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기덕
주연 : 조재현, 서원
개봉 : 2002년 1월 11일
이 글을 읽기전에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전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지독히도 싫어한다는 겁니다. 그의 영화는 관객에게 불친절하기에 보기에도 힘이들고, 그가 영화속에서 그리고 있는 캐릭터들... 특히 여성캐릭터들이 이해가 되지 않기때문에 때로는 그의 영화를 보며 불쾌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의 영화를 싫어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영화에 관심이 많다는 소리이기도 하죠. 왜냐하면 제겐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감독과 영화들이 더 많으니까요. 최소한 전 김기덕 감독한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
그는 짧은 시간에 많은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다작 감독입니다. 그가 데뷰한 것이 1996년 <악어>였으니 그는 6년동안 무려 7편의 영화를 만든 셈입니다. 물론 저는 그의 영화가 나올때마다 관심깊게 관련 기사들을 읽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죠. 하지만 막상 그의 영화를 볼려고 맘을 먹으면 왠지 망설여 집니다. 그의 불친절한 영화보다 재미있고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가 많으니 먼저 그런 영화들을 보게 되는 거죠. 그러다보면 그의 영화들은 항상 뒷전으로 밀리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의 데뷰작인 <악어>와 그의 세번째 연출작인 <파란 대문>만 보았을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수있는 <섬>마저도 전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쁜 남자>는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그 묘한 분위기가 풍기는 포스터와 조재현의 그 섬뜩한 연기... 왠지 <나쁜 남자>는 그의 다른 영화와는 다를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나쁜 남자>는 김기덕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여 더욱 불친절해졌으며 더욱 불쾌하더군요.
이 영화의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사창가의 깡패 두목인 한기는 어느날 여대생 선화에게 매혹당합니다. 하지만 한기에 대한 선화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죠. 한기는 선화에게 강제 키스를 하지만 결국 심한 모욕을 당하고 맙니다. 이제 한기는 선화에 대한 복수심과 소유욕으로 선화를 창녀로 만들 계략을 세웁니다. 계략에 말려든 선화는 창녀촌에 끌려가게 되죠.
일단 여기까지 보고나서 전 선화라는 캐릭터를 이해해 보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그의 영화들은 여성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기에 <나쁜 남자>에서의 선화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인 셈이죠.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진한 대학생... 한기의 계략에 너무나도 쉽게 넘어가고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몸을 포기하는 여성... 이것이 영화 초반 제가 이해한 선화라는 캐릭터입니다.
세상에 어떤 바보가 지갑하나 주웠다가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았다는 죄책감으로 육체 포기 각서를 쓰고 사채를 씁니까? 아직도 이런 바보가 있나요? 아무리 순진한 대학생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순진한겁니다. 창녀촌에 끌려와서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반항을 해보기도 하지만 제가 보기엔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몸을 포기하고 창녀가 되어 버립니다. 아무리 좋게 선화에대해 이해하려해도 제 기준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하지만 어쨌든 좋습니다.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 선화가 어떻게 순진한 대학생에서 창녀가 되었나가 아니니까요.
영화의 중반에 가면 선화는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완전한 창녀가 됩니다. 그리고 한기는 선화의 방을 몰래 볼수있는 밀실에서 선화의 모습을 바라보며 알수없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죠.
여기에서 잠깐!!!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조재현의 연기입니다. 그의 강렬한 눈빛과 그러면서도 처량해보이는 모습... 결국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조재현의 사랑을 이해하고 동정하게 되죠. 영화의 후반 선화가 그랬던것처럼 말입니다.
분명 한기는 선화를 사랑했을겁니다. 평생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모르고 살던 뒷골목의 삼류 인생에게 난생처음 느껴보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분명 낯설고 당황스러웠겠죠. 그는 사랑을 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저 단지 선화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만 느낀 거죠. 그래서 선화를 창녀로 만듭니다. 그녀가 대학생의 신분으로 있는다면 평생 자신의 존재를 깨닫지 못할테니까요.
