을 좀 더 가미시키고, 홍콩영화 특유의 특수효과와 함께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와 축구를 삽입시킴으로써 영화적인 재미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극지왕>에서 보여줬던 소시민의 소박한 열정과 노력에 희망을 심어주는 그런 따뜻한 시선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사회 부적응자입니다.
왕년의 스타 플레이어 명봉은 이제는 절름발이가 되어 동료에게 비굴하게 빌붙어사는 인생의 실패자이며, 씽씽을 중심으로한 소림무술의 고수들 역시 사회에선 천대받고 멸시받는 부적응자에 불과합니다. 씽씽을 사랑하는 아매는 태극권의 달인이지만 못생긴 외모탓에 자신을 내세울줄 모르는 그런 여자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사회의 일반적인 잣대로 비춰보면 실패자이며 쓰레기같은 인생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신을 사회에 끼워 맞추기보단 사회에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방법을 택한 거죠.
그리고 이제 그들의 황당하지만 감동적인 작은 반란이 시작되는 거죠.

 

 


여기서 제가 주목한 캐릭터는 바로 주성치가 열연한 씽씽이라는 캐릭터입니다. 천애 고아로 소림사에 들어가 소림 무술을 세상에 알리는 막대한 임무를 부여받은 그는 사부의 죽음과 함께 사회에 내던져집니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위해 소림무술을 사회에 접목시킬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지만 모두들 그런 그를 비웃기만 합니다. 그의 동료들마저...
한때는 막강한 소림무술의 달인자였으나 사회에 적응하기위해 사회와 타협하고 자신의 본모습을 버린채 사회에 자신을 끼워 맞췄던 씽씽의 동료들... 저는 어쩌면 그들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닐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씽씽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상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이상을 실현시키기위해 갖은 곤욕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는 예전의 동료들을 찾아가 그들의 본모습을 깨우쳐주었으며, 보기 흉한 외모를 가진 아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줍니다.
이 영화를 보며 왜그리도 주성치가 멋져 보이던지...
하지만 이런한 것들이 아주 심각하게 그려졌다면 분명 저는 '또 잘난척하는 영화한편 나왔구나.'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선택한 장르는 (당연하지만) 황당 코미디입니다. 주성치는 그 특유의 진지한 표정으로 관객들을 웃기며 그 속에 작은 희망을 심어줍니다.

 

 


이 영화를 보며 전 오랜만에 유쾌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 영화속의 만화적 상상력이 유쾌했으며, 주성치의 그 표정 역시 유쾌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위해 아낌없이 망가졌던 그 여배우들의 용기도 유쾌했습니다. 카메오 출연을 한 막문위와 장백지의 그 코믹한 콧수염과 아매역을 맡은 조미라는 배우의 그 망가짐은 가히 예술에 가깝습니다. 특히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조미의 그망가짐은 정말 그 용기가 가상하더군요. 그녀도 분명 예쁘게 보이고 싶었을텐데... 하지만 아매라는 캐릭터가 만약 예쁘게 나왔다면 이 영화의 재미는 분명 반감되었을 겁니다.
이런 배우들의 망가짐은 사회 부적응자의 희망을 그린 영화의 컨셉과 일치했으며 그렇기에 더욱더 황당한 장면에 웃으면서도,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치며, 그들의 승리에 같이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이 황당하면서도,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 한편은 홍콩영화에 대한 제 실망감을 일시에 해소시켜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홍콩의 SF가 괜히 비장한척만 하는 무협영화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주성치의 그 유치한 코미디가 웃음의 기준이 다른 제게도 충분히 재미있을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감동까지... 정말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으면서 작은 감동을 느꼈던 그런 영화입니다.

 

 




인연이
울 회사에 주성치 좋아하는 언냐가 있는데....언냐 생각이 나네..
개봉하믄 나두 이거 보러 갈려구... 잼있는게 좋아..요즘엔....
 2002/05/13   

쭈니
인연이 오랜만...
나도 요즘 재미있는게 좋은데... ^^
계절탓인가??? ^^;
 2002/05/13    

주성치.. 영화가 그를 닮았습니다..  2008/08/24   

쭈니
종말 그렇군요. 영화가 주성치를 닮았습니다. ^^  2008/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