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복수는 나의 것>- 웃으면 안될 영화였는데... 결국 웃고 말다.

쭈니-1 2009. 12. 8. 14:23

 



감독 : 박찬욱
주연 :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
개봉 : 2002년 3월 29일

3월의 마지막 주말... 전 회사 동료들을 꼬시고 꼬셔서 영화보러 가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이번주는 일때문에 내내 피곤했기에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나면 일주일동안의 피로가 쏵 가실것만 같았죠.
그러나 일주일동안 절 괴롭혔던 일은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고, 결국 그 일이 영화 보러간다는  설레이는 제 마음에 제동을 걸더군요.
금방 끝날것 같은 일이 왜이리 끝나지 않던지... 다른 직원들은 약속있다며 하나, 둘씩 집으로 향하는데 전 일의 마무리를 위해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분명 이때쯤 팀장님께서 '영화보러 가기로 했다며? 나머지는 우리가 할테니 영화보러가.'라고 말씀해주시면 좋을텐데... 제가 기대했던 말은 나오질 않았습니다.
하긴 팀장님도 사람인데... 이 좋은 주말에 회사에 남아 일을 하고 싶겠습니까? 한명이라도 더 붙잡아서 빨리 일을 끝마치고 싶으셨겠죠. 하지만 전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죠. 예매도 못했는데 이러다가 영화 못보는 것은 아닌가하는...
결국 전 일을 끝마치지 못하고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회사에서 나올때 팀장님의 그 표정... 영화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마 조금만 늦었더라면 매진되어 영화를 볼 수 없었을겁니다.
3월... 한달내내 절 괴롭히더니 결국 마지막 주말마저도 이런 식으로 절 괴롭히는 군요.
아마도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을 겁니다.

 

 


암튼 3월의 마지막주에 이렇게 어렵사리 본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입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흥행 홈런을 날린 박찬욱감독의 차기작이었기에 기대가 남달랐습니다.
감독도 감독이거니와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라는 기막힌 캐스팅과 하드 보일드라는 우리에겐 낯설은 영화 장르가 주는 설레임.
하드 보일드가 뭐냐구요? 사실 저도 모릅니다. 이런 어려운 단어는... ^^; 단지 매우 건조하고 잔인하고... 암튼 우리 영화라면 먼저 코메디 영화를 떠올리는 저에겐 매우 낯설은 장르임에 분명했죠.  
게다가 영화의 예고편과 기본 줄거리를 봤을땐 그야말로 넘어갔습니다. 그 멋진 예고편... 그리고 착하디 착한 캐릭터들이 복수라는 실타래에 얽매여 서로 죽고 죽인다는 그 충격적인 기본 줄거리...
이 모든 것이 제게 기대를 안겨 주었죠.
전 이 영화를 보기전에 복수가 주는 허무함과 안타까움을 기대했습니다.
예전의 복수극은 선과 악을 확실하게 구분지어놓고 선이 악에게 복수를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복수의 쾌감을 맛보게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선과 악의 구분이 없기에 관객들은 그 누구의 편에도 서지 못하며 두 주인공들을 동정하게 되고, 그러므로써 두 주인공이 서로를 죽이며 복수를 할때 복수의 쾌감은 커녕 복수의 허무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영화일거라고 기대했습니다.
물론 제 예상은 어느정도 맞았죠. 이 영화는 분명 복수의 쾌감을 관객에게 전해주는 그런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서로 죽이는 주인공들을 보며 가슴이 아플 정도로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질 못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아주 무미건조한 복수극 한편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만약 무미건조한 복수극만으로 이 영화가 끝났다면 그런대로 이 영화는 성공작이라고 부를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영화가 절 3번이나 웃겼다는 겁니다.
분명 웃겨서는 안될 영화였는데... 아니 어찌보면 그리 웃긴 상황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전 웃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관객분들도 웃었죠.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 기대에 못미치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며 처음으로 웃은 장면은 류가 죽은 누나의 시신을 그녀의 유언에 따라 강에 묻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 무지 슬퍼야 합니다.
청각장애자인 류의 단 한가지 소원은 누나의 병을 고치는 것이었고 그래서 뜻하지도 않는 유괴라는 범죄까지 저지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나를 살리기위해 저지른 유괴는 오히려 누나를 죽음으로 내몰죠.
이젠 누나의 병을 고칠수 있는 돈도 마련되었고 장기이식자도 나타났건만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겁니다. 착하디착한 류의 모든 희망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불의의 사고로 류가 유괴한 아이가 죽음으로써 영화는 파멸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만큼 이 장면은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뇌성마비 남자가 나타나 관객을 웃깁니다. 물론 그는 나중에 동진이 유괴범에대한 실마리를 찾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긴 하지만 그래도 엄숙해야하는 장면에서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한 뇌성마비 남자의 등장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고 맙니다.

 

 


두번째로 제가 웃은 장면은 류의 연인인 영미가 동진에 의해 살인 당하자 류가 동진의 집안에 잠복하며 복수를 결심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 역시 무지 중요합니다. 류는 아이의 죽음으로 죄책감을 느끼며 점점 그 성격이 변해 갑니다. 벌레 한마리 죽일 수 없었던 그 착하디착한 성격이 누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장기밀매업자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그 신장을 먹어버릴 정도로 잔인하게 변한거죠.
그가 동진의 집을 쳐다보며 분노에 가득찬 표정을 지을때 전 '결국 이 매정한 사회가 그를 저렇게 변하게 했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이 등장하는 PT병속의 오줌...
류가 꼼짝도 않고 차에 숨어 동진을 기다렸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그 장면은 그만큼 류의 복수심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다른 표현 방법도 있었을텐데... 왜 하필...
그것도 한병도 아니고 두병씩이나...
동진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류의 차 뒤로 오줌이 가득담긴 2병의 PT병은 류의 집념이 느껴지긴 커녕 웃기기만 했습니다.  