혹시 1991년 프랑스의 레오 까락스감독의 작품인 <풍네프의 연인들>이라는 작품을 기억하세요? 그 영화에선 거리의 부랑아 알렉스가 실명위기에 처한 화가 미셀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녀와의 거리에서의 생활... 알렉스는 난생처음 행복이란 것을 느끼죠. 하지만 미셀의 눈을 고칠수있는 의료 기술이 개발됩니다. 알렉스는 이 사실을 숨기고 미셀을 평생 자신의 곁에 잡아두려 합니다.
당시 상당히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영화였는데 전 이 영화를 보며 '과연 알렉스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3류 인생으로 전락시키는 것...
한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조재현의 연기력 덕분에 한기라는 캐릭터가 빛을 발하긴 했지만 전 여전히 그의 사랑에 의문을 제시합니다. 그는 '과연 선화를 사랑하긴 한것일까?' 라고 말이죠.
자! 이제 영화는 후반으로 흐릅니다. 한기는 부하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수감되죠. 그는 이제 선화를 제자리로 돌려 놓으려 합니다. 이젠 그녀가 창녀가 되어도 그녀와의 사랑을 이룰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거죠. 하지만 이젠 선화가 거부합니다. 왜??? 한기의 사랑을 알았기때문에???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전 한기의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그건 단지 집착일 뿐입니다. 물론 어떤 면에선 집착 역시 사랑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전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선화의 행동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분명 창녀 생활이 좋아서 머물러있는 것은 아니었을텐데... 아니면 이미 더럽혀진 몸으로 제자리에 돌아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걸까요?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그녀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그녀가 한기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제자리에 돌아와서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수도 있었을텐데... 그녀는 한기와 같은 3류 인생을 선택합니다.
도대체 감독의 의도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캐릭터들의 이해할수 없는 행동들은 영화의 재미를 떠나서 영화를 감상하는데 불편함을 줄뿐입니다.
이제 영화는 마지막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장면이죠.
부하의 배신으로 칼에 맞은 한기. 그리고 창녀촌을 나서게된 선화... 이 두사람은 언젠가 한번 간 적이있는 어촌에서 재회합니다. 그리고 두사람은 같이 생활하게 됩니다. 선화의 몸을 팔아서말이죠.
만약 김기덕 감독이 조금이라도 관객을 배려했다면 선화를 제자리로 돌려놓았을 겁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애초에 그럴 맘이 없었던듯 합니다. 마치 관객들한테 '어때 너희들의 가치관이 무너지니 괴롭지?'라고 비웃는듯 보입니다. 하긴 분명 일반적인 가치관에 의한다면 선화는분명 제자리로 돌아와 예전의 순진한 모습을 되찾아야 겠지만 김기덕 감독은 절대 그것을 용납못하죠.
이때쯤되면 영화 전반에 걸쳐 불쾌했던 기분은 극에 달합니다. '도대체 뭐야? 왜 선화가 아직도 몸을 팔아야 하는거지?'
전 이 영화를 보며 '이건 영화다. 선화는 그저 가상의 캐릭터일 뿐이다.'라고 수십번 생각했습니다. 그렇지않다면 내 여동생일수도 있고 내 애인일수도 있는 선화라는 캐릭터가 점점 순진한 대학생에서 창녀로 전락해가는 모습을 참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녀가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며 전 영화를 꺼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선 '저건 한기의 상상일꺼야.'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죠. 분명 그건 한기의 상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않고서야 선화가 오래전에 주었던 찟어진 사진의 주인공이 선화와 한기일수는 없을테니까요. 아니 어쩌면 그때 바닷가에 걸어들어가 죽음을 선택했던 미령의 여인이 마지막 장면의 선화였을지도 모릅니다.
암튼 전 선화가 마지막까지 한기와 함께하며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파는 여인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믿기 싫었죠.
영화가 끝나고 분명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이 오래 남긴 하더군요. 어쩌면 그것이 김기덕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그 여운이라는 것이 불쾌감이라는 것이 문제죠. 정말 다시는 그의 영화를 보지 않을겁니다. 이렇게 불쾌감을 느끼며 영화를 볼 필요는 없을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