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드레곤 플라이>- 관객을 뛰어넘지 못한 미스터리 영화의 한계...

쭈니-1 2009. 12. 8. 14:32

 



감독 : 톰 새디악
주연 : 케빈 코스트너, 캐시 베이츠
개봉 : 2002년 4월 5일

어느날 제 메일을 열어보니 왠 낯선 여자한테서 이상한 메일이 왔더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2월초에 파리공항 들린적 있으신가요? 그 때 만난 사람이 기억 나신다면 답 멜 주세요. 제가 한번은 만나보고 싶네요. 혹 제가 찾는 분이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아는 것이 이름과 나이뿐이 없어서요.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글쎄 사연은 잘 모르겠지만 낯선 곳에서 우연히 짧은 시간을 보냈던 남자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뒤늦게 깨달은 여자의 간절한 사연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마치 <세렌디 피티>처럼 말이죠.
아마 이 여자분은 '아이 러브 스쿨'에 가서 나이와 이름을 검색해봤을 겁니다. 내 나이또래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 러브 스쿨'에 가입이 되어 있으며 어린 시절 친구를 찾기위한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나이와 이름만으로도 메일 주소를 알아낼수있으니...
그녀는 73년생 김동준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냈겠죠. 그 중 한명이 자신이 찾는 사람이길 바라며... 전 그 수많은 김동준 중 하나였을테고요.
왠지 이 메일을 받고나니 이상한 생각이 들더군요. '아직도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고 이렇게 찾아헤매는 로맨틱한 여자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 두사람이 로맨스 영화처럼 다시 만날 수있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왜하필 73년생인 김동준일까?'하는 생각도 들고...
암튼 이 메일을 받고 저는 한참동안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마치 그녀가 찾는 그 사람인냥 만나 사연을 듣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지만 그러진 못했죠. 대신 답장 메일을 보내 줬습니다. 난 당신이 찾는 그 남자가 아니지만 행운을 빌어 주겠다고... 그 남자를 꼭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이 이야기를 저희 팀장님께 했더니 대뜸 이러시더군요.
'그 남자가 돈 떼어먹고 도망갔나보네...' ^^;
허참!!! 난 지금까지 로맨틱한 상상만 했었는데... 설마... 그럴리는 없겠죠???
암튼 팀장님께서 로맨틱한 나의 상상에 찬물을 끼엊었지만 지금도 궁금하네요.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그 여자는 그 남자를 만났을까? 그리고 운명같은 사랑에 빠졌을까?'
만약 아직 제게 사랑을 할 기회가 남아있다면 전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평생토록 지우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는... 그래서 인생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 사람을 전부 잊지 못하고 평생기다리는...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을 건너 운명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리하며 나와 짧은 인생을 함께 영원히 해줄수 있는... 마지막으로 나보다 명이 길어서 그녀를 죽음으로 잃는 슬픔을 주지 않는... 그런 사랑을 말입니다. ^^;
이런 로맨틱한 기분에 빠져 본 영화는 바로 <드레곤 플라이>입니다. 우리 말로 하면 '잠자리'죠. 직역하면 '파리 용'쯤 될까??? ^^;
이 영화도 결국은 로맨틱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죠. 하지만 전 이런 사랑은 싫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홀로 남겨져서 일생을 슬픔속에 헤매야 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시카고 병원의 응급실 의사 조입니다. 그에겐 희생정신이 투철한, 그래서 편안한 직장 마다하고 베네수엘라의 오지에서 원주민 환자들을 돌보는 에밀리라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죠. 그런데 어느날 에밀리가 베네수엘라에서 버스 추락사고로 죽습니다. 에밀리의 시체조차 찾지 못한 상황에서 조는 아내를 잊기위해 일에 매달립니다. 그런데 어느날 자꾸 아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그는 에밀리가 자신에게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음을 깨닫죠. 하지만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는 도대체 알길이 없죠.
며칠전에 본 <모스맨>과 비슷한 내용이죠. 죽은 아내가 다시 나타나 남편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요즘 이런 내용이 유행인가??? ^^
암튼 <드레곤 플라이>의 영화적 재미는 '과연 에밀리가 조에게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조와 함께 풀어나가는 재미입니다.
영화는 산자와 죽은자의 사이에서 분위기를 으시시하게 풀어나가며 간혹가다 사람을 깜짝 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반전을 준비해 둘테니 어디한번 수수께끼를 풀어볼테면 풀어보라'고 관객들에게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하지만 그렇게 긴장할건 없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다름아닌 톰 세디악이거든요.
톰 세디악의 영화들을 한번 나열해보죠.
<에이스 벤추라>, <너티 프로페서>, <라이어 라이어>, <패치 아담스>... 전부 코미디 영화들이죠. 한마디로 그는 관객을 웃기는데엔 도가 텄지만, 관객을 긴장시키는 데에는 아직 초짜라는 말이 되는 거죠.  


