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안톤 후쿠아
주연 : 덴젤 워싱턴, 에단 호크
개봉 : 2001년 11월 2일
지난 3월 24일... 전 세계 영화팬들이 주목했던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솔직히 아카데미 영화제는 국제 영화제도 아니고, 단지 미국내 영화제에 불과하지만 세계 영화계에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기에 아카데미 영화제는 미국내 영화제를 넘어서 전 세계 영화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저도 해마다 아카데미 영화제의 수상 소식에 관심을 두고 있는 헐리우드 키드입니다. 왠지 아카데미 수상작은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선택이 항상 절 만족시켰던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성격탓에 아카데미 수상작은 너무 미국 우월주의에 빠진 억지 감동 대작인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이번 아카데미 수상작은 좀 의외였습니다.
작품상에 <반지의 제왕>을 물리치고 <뷰티풀 마인드>가 수상한 것까진 아카데미의 성격상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죠. 영국의 원작 소설을 한 <반지의 제왕>보다는 자랑스러운 미국의 수학자 존 내쉬의 감동적 성공기가 그들의 취향에 더 맞았겠죠.
하지만 남녀 주연상에 흑인인 덴젤 워싱턴과 할 베리가 수상했다는 것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흑인이 주연상을 차지한 경우가 극히 드물기에 흑인 배우의 공동 수상은 정말 전혀 예측 불가였습니다.
이러한 예상외의 결과를 접한 저는 남녀 주연상을 차지한 덴젤 워싱턴과 할 베리의 출연작인 <트레이닝 데이>와 <몬스터 볼>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몬스터 볼>이야 아직 국내 미개봉작이니 볼 수 없었지만 <트레이닝 데이>는 이미 개봉을 끝내고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었죠.
비디오 가게로 달려간 저는 <트레이닝 데이>를 빌렸습니다. 솔직히 영화의 내용도 모두 알고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장르도 아니었기에 이번 수상 소식이 없었다면 아마 보지않았을겁니다.
하지만 덴젤 워싱턴의 연기를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는 1,500원이라는 대여료와 2시간이라는 주말의 황금같은 시간을 투자하기에 충분했었죠. ^^;
이 영화는 LA 경찰청의 13년 경력인 베테랑 마약 수사관 알론조(덴젤 워싱턴)가 그의 밑으로 새로 들어온 신참 제이크(에단 호크)를 견습시키는 하룻동안의 사건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알론조는 오랜 세월 거리의 범죄자들을 상대한 탓에 어느정도 정의감은 퇴색되어 있는 인물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이용하여 불법을 자행하며 필요악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그런 인물입니다.
그에비해 제이크는 정의감으로 똘똘뭉친 신참으로 모든것을 배운대로 처리하려는 인물이죠.
처음에 제이크는 알론조의 카리스마에 눌려 그가 의도했던대로 끌려 다닙니다. 하지만 결국 알론조에 대항하여 그의 비리를 막아내죠.
이 영화는 서로 가치관이 틀린 알론조와 제이크가 하룻동안 같이 지내며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을 그린 영화입니다. 다시말해 알론조와 제이크의 대립구조로 영화를 이끌어가죠.
알론조는 이 영화의 악인이고 제이크는 선인입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제이크는 알론조를 물리치고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관객들도 당연히 제이크의 편에 서서 그가 알론조를 쓰러뜨릴때 쾌감을 느껴야 하고요. 하지만 전 이 영화를 보며 오히려 제이크보다는 알론조의 편에 서고 싶어 지더군요. 분명 그는 이 영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악인인데 말입니다.
일단 제가 알론조의 입장이 되어 보겠습니다.
그는 라스베가스에서 우연히 한 러시아인을 죽입니다. 그런데 그 러시아인이 러시아 마피아단의 주요 인물이었던 겁니다. 당연히 러시아 마피아단은 알론조에게 복수를 하려 할것이며 위기를 느낀 알론조는 그들에게 100만달러라는 거액의 돈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하죠. 하지만 그에겐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
제가 만약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전 아마도 제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서 돈을 어떻게해서라도 모으려 할것입니다. 이 영화의 알론조처럼 말이죠.
알론조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입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정보원이었던 은퇴 직전의 마약상을 죽이고 그 돈을 가로챕니다.
그래도 양심적인 것이 400만달러중 자신이 필요한 100만달러만 가로채고 300만달러는 증거로 경찰청에 내놓습니다.
