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박희곤
주연 : 김래원, 엄정화, 임하룡, 홍수현
개봉 : 2009년 4월 30일
관람 : 2009년 4월 22일
등급 : 15세 이상
우리 회사가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수요일 아침,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출근한 제게 영업부 김 차장님이 영화 안내 전단지를 나눠 주시더군요. 이게 뭐냐는 제 질문에 김 차장님은 우리 회사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라며 오늘 8시에 종로에서 시사회를 하니 올 수 있으면 참석하라네요. 순간 잠이 확 깼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문구, 화방용품을 수입하는 업체입니다. 저희 회사가 수입하는 제품 중에서 '윈저&뉴튼'이라는 물감이 [인사동 스캔들]에 지원된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알아주는 영화광이었기에 저는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나도, 아니 우리 회사도 우리나라 영화 발전에 기여를 하는 구나!'..... 라고 생각한다면 제가 상당히 오버한 것이겠지만 암튼 그래도 왠지 제가 그토록 꿈꾸던 영화 산업의 한 일원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하늘의 별을 보며 아빠가 빨리 퇴근하길 빌었다는 웅이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고 퇴근 후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극장 앞에는 시사회를 보러온 관객들이 예상 외로 많았지만 그러한 인파를 물리치고 영화사 직원에게 저희 회사 앞으로 배정된 50장의 시사회 초대권을 받아 거래처 직원들에게 나눠준 후 8시 정각에 극장으로 입장했습니다.
영화를 보며 기대가 컸답니다. 과연 영화에서 표현된 저희 회사 제품은 어떨지... 외국 영화를 보며 가끔 삼성이나 LG의 로고를 보며 감회가 새로웠는데 내가 다니는 회사의 제품이 나오면 기분이 어떨지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영화에서 물감이 나오긴 했지만 상표가 나오지 않아 영화에 나온 물감이 '윈저&뉴튼'인지 아닌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으며,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에 열심히 제작 지원에 저희 회사의 이름을 찾아봤지만 글씨가 너무 작고, 너무 많은 업체들이 지원을 했고, 순식간에 지나가 결국 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저는 집을 향해 바쁜 발길을 돌려야했습니다.
쭈니네 회사 제품이 나오긴 나오는 거냐?
새로운 소재의 스릴러영화들은 계속 나와야한다.
[인사동 스캔들]은 고미술을 소재로 한 스릴러영화입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개봉한 우리 스릴러들은 모두 새로운 소재 개발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입니다. [인사동 스캔들] 역시 마찬가지인데 고미술, 미술복원, 문화재 밀반출이라는 소재는 분명 그다지 흔한 소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일단 100점 만점 중 50점이라는 점수는 획득한 채로 시작한 셈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소재의 영화라고해서 모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그래서 생소한 소재를 얼마나 관객들에게 알기 쉽게, 그리고 영화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설명하고 이해시키느냐가 관건인 셈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사동 스캔들]은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속의 캐릭터들이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영화 자체가 어려웠던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선과 악이 극명하게 드러나기에 고미술 복원전문가인 이강준(김래원)이 인사동 고미술계의 큰 손인 배태진(엄정화)을 상대로 통쾌한 사기극을 벌이는 것쯤은 저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큰 틀이 이해가 되었다고 끝난 것은 아닙니다. 스릴러라는 장르는 영화에서 진행되는 작은 요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해가 되어야 영화의 재미를 비로써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사동 스캔들]은 그것이 아쉽습니다. 이강준이 배태진을 향해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은 알겠지만 그가 꾸미는 일들이 하나하나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사건의 개연성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영화에서 간간히 터져 나오는 전문용어들도 영화의 이해를 방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이 영화의 새로운 소재 개척은 분명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긍정적인 요소가 더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작은 요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 영화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소재의 개발은 우리 영화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들 고미술 복원하는 것은 처음보지? 그럼 가만히 구경이나 해.
엄정화의 악녀 카리스마는 제대로 빛난다.
[인사동 스캔들]의 볼거리는 단지 새로운 스릴러 소재의 개척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스타 캐스팅을 통한 이미지의 전복으로 제게 새로운 재미를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발군의 매력을 보여준 배우는 엄정화입니다. 기존의 귀여운 노처녀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표독스러운 악녀 이미지로 변신한 그녀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볼거리중 하나입니다.
엄정화의 그러한 악녀 카리스마는 오히려 주인공인 김래원의 매력을 증폭시킵니다. 사실 김래원은 이 영화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중량감이 있는 엄정화와 비교해서는 카리스마도 부족해보였습니다. 하지만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배태진을 능글스러운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이강준의 모습은 서로 상극을 이루며 서로가 서로를 받쳐줍니다. 배태진이 너무 강하다면 이강준은 너무 부드러운 형세이죠. 만약 배태진만이 있었다면 다른 캐릭터들이 배태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을 것이며, 만약 이강준만 있었다면 이강준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별로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배태진과 이강준 이외에도 영화의 맛깔스러운 양념 역할을 제대로 해낸 조연들의 코믹 연기도 좋았습니다. 특히 호진사 사장으로 나온 고창석의 연기는 극장 안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산적같이 생긴 외모에 혀 짧은 귀여운 소리를 내니 웃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더군요.
단 한명,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거슬렸던 배우는 터프한 여형사 최하경을 연기한 홍수현입니다. 예쁜 척하는 외모에 터프한 척 하는 모양새가 서로 합쳐지니 영 어색하더군요. 욕을 내뱉는 모습도 어색하고, 막무가내로 이강준에게 악의를 드러내는 모습도 공감되기 어려웠습니다. 차라리 이강준을 쫓는 형사는 상형사(김병옥) 한 명이었으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한 카리스마 하지!
다음엔 더 잘 만들 수 있지?
[인사동 스캔들]을 총평하자면... 새로운 소재를 개척한 스릴러이며, 엄정화의 악녀 연기가 좋았고, 김래원의 능글맞은 연기도 엄정화의 카리스마와 맞물려 꽤 좋았습니다. 조연들의 감초 연기 또한 좋았고, 마지막 마무리도 꽤 깔끔했습니다.
하지만 전문용어의 난무와 너무 많은 캐릭터의 등장으로 세세한 장면에 대한 관객의 이해도가 떨어졌고, 홍수현의 터프한 척하는 가증스러운 연기는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볼만 했습니다. [오션스 일레븐]과 [범죄의 재구성]처럼 범죄 스릴러 특유의 경쾌함을 잘 살려내서 스릴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영화를 즐길 수가 있습니다. 물론 스릴러에 까탈스러운 제가 이 영화에 만큼은 너그러운 평가를 내리는 것은 비단 이 영화가 저희 회사 제품을 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뭐 굳이 이야기하자면 '물감은 윈저&뉴튼이 최고!'라고 말하고 싶지만... ^^;
올해 초부터 연속적으로 개봉하는 우리 스릴러를 보며 느끼는 점은 아직은 아쉬움이 많지만 분명 발전하고 있으며, 몇 년 후 아니 당장 내년부터라도 올해의 부족했던 점을 잘 가다듬어 할리우드 스릴러를 뛰어넘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인사동 스캔들]을 꽤 재미있게 즐겼으며, 마지막으로 '엄정화는 아직 죽지 않았어!'를 외치며 영화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
야! 너 앞으로 터프한 척 하지 마라. 짜증난다.
요즘 젊은 것들 연기에는 영혼이 없다니까. 가소로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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