 

 

  
자! 그러면 에밀리는 조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뭘까요? (이 영화를 보며 직접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분이라면 이쯤에서 제 글을 읽지 말아주세요.)
전 에밀리가 베네수엘라의 오지에서 활동했던 적십자 소속의 의사라는 사실에 일단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저는 에밀리가 조에게 자기대신 베네수엘라에 가서 오지의 환자들을 돌봐달라고 메세지를 남기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그건 조금 이상했습니다. 아무리 에밀리가 희생 정신이 투철한 의사라고는 하지만 겨우 그러한 이유로 죽은 몸을 이끌고 남편의 앞에 나타나지는 않았을거라는 거죠.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텐데...
하지만 적어도 이유가 어찌되었건 에밀리가 조에게 베네수엘라가 가라는 메세지를 남기는 것은 확실했죠. 이상한 십자가 모양의 그림은 분명 베네수엘라의 지형을 의미하는 그림일 것이며 무지개 역시 베네수엘라와 상관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영화속에서 베네수엘라가 괜히 나올리는 없을테니... 결국 영화 마지막의 무대는 베네수엘라가 될것이라는 아주 단순하지만 언제나 맞는 원리에 의해서였죠.
그렇다면 베네수엘라에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한동안 그것은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습니다. 에밀리가 죽은 것은 확실했죠.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은 억지니까요. 그렇다면 죽은 여자가 죽기전에 남길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영화 중반이 되기도 전에 해답은 아주 간단하게 나옵니다.
조의 꿈속에서 에밀리가 베네수엘라에 가려는 장면이 있었죠. 그때 조는 말합니다.
'임신한 몸으로 어딜간다는거야?'
마치 영화는 스치듯 아주 짧은 순간에 이 장면을 흘러 넘기려 했었죠. 하지만 그건 그렇게 흘러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톰 세디악 감독은 왜하필 에밀리를 임신시킨 걸까? 그냥 우연히???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여기에서 답은 나왔습니다.
'그래 에밀리가 죽으며 남긴것은 아기일꺼야.'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는 영화 초반의 장면 하나... 조의 응급실에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이 응급환자들이 몰려듭니다. 그중엔 임신 6개월째인 한 여성도 있었죠. 조는 환자 보호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임신 중절수술을 합니다. 한마디로 죽음의 기로에 선 임신한 여자도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죠. 영화 후반 에밀리가 거의 죽은 몸으로 아기를 낳은 것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에게 영화 초반 이런 장면을 보여주며 그럴수있다고 미리 설득시킨 겁니다. 꽤 영리하죠?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반전의 결정적인 실마리가 될줄이야...
이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알아차리고 나면 오히려 답답해집니다. 에밀리가 조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뻔한데 조는 멍청하게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답답할 뿐이죠.
후반부가 되어서 조가 베네수엘라에 가도 마지막 반전을 알아버렸으니 흥미로울 것도 없었죠. 그저 내 추측이 맞나 어서 확인하고 싶을 따름이었습니다. ^^
이것이 이 영화의 큰 실수였죠.


 

 

  
아마도 코미디 영화만을 전문으로 만들었던 톰 세디악 감독에겐 마지막 반전이 중요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는 조금 어려웠을 겁니다. 그는 어떻게하면 관객들을 웃길 수 있으며 그런 가운데에서 감동을 이끌어 낼수 있는지에 대해선 분명 잘 아는 감독입니다.
하지만 스럴러 영화는 틀리죠. 절대 웃겨서도 안되며 감동따위도 별 필요없습니다. 단지 필요한 것은 영화를 시종일관 으시시한 분위기로 이끌어가며 마지막엔 관객들이 수긍할수 있는 놀라운 반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분명 관객들이 수긍해야 한다는 거죠.
<식스센스>가 최고의 반전이 돋보이는 영화로 꼽히는 이유는 영화의 중간 중간에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마지막 반전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에 실패했습니다. 반전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좋았지만 그 솜씨가 서툴러서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숨겨 놓는 일엔 실패한거죠.
마지막 반전을 눈치챈 관객에겐 미스터리 스릴러는 단지 따분한 영화일 뿐입니다.
마지막 죽어서까지 아기를 지키려 했던 에밀리의 모성애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죽은 아내의 분신같은 아기를 찾은 조의 감동어린 눈물도 제게 그리 감동을 주지 못한 것은 모두 다 반전의 부실함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