제이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건 분명 불법이지만 알론조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어쩔수없는 일이었죠. 그 정도로 그는 절박했던 겁니다.
제이크는 알론조에게 반문하죠. 어떻게 자신의 오랜 친구를 돈때문에 죽일수 있냐고... 하지만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하는 정글의 법칙을 오랫동안 터득해온 알론조의 입장에선 살기위해선 당연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에겐 아들 넷과 아내가 있으며 아름다운 정부도 있으니...
그런데 오늘 새로 들어온 신참인 제이크가 자꾸 딴지를 겁니다.
알론조는 처음엔 그를 설득도 해보고 협박도 해봅니다. 그로써는 최선을 다한 셈이죠. 하지만 꽉막힌 제이크는 알론조의 입장을 이해못하죠.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은 그를 죽이는 것 뿐입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에 맞서는 제이크의 입장이 한번 되어 보겠습니다.
정의를 실현하기위해 경찰이 된 제이크는 교통 경찰에서 어렵게 마약단속반에 오릅니다. 당연히 그는 이제 제대로 정의사회구현을 하겠다고 벼르죠.
하지만 처음 견습을 하는 날.... 반장인 알론조는 이상한 행동만 합니다. 자기에게 억지로 마약을 먹이질 않나... 죄없는 사람들의 집에서 돈을 훔치고 검사에게 뇌물로 바칩니다. 그러더니 그의 친구였던 마약상을 죽이고 돈까지 가로챕니다.
당연히 제이크의 입장에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이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죠.
하지만 알론조는 억지로 제이크를 옭아맵니다. 그를 공범으로 만들지 않으면 그가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기때문이죠.
정의감으로 똘똘뭉친 제이크는 이해할 수 없죠.
그런데 알론조가 그를 죽이려 합니다. 정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제이크는 알론조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죠.
여기까진 제이크의 입장 역시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가 실행에 옮긴 복수라는 것이 정말 어처구니 없습니다. 알론조에게 100만달러가 든 돈가방을 빼앗는 겁니다. 그가 그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알면서...
그는 이 돈은 증거물이라며 절박한 알론조한테 빼앗죠. 그리고 그를 방치해 둡니다.
자! 여기서 제이크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다시 한번 보죠.
그는 말그대로 보이스카웃같은 인물입니다. 정의감... 그것이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죠. 그는 분명 알론조가 필요악이라는 명분으로 행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이해 못합니다. 당연하죠. 분명 100만달러의 돈가방은 경찰청에 넘겨야 하는 돈가방이며 알론조는 그 돈가방을 가로챈 도둑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과연 인명보다 돈가방이 더 중요한건가요?
이 돈가방이 없으면 알론조는 분명 러시아 마피아단에게 살해당할 것이 분명하며 그의 가족들은 가장을 잃게 됩니다. 만약 제가 제이크였다면 먼저 알론조를 살리고 봤을겁니다.
그리고나서 그의 비리를 폭로하고 그의 삐툴어진 권력에 대항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알론조에 대한 복수심때문인지 아니면 법을 지켜야한다는 강박관념때문인지... 암튼 그는 살인방조죄를 저지릅니다.
영화 초반 제이크의 캐릭터 성격과는 맞지 않는 결론이죠.
절박한 심정의 알론조와 단지 법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제이크... 전 누가뭐라해도 알론조의 편에 서고 싶군요.
그가 어쩌다가 러시아 마피아단의 주요인물을 죽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거의 안나오지만 누구나 그런 실수는 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실수를 만회하기위해 무리수를 두기도 합니다. 알론조 역시 마찬가지겠죠.
그는 단지 살기위해 몸부림친 죄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살기위해 남을 죽여야 했지만 그건 그가 살아온 방식이고 그의 주위 환경이 그를 그렇게 바꿔 놓았을 뿐입니다.
그에 비해 제이크는 어눌한 정의감때문에 궁지에 몰린 알론조를 죽음으로 내몰죠. 분명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알론조의 행동이 잘한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방식 역시 전 수긍할 수 없습니다.
정의감때문에 동료를 죽음으로 내몰다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알론조의 역을 맡은 덴젤 워싱턴의 능력때문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만큼 그는 알론조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했고 저는 덴젤 워싱턴의 연기 덕분에 악인이면서도 절박한 위기에 봉착한 알론조라는 캐릭터를 이해했을지도...
역시 덴젤 워싱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탈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