 

 


세번째 장면은 마지막 동진의 죽음 장면입니다.
류에게 잔인한 복수를 하던 동진은 낯선 자들에게 의해 칼로 난자당합니다. 동진은 그들이 누구인지, 왜 자신에게 그러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죠. 사실 그 해답은 영화 초반 영미의 장난스러운 사형 집행장에 있었죠.
이 마지막 장면은 복수의 허무함을 표현한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동진은 딸의 죽음때문에 영미와 류에게 복수하고 그 역시 영미에 의해 복수를 당한 셈입니다.
하지만...
동진을 칼로 난잘한 작자들은 동진의 가슴에 영미의 사형 집행장을 꽂습니다.
도저히 그들이 누군지 왜 자신에게 그러는지 알지 못한 동진은 마지막까지 자기 가슴에 꽂힌 사형 집행장을 읽으려고 애씁니다.
그 순간... 분명 복수의 허무함이 밀려들어와야 할텐데... 오히려 송강호의 표정이 코믹하게만 느껴지니...
이러면 안되는데... ^^;

 

 


이 영화가 심각한 장면에서조차 관객을 웃겼다는 것은 분명 감독의 책임일겁니다. 그만큼 그 장면에대한 분석이 부족했다는 거죠. 그리고 캐릭터가 부실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겠죠.
이 영화의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최근 몇년동안 본 우리 영화중에서 가장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선한 캐릭터들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는 것에 문제점이 있는 거죠.
류의 경우 영화는 초반부터 그가 얼마나 착하고 순진한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관객에게 공감을 얻죠. 아마 그 공은 신하균의 그 마스크 덕분일겁니다. 그 어떤 표정을 지어도 선하게만 보이는 그 얼굴... 그러나 영화 후반 류가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자 초반의 장점이었던 신하균의 선한 얼굴은 오히려 후반의 단점이 되고 맙니다.
아무리 그가 누나와 아이의 죽음으로 성격이 변했다고 이해하려해도 신하균의 그 선한 얼굴만 봐도 공감이 되지 않는것을...
어떻게 그 선한 얼굴이 야구 방망이로 사람의 얼굴의 으깨버리고 신장을 꺼내 먹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난 도저히 이해못해!!!' ^^;
동진역의 송강호도 마찬가지죠. 코믹 배우로 이미지가 굳혀진 그가 딸의 죽음으로 복수에 인생을 건 아버지 역을 맡았다는 것부터 화제거리였죠. 그만큼 영화 홍보에 장점이 있었겠지만 위험부담도 컸을겁니다.
영화의 초반 송강호는 동진역을 잘 소화해냅니다. 그의 무미건조한 표정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아버지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죠. 그런데...
제가 세번째 웃은 장면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중요한 순간... 문득 송강호의 코믹한 모습이 자꾸 떠오르니... 그가 코믹한 배역을 너무 잘했었다고 탓을 해야할지...
이 영화에서 가장 실망했던 캐릭터는 바로 배두나가 맡은 영미입니다.
영화의 예고편을 보니 '모든 불행은 그녀에게서부터 비롯되었다.'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그녀는 세상물정모르는 류를 부추겨 착한 유괴(?)를 저지르게 만드는 중요 배역이었죠.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영화의 초점은 류와 동진에게 모아지고 영미는 단지 볼꺼리로 전락합니다.
실제 연인 사이인 신하균과 배두나의 섹스씬...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섹스씬이 영화의 흐름상 중요하다고 생각되질 않네요.
아마 류와 영미가 섹스를 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되고 그래서 후반 영미의 죽음에 류가 복수를 결심한다는 그런 의미였을텐데... 왜 전 그 장면이 영화의 볼꺼리를 제공하기위해 배두나라는 여배우를 벗긴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지...

 

 

  
이 영화를 보고나서 저와 함께 본 회사동료는 너무 잔인하다며 토할뻔했다고까지 말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좀 밋밋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자극적인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에 이젠 면역이 되어 버려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류가 장기밀매업자를 죽이고 신장을 씹어먹는 장면... 동진이 영미를 전기고문으로 죽이는 장면... 동진이 류를 죽이고 토막내어 땅에 묻는 장면... 등이 공감이 되지 않았기에 잔인하다는 생각보다는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하는 의문만 들더군요.  
하드 보일드 영화... 그런 영화의 장르가 어떤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영화의 분위기상 이 영화는 관객을 웃기지 말았어야 했고, 캐릭터를 관객에게 이해시켜야 했으며, 잔인한 장면이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제게는 이 모든것이 실패입니다. 분명 영화의 의도는 좋았는데... 암튼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네요.
P.S. 영화를 본후 나중에 안 사실인데 뇌성마비 남자를 연기한 배우가 류승범이고, 영미가 살해당할때 같이 죽음을 당하는 중국집 배달원이 <피도 눈물도 없이>의 감독 류승완이라더군요. 허참! 전혀 몰랐었습니다. ^^

 

 




이상하리만큼 눈길을 끌었던 영화..
살인의 추억이.. 이 영화의 2편처럼 느껴졌었던게 기억나는군요
 2008/08/24   

쭈니
개봉당시엔 한국영화 최초의 하드보일드 영화라는 칭송이 자자했던 영화죠.
솔직히 송강호의 코믹 이미지만 아니었다면 괜찮은 영화가 될뻔했던...
 2008/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