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집으로>- 상우 이해하기.

쭈니-1 2009. 12. 8. 14:29

 



감독 : 이정향
주연 : 김을분, 유승호
개봉 : 2002년 4월 5일

요즘 우리나라의 극장가는 <집으로>의 열풍때문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스타라고는 나오지 않는 이 영화가 화려한 영화들을 2주째 물리치며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니...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영화에 대해서라면 왠만큼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저도 <집으로>의 흥행은 전혀 예상외였죠. 솔직히 지난주까지만해도 그냥 이러다가 말겠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2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를 지키다니 이거 심상치 않더군요.
분명 내용은 뻔한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 눈에 훤한데... 이 영화를 봐야하나 말아야하나... 전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와 영화보기로 한날... 전 영화 예매도 안하고 극장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친구와 그냥 맘에 내키는 극장에 갔습니다. 그래서 시간 타임이 맞는 영화를 보기로 한거죠.
그런데 친구와 무작정 극장에 도착해보니 다른 영화들은 모두 본 영화들이고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고스포드 파크>와 <집으로>만 보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1시간후에 <고스포드 파크>가 시작했으며 거의 두시간을 기다려야만 <집으로>가 시작하더군요.
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고스포드 파크>보자."
그런데 단순한 친구녀석 왈...
"야! <고스포드 파크>는 3시간짜리 영화잖아. 어떻게 영화를 3시간 동안이나 보냐? 그냥 조금 더 기다려서 <집으로>보자."
짜슥... 영화가 좀 길면 어떻다고... 결국 전 친구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집으로>의 영화표를 끊고 말았습니다.    

 

 


<집으로>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은 역시 제가 예상했던 것에서 단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그런 영화라는 겁니다. 도시 아이인 7살 상우와 너무나도 순박한 77살 시골 할머니의 이야기... 영화의 내용은 너무나도 뻔하게 흘러갔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고나니 이 영화가 왜 흥행에 성공을 했는지 알겠더군요.
할머니의 사랑... 이 영화는 전혀 영화의 소재로 보이지 않는 보편적인 소재로 영화를 만듬으로써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라는 인식을 심어 준겁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새로운 영화라기보다는 보기 드문 영화라는 편이 옳겠지만...) 그리고 전문 배우가 아닌 진짜 시골 할머니를 캐스팅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닌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을 제공하여 영화에 대한 감동까지 얻어냅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보며 갑자기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졌으니... 그런면에서 이정향 감독은 의도했던바를 영화를 통해 얻어낸겁니다. 게다가 얄미운 7살 상우를 통해 풋풋한 웃음까지 전해주니... 이 영화는 의외로 전혀 상업적이지 않을것 같으면서도 상업적인 요소를 고루 갖춘 셈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나는 것이 있더군요. 많은 분들이 할머니에게 못되게구는 상우를 욕하던데... 하지만 전 이 영화를 보며 상우의 행동이 이해가 되더군요. (제가 이상한건가요?) 저도 어렸을적 부모님의 맞벌이로 혼자서 보낸 시간이 많았었죠.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보며 제 감정이입의 대상은 상우였습니다.

 

 

  
7살된 상우... 그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는 만나지 못하고 어머니는 직장에 다니느라 집을 자주 비우셔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입니다. 그만큼 어린 나이에 외로움에 대해 너무 일찍 알아버린 거죠.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직장을 구해야한다며 그를 외딴 시골의 할머니한테 보내려 합니다. 당장 친구들과도 떨어져 지내야하고 컴퓨터는 물론이고 TV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그런 곳에 말이죠.
당연히 어린 상우는 화를 내고 반항합니다. 당연하지 않을까요? 만약 누군가가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갑자기 빼앗으려한다면 그리고 너무 낯설은 곳으로 보내버리려 한다면(영화도 볼 수없고 인터넷도 할 수 없는 그런곳에...) 아마 저는 있는 힘을 다해 반항을 했을 겁니다. 상우 역시 마찬가지인 거죠. 하지만 상우는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의견은 묵살당합니다. 이제 그는 좋건 싫건 이 외딴 시골마을에서 재미도 없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야 합니다.
처음에 상우는 분풀이를 할머니에게 합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분풀이할 대상이 할머니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는 점점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외로움을 이기려 한거죠. 작은 오락기에 매달리고 스팸과 콜라 그리고 그의 유일한 친구이기도한 장난감 로봇에 집착을 하기 시작한 거죠.
하지만 영화는 상우를 점점 코너로 몰아버립니다. 오락기의 밧데리는 떨어져 버리고, 스팸과 콜라는 다 먹어 버렸으며, 장난감 로봇은 부서져 버립니다.
처음에 상우는 이러한 현실에 반항을 해봅니다. 밧데리를 구하기위해 할머니의 비녀를 훔친 거죠. 모두들 상우에게 버릇없는 아이라고 욕을 했겠지만 그때 상우에겐 자신의 친구인 오락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상우에게 계속 외로움을 강요합니다. 제가 보기엔 7살된 어린 소년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처럼 보이더군요.

