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규성
주연 : 임원희, 김수로, 김정은, 서태화
개봉 : 2002년 4월 12일
영화를 선택할때 가장 난처할때가 남들의 의견과 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때 입니다. 제가 보기엔 재미있을것 같은데 영화를 먼저 보신 분들은 재미없다고 그러시고, 제가 보기엔 재미없을것 같은데 영화를 보신 분들은 재미있다며 추천해주고...
<재밌는 영화>를 볼때도 그러했죠. 애초에 같이 영화를 보기로 했던 회사 동료는 <집으로>를 보자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와 어린 꼬마가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집으로>는 제가 보기엔 'TV 베스트 극장' 수준의 영화로 분명 감동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극장에서 보기엔 부적합한 영화인듯 보였습니다. 일단 영화의 내용이 뻔하고, 어떻게 영화를 진행시킬지... 어떤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강요할지... 눈에 휜했으니까요.
그래서 전 <재밌는 영화>를 보자고 우겼습니다. <재밌는 영화>는 국내 최초의 패러디 영화로 분명 어느정도 유치함을 지니고 있겠지만 CF스타인 김정은과 심각한 표정으로 코믹 연기를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임원희의 코믹 연기가 기대되었으며 영화광의 입장으로는 <재밌는 영화>가 어떤 영화를 어떻게 패러디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집으로>는 개봉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영화를 보고나온 관객들사이에서 최고의 영화라는 평이 자자했습니다. 그에비해 <재밌는 영화>는 예매 성적이 1주 먼저 개봉한 <집으로>에게도 뒤쳐지며, 시사회에 다녀오신 분들의 이야기로는 생각보다 재미없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의 말만 믿고 제가 보고싶었던 영화를 포기할 수는 없었죠. 전 고집을 피워 결국 <집으로>를 보자는 회사 동료들을 설득하여 결국 <재밌는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결과부터 말한다면 영화가 끝나고 저는 같이 영화를 본 회사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습니다. 모두들 '그러게 <집으로>를 보자니까...'라는 표정으로 절 보시더군요. 정말 미안해서 죽는줄 알았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최초의 패러디 영화라는 기획사의 의도는 분명 좋았습니다. 게다가 헐리우드 영화가 아닌 순수한 우리 영화만을 패러디한 것도 좋았고요. 그리고 패러디 장면이 특별히 영화의 진행을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던 것도 좋았습니다. 뭐 이정도면 패러디 영화로서는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제가 실망했던 것은 생각보다 웃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영화의 재미의 기준은 얼마나 관객을 웃겼나일겁니다. 아무리 기획 의도가 좋고, 패러디를 기가 막히게 했다고 해도 관객을 웃기지 못했다면 코미디 영화로써는 실패작일 수 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기 전까진 저는 <재밌는 영화>에 대해 그냥 비디오용 영화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예고편을 보고나서 재미있을 것같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설마 예고편보다 덜 재미있을 줄이야...
그렇다면 분명 성공적인 패러디를 했으면서도 이 영화가 재미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패러디 영화라면 패러디 그 자체로 관객을 웃길 수 있었을텐데... 어째서 <재밌는 영화>는 패러디와 재미를 병행할수 없었던 걸까요?
그 첫번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그 재미있었던 예고편과 너무 잘만들어진 영화의 광고지 때문인듯 합니다.
전 이미 예고편으로 이 영화의 패러디 장면을 일부 감상했으며, 영화의 광고지라던가 영화 정보 사이트의 스틸 사진등으로 이 영화의 패러디 장면을 충분히 예상할수 있었죠.
분명 임원희와 김정은의 코믹한 이미지때문에 예고편과 광고지, 그리고 스틸사진은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로인하여 <재밌는 영화>는 영화 개봉전에 너무 많은 것을 오픈해버린 것입니다.
패러디 영화의 경우 재미의 대부분은 의외의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패러디 장면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장면에서 어떤 영화가 패러디되었다더라'식의 이 영화의 광고는 '이 영화 재미있겠다'는 식의 관심을 유발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본 영화의 재미를 상당 부분 포기하고 만 셈이죠.
제가 이 영화에서 재미를 찾지못한 두번째 이유는 이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의 부자연스러움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쉬리>입니다. 한국 블럭버스터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우리 영화 부흥에 한 몫 단단히 한 작품이죠.
물론 <재밌는 영화>가 기본 줄거리로 <쉬리>를 차용한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불만이없습니다. 이 영화가 <쉬리>를 차용함으로써 액션과 멜로, 그리고 코믹 요소까지 획득하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남한과 북한의 대결로 그린 <쉬리>에 비해 이 영화는 남한과 북한이 화해무드로 흐르자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우익 테러단체 천군파와 남한의 특수 경찰 KP의 대결을 그립니다.
그래서 이 영화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 훈훈한 우정이 중요한 소재로 대두됩니다. 저는 분명 이 장면을 보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어렸을때부터 지겹도록 부른 동요를 생각하며 감동과 후련함을 느껴야할텐데... 오히려 아무리 패러디 영화라고해도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재밌는 영화>는 의도적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을 <동감>과 <약속> 등 멜로 영화를 패러디 했습니다. 김하늘과 유지태라는 풋풋한 청춘의 싱그러운 멜로 <동감>은 김대통령과 김국방위원장의 만남부분에서... 전도연과 박신양의 눈물 연기가 돋보였던 <약속>은 두 정상의 아쉬운 이별장면에서 패러디 되었죠. 그런데 문제는 그 부분에서 패러디의 신선함보다는 왠지 징그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겁니다.
아마 아직은 우리 남북관계가 패러디 영화와 같은 가벼운 코미디에 차용될 만큼 우리 정서에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분명 이 영화를 보며 몇장면에서 웃기도 했습니다. <엽기적인 그녀>를 패러디한 지하철 장면, <인정사정 볼것 없다>를 패러디한 분식 테러 장면, 그리고 <거짓말>을 패러디한 엽기 살인 장면 등등...
저 장면을 저렇게 우습게 바꿀수도 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한테 원했던 것은 그런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원한건 박장대소였죠. 정말 정신없이 웃다가 영화를 다보고 나면 다 잊어버려도 좋았습니다. 애초에 제가 원했던 것은 바로 그런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김정은과 임원희를 앞세운 캐스팅과 기막힌 패러디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그러한 박장대소를 주지는 못했죠.
전 차라리 이 영화가 패러디 영화가 아니었다면 더 웃겼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패러디 영화가 가지고있는 단점일지도 모르죠. 어차피 누구나 아는 장면을 차용하는 것이니 왠만하지않으면 관객을 웃길 수 없었던 거죠.
아~ 패러디... 패러디는 정말 좋았는데... 아무리 이 영화를 좋게 보려해도 박장대소가 너무나도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