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후카사쿠 킨지
주연 : 후지와아 타츠야, 마에다 아키, 기타노 다케시
개봉 : 2002년 4월 5일
작년 여름... 전 이 영화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을때 이 영화가 헐리우드 액션영화인줄 알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제목이 꽤 헐리우드틱 했거든요.
다운 받은 후 이 영화가 일본 영화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전 무지 실망했었습니다. 솔직히 그때까지 일본 영화보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러브레터>이후 전무 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나서 제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꽤 재미있더라고요. 물론 지금까지 국내에 개봉되었던 일본 영화들이 국제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족쇄를 차고 있어야 했기에 영화가 재미가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영화제 수상작은 재미없다?' 제 생각엔 80% 정도 그 말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제 수상작이 아닌 순수 흥행을 위한 일본 오락 영화라서 그런지 지금까지 봐왔던 일본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이 영화가 절대 국내 개봉이 되지 못할거라 생각했었습니다. 살아남기위해 친구들을 죽여야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이 영화는 분명 국내에 개봉되기엔 부적절해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지난해 11월 산세바스찬 영화제에서 관객 인기상 수상이라는 명목하에 이 영화는 아주 당당하게 무삭제 개봉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조금 의외였죠. 산세바스찬 영화제가 분명 국제 영화제이긴 하지만 관객 인기상이라니... (인기상도 영화제 수상작으로 인정해줘야 하나???)
영화를 재미있게 본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앞으로 관객 인기상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일본 오락 영화들이 개봉을 하겠군요. 하지만... 차라리 그럴바엔 일본 영화에 대한 완전 개방을 하는 것이 더 모양새가 좋지 않나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암튼 영화 이야기를 쓰기위해 어렵게 예전에 봤던 동영상을 다시 구한 저는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죠. 일단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는 것이라 그런지 예전에 느꼈던 그런 재미와 충격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에 집중을 하지 않고 다른 부수적인 것에 눈을 돌려 영화를 보니 또다른 재미가 있더군요.
자! 그럼 이제부터 제가 느낀 <배틀로얄>의 새로운 재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배틀로얄>...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볼꺼리에 아주 충실한 영화입니다. 혼자만이 살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생존의 법칙속에 내던져진 아이들의 생존 게임이라는 기본 줄거리는 관객을 자극시키며, 3일이라는 제한된 시간과 총, 낫, 단도 등등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무기들은 관객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마지막에 반전까지 준비하며 오락 영화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단순한 오락 영화인 <배틀로얄>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아낼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이 영화속의 생생한 캐릭터와 적절한 상황설정 덕분입니다.
먼저 약간은 어처구니없이 느껴지는 이 영화의 상황부터 살펴보죠.
아주 가까운 미래...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느낀 어른들은 BR법이라는 이상한 법을 제정합니다. 그 법에 따르면 매년 전국 중학교 3학년 중 한 학급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한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게임을 강제로 시키는 거죠.
BR법... 어찌보면 너무 허무맹랑한 법이라는 생각이 들죠? 아무리 아이들이 무섭다고 그런 무시무시한 법을 통과시킬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냐는 거죠. 하지만 다르게 한번 생각해 보죠. 이 영화는 극단적으로 BR법을 살인 게임으로 단정지었지만 이건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살린 상상력의 산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의 BR법은???
어쩌면 무한한 경쟁 사회속에 일등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의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이 영화속의 아이들이 중학교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라는 설정자체가 의미심장합니다. 왜 하필 중학교 졸업을 앞둔 아이들일까요?
제 생각에는 중학교때까지는 어느정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모든 것은 변하게 되죠. 일류 대학에 진학을 하기 위해선 어쩔수없이 친구들과의 경쟁속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들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속에 어른들에게 자유를 박탈당하죠.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가고 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에... 과외에... 학원에...
분명 어른인 우리들은 전부 너희들을 위한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만 어쩌면 아이들에게 그것은 끔찍한 생존게임과도 같을지 모릅니다.
결국 현실의 어른들은 영화속에서 BR법을 제정한 어른들과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겁니다. (제가 이 영화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나 봅니다. ^^;)
그리고 BR법이 의미심장한 또한가지의 의미는 BR법이 신세대와 기성세대간의 단절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솔직히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저의 경우 아직 마음은 신세대라고 믿고 있지만 어쩔땐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자주 느끼죠.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이런 단절은 심화될 뿐입니다.
무한 경쟁 사회속에 뛰어든 아이들... 그리고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대화의 단절...
조금 억지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상황 설정은 영화속 상상력이 덧붙여져 영화의 재미를 한층 더 키워줍니다.
이 영화는 상황 설명이 끝나면 곧바로 생존 게임에 뛰어든 42명의 아이들로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놀랐던 것은 이 영화가 2시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속에서도 42명의 아이들의 캐릭터를 골고루 잡아냈다는 겁니다. 물론 그 속에는 주인공인 슈야와 노리코와 같은 중요 캐릭터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다른 영화와 비교해 본다면 조연에 불과한 아이들의 캐릭터 설명에 비교적 충실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슈야는 어머니의 가출과 아버지의 자살속에 어른을 믿지못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던 노부의 죽음속에 그 자신도 무기력한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노부를 구하지 못했다는 책임감속에 노부가 짝사랑했던 노리코를 생명을 다해 지켜줍니다.