 

 


관객분들은 대부분 상우가 할머니한테 병신이라고 욕하는 것을 보고 버릇없다고 욕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상우가 버릇이 없기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상우에게 그러한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았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중 상우의 나이가 7살이라는 것이 그 이유죠.
7살... 아직 학교에는 들어갈 나이가 아닙니다. 게다가 상우의 집안 형편상 유치원에 다녔을것 같지도 않고 결손 가정에서 자라났기때문에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을 겁니다.
결국 그 누구도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상우에게 가르치지 않았다는 이야기죠. 이러한 상황에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진 상우로써는 그 분노를 표출할 방법으로 할머니를 무시하고 욕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어른들에 대한 분노도 제가 상우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부모님께 사랑받으며 친구들과 맘껏 뛰어놀 나이에 아버지는 떠나고 어머니마저 그를 외할머니에게 맡깁니다. 아마 상우는 그러한 어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너무나도 미웠을 겁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어른인 할머니에게 못되게 행동함으로써 어른들에 대한 미움을 표출합니다.
하지만 상우의 그러한 행동은 마치 부메랑이되어 상우에게 되돌아옵니다. 상우는 자기 자신이 부서버린 요강때문에 무서운 화장실에서 소대변을 봐야 했으며, 할머니의 고무신을 숨기는 바람에 자신의 소중한 보물이 할머니의 더러운 발에 더럽혀져야 했습니다.
마치 이 영화는 어른들에게 그리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반항하는 상우에게 모든 것을 체념하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의 중반이 되면 이제 상우도 점점 지쳐가는 것 같습니다. 반항하면 할수록 자신만 더 힘이 든다는 것을 알아차린 거죠. 이제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을 하려 합니다.
물론 상우가 반항을 멈추고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할머니의 깊은 사랑이 있었지만 말이죠.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대신 할머니가 삶아주신 닭백숙을 먹어야 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위해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장난감도 줘야만 합니다.
영화를 보던 관객분들은 그러한 상우를 보며 통쾌해하셨지만 전 좀 안되보이더군요.
도시 생활이 시골 생활보다 더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생활 패턴을 바꿔야 한다는 것은 분명 어른이건 아이이건간에 어려운 일일겁니다.
하지만 상우는 단지 어른들의 결정에따라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골 생활에 적응이 될때쯤 다시 도시로 불려가죠.
상우의 어머니는 단지 어린 상우를 시골 어머니댁에 맡기는 것이겠지만 상우에겐 자신의 가치관을 바꿔야하는 삶의 큰 전환점이 되어버린 겁니다.
제가 좀 엉뚱한 방향으로 영화를 감상했죠? 하지만 많은 분들이 상우를 욕하시길래... ^^

 

 


그리고 제가 이 영화에게 한가지 기분 나빴던 것은 김을분 할머니의 캐스팅입니다. 분명 진짜 순수한 시골 할머니인 김을분 할머니의 존재는 이 영화에선 절대적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얼굴이 알려진 배우가 할머니 역할을 했다면 이 영화는 이처럼 관객들의 공감대도 형성시키지 못했을것이며, 흥행에 성공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김을분 할머니를 너무 상업적으로 이용한것은 아닌지...
영화를 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김을분 할머니가 힘든 표정으로 그 험한 산길을 오르 내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보기만해도 할머니의 힘겨운 모습이 느껴지더군요. 게다가 어떤 씬은 비를 맞으며 산길을 걸으시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위해 김을분 할머니께서 얼마나 많은 비를 맞았어야 했을지...
분명 김을분 할머니는 이 영화에 출연함으로써 유명해지거나 떼돈을 벌고자하는 욕심은 없었을 겁니다. 아마도 손녀, 손자같은 영화 제작진들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출연하게 된거겠죠. 하지만 전문 배우들도 연기라는 것이 그처럼 힘이 든다던데... 외딴 시골에서 영화 몇편 보지도 못하신 시골 할머니껜 연기가 얼마나 힘이들었겠습니까?
좀 과장된 말인지도 모르지만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김을분 할머니의 그 힘든 노력이 필요했는지도... 전 단지 김을분 할머니가 정말 순수한 그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사셨으면 합니다.
이 영화속의 상우처럼 어쩌면 김을분 할머니도 영화의 출연으로 인하여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 그런 불상사가 없기를...
몇년전 한 휴대폰 광고에 나와서 유명세를 탄 산골소녀 영자의 비극을 우린 잊어서는 안됩니다. 순수한 사람들은 그 순수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김을분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