슈야, 노리코와 함께 탈출을 시도하는 이적생 쇼고는 지난 대회 우승자로써 지난 대회때 죽었던 여자 친구의 복수를 위해 이 게임에 다시 참여하게 되죠.
그 외에도 해킹을 통해 이 죽음의 게임에서 벗어나려는 신지 일행과 등대속에서 친구들과 자신들만의 성을 쌓고 외부의 위험에 대항하려는 유키에 일행...
이 무서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들과 적극적으로 게임에 동참하여 살길을 모색하는 아이들...
이 영화는 그 모두를 하나하나 잡아냅니다.
마치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히 호명하듯이 그들의 캐릭터 역시 일일히 잡아내죠.
그리고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는 이 각각의 캐릭터에 부합되는 아이들의 무기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캐릭터인 미츠코의 무기는 보기만 해도 섬뜩한 낫입니다.
이적생으로 아무 감정없이 아이들을 죽이는 카즈오는 터미네이터같은 기관총을 들고 다니죠.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위해 그녀를 필사적으로 찾아다니다가 결국 사랑하는 여자에게 죽음을 당하는 히로키의 무기는 위치 추적기입니다.
스스로 혁명가라고 일컫는 신지의 무기는 베레타 권총이죠.
영화속 주인공이며, 이 죽음의 게임에 뛰어들 의사가 없는 슈야와 노리코의 무기는 각각 냄비 뚜껑과 쌍안경이죠.
이 영화는 이렇게 각 캐릭터에 부합되는 무기를 각각의 캐릭터에게 부여함으로써 영화의 재미를 더욱 살려냅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히든 카드이며 유일한 어른인 키타노 선생...
아무리 일본 영화에 무관심하더라도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배우겸 감독인 기카노 다케시가 맡은 이 캐릭터는 영화를 더욱 극단적으로 이끌고 갑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무시당하는 선생이며, 가정에서는 딸 앞에 무능력한 가장입니다. 이 영화속 아이들을 생존 게임에 끌어들이는 그의 모습은 냉정하고, 강인해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점점 드러나는 그 본모습은 나약하고 아이들에 대한 증오만이 마음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그런 어찌보면 측은한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준 노리코와의 동반 자살을 꿈꿉니다.
결국 그는 현실 사회에 무기력해진 기성 세대를 대표하며 BR법을 통해 자신을 무시한 아이들에게 벌을 내리려 하지만 그 역시 그 속에서 파멸하게 되죠.
그렇다고 이 영화가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제가 이 영화에 가장 아쉬웠던것은 카즈오라는 캐릭터의 부재입니다.
그는 지난 대회 우승자로 이 살인 게임을 즐기기위해 자진해서 참여합니다. 그는 시종일관 냉정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죽입니다. 이유도 없고 동기도 없습니다. 단지 즐기기위해서...
그렇기에 그는 너무나 인간적인 그러나 각자의 개성에따라 이 생존 게임에 대처하는 방법이 틀렸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상당히 기계적이고 비현실적입니다.
물론 그가 있었기에 영화는 더욱 긴박감이 넘쳤고, 예측불허의 라스트로 흘러갔지만, 저는 이 영화가 좀더 카즈오가 그런 비인간적인 살인 병기가 되었어야 했던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카즈오에게도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를 불어넣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도 약간 의문입니다.
결국 쇼고는 아이들을 위협하던 목걸이 해체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전 아이들의 목걸이를 전부 해체하여 키타노 일행에 공격을 감행했을 겁니다.
그러나 쇼고는 모두 죽을때까지 기다립니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키타노를 보호하고 있던 군대를 해체시키지만 군대가 그들의 시체를 확인하기위해 오지 않을거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정상적이라면 분명 군인들은 아이들의 시체를 확인하기위해 그 장소로 왔을거고 그렇다면 어차피 쇼고의 계획은 들통났을 겁니다.
차라리 그럴바엔 다른 아이들의 목걸이를 모두 해체해서 키타노에 대항할수있는 인원수를 늘리는 방법이 더 옳지 않았을까요?
키타노 역시 쇼고의 수법을 눈치챈 듯 합니다. 그렇기에 군인들이 시체 확인을 하러 간다는 것을 막고 그들을 돌려 보냄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감행하죠.
하지만 왜??? 그리고 어떻게???
그는 이미 목걸이 해체 방법이 해킹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쇼고가 자신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자진해서 이 살인 게임에 참여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죠.
그러나 그는 노리코와의 동반 자살을 꿈꿉니다. 결국 그는 이미 죽음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던거죠. 하지만 어떻게 목걸이 해체 방법을 알고 있던 쇼고가 노리코와 함께 할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제가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이 영화에 요구한 것은 아닌지...
암튼 <배틀로얄>은 오랜만에 보는 재미난 오락영화이며,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특이한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