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알렉스 프로야스
주연 : 니콜라스 케이지, 로즈 번
개봉 : 2009년 4월 16일
관람 : 2009년 4월 19일
등급 : 12세 이상
금일봉으로 5만원을 받다.
저희 회사는 1년에 두 번 재고조사를 합니다. 재고조사 날은 토요일 전 직원이 출근하여 회사 내 재고들을 하나둘씩 꼼꼼히 세고, 일요일은 관리부 직원만 회사에 나와 재고조사한 수량을 ERP에 입력합니다. 한마디로 다른 부서 직원들은 토요일만 나와서 일하면 되지만 관리부 직원은 토, 일요일 모두 반납하고 일을 해야 합니다.
구피는 하필 이렇게 화창한 봄 날 재고조사를 하냐며 투덜거립니다. 오늘 웅이와 봄나들이를 가려던 계획이 재고조사로 무효화되었으니 억울한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일이니 만큼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꼭 해야만 한다면 차라리 즐거운 마음으로 웃고 즐기면서 해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런데 횡재를 했습니다. 상무님께서 일요일에 나와 재고조사로 근무한 관리부직원들에게 하얀 돈 봉투를 하나씩 나눠준 것입니다. 휴일을 포기하고 회사에 나와 일을 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고 하시더군요. 뜻밖의 금일봉을 받은 저를 포함한 관리부직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우리들은 갑자기 사기가 충만해졌습니다.
봉투 안에는 5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돈이기에 그 기쁨이 컸습니다. 그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이 돈을 비상금 통장에 저금했다가 나중에 쓸까? 아니면 오랜만에 참치회에 술 사먹을까? 하지만 결국 제 결정은 결혼 6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구피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구피는 그 돈으로 구두를 샀습니다. 출퇴근 시 버스에서 1시간가량 서있어야 하는 구피는 편안 신발, 편한 신발,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제가 받은 금일봉으로 장만했습니다. 신발을 사들고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는 구피의 모습을 보며 5만원의 값어치가 이렇게 대단한 것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제가 만약 그 돈을 술 사먹는데 썼다면 그저 한낱 술 한 잔, 안주 한 접시에 사라질 돈이었지만 구피의 신발을 사줌으로써 좋아하는 구피의 모습과 그것을 지켜보는 흐뭇함이 더해져 아주 특별한 의미가 되었답니다.
내년 결혼기념일에도 뜻밖의 돈 봉투가 생겼으면 좋겠다.
또 인류가 멸망한 댄다.
구두를 사들고 한껏 기분이 UP된 구피와 [노잉]을 봤습니다. 구피도, 저도 기분이 좋아서인지 몰라도 [노잉]은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처음엔 상당히 불안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작년 연말에 봤던 [지구가 멈추는 날]의 악몽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사실 스토리 라인만 놓고 본다면 [노잉]과 [지구가 멈추는 날]은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약한 인류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인류의 멸망이 영화의 주요 스토리라는 점이 두 영화의 가장 큰 공통점입니다. [지구가 멈추는 날]을 보면서 과연 인류멸망의 순간을 영화가 어떻게 구현할까 흥미진진했는데 오히려 영화는 느닷없는 가족애와 그것에 감동받아 인류멸망을 철회하는 클라투(키아누 리브스)의 어이없는 급반전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할리우드 재앙영화는 해마다 진화되고 거대해졌습니다. 처음엔 화재, 유람선 침몰, 터널 붕괴 등 작은 하나의 사고에 국한되었던 재앙영화들이 나중엔 화산 폭발, 지진, 해일, 운석충돌 등 범지구적인 사건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렇게 점점 거대해진 재앙영화는 결국 인류 멸망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단순한 장르영화의 법칙에 따르면 재앙영화의 결말은 언제나 재앙을 이겨낸 이들의 영웅화로 귀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앙으로 인하여 인류가 멸망하는 것을 할리우드는 지켜볼 수가 없었던 셈입니다. [지구가 멈추는 날]은 바로 이러한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지겨운 공식을 대입시킨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인류는 멸망하지 않고 헬렌(제니퍼 코넬리)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받은 클라투는 조용히 지구를 떠난 것입니다.
만약 [노잉]도 [지구가 멈추는 날]처럼 재앙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고스란히 따른다면 전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재앙이 이전의 재앙영화들처럼 영웅이 등장하여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라면 저 역시 즐길 테지만 [지구가 멈추는 날]이나 [노잉]의 재앙은 이미 그러한 수준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전 재앙영화들의 수순을 밟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말이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 다행히 [노잉]은 [지구가 멈추는 날]이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않았습니다.
달리고 또 달려도 인류 멸망의 시나리오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생생한 재앙의 현장으로의 초대.
영화는 처음부터 50년 동안 이루어진 인류의 재앙을 숫자로 보여줍니다. 그 숫자를 발견한 천체물리학 교수 존 코슬러(니콜라스 케이지)는 나머지 숫자들이 앞으로 다가올 재앙의 날짜와 사망자 수임을 알아냅니다. 그는 달립니다. 하지만 그가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재앙은 마치 예정된 운명처럼 버젓이 벌어집니다. 결국 존 코슬러는 인류를 재앙에서 구해내는 영웅이 아닌 재앙의 한 가운데에서 갈팡질팡하는 한 명의 미약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재앙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류의 마지막 재앙은 모든 인류의 죽음입니다. 마치 영화 초반의 재앙들이 이전 재앙영화들에 대한 맛보기라면 이 영화의 진정한 재앙은 영화의 후반에 본격적으로 벌어집니다. 하지만 맛보기 재앙조차도 막지 못했던 존 코슬러가 과연 어마어마한 마지막 재앙을 막아낼 수 있을까요?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저를 처음부터 몰아 부칩니다. 50년 전 재앙을 예언했던 소녀의 모습은 마치 오컬트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아서 처음부터 절 바짝 긴장하게 만듭니다. 50년 후 존 코슬러가 재앙에 맞서는 장면에서도 단 한시도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듭니다.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불타는 사람과 지하철 탈선 사고에서 피 튀기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도저히 두 눈을 뚜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장면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시작부터 영화 자체가 재앙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본 것만 같았고 존 코슬러는 무기력했기에 후반부에 가면 갈수록 존 코슬러가 인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사라졌습니다. 영웅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나니 [노잉]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무서운 영화가 되었습니다. 인류 멸망의 재앙이 다가오는데 영웅조차 없는 그 암담한 설정이 정말 무서웠습니다.
신이시여! 이제 난 늙어서 영웅도 못한단 말입니까?
난 괜찮다. 우리 웅이만이라도...
사실 인류가 멸망한다면... 전 괜찮습니다. 이미 저는 36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했으니까요. 사랑도 해봤고, 피가 거꾸로 쏟는 배신도 당해봤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한 삶도 해봤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본 것보다는 아직 안 해본 것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류가 멸망해야하는 운명이라면 겸허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웅이는 아닙니다. 이제 겨우 7살 밖에 안 된 웅이에겐 너무나도 힘든 시련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정말 이 영화대로 인류가 멸망해야하는 운명이라면 제 죽음보다는 어린 아이들의 죽음이 안타까워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노잉]의 마지막 선택은 암담하기만 한 이 영화에서 한줄기 빛과도 같습니다. 어찌 보면 종교적이고, 어찌 보면 탈종교적인 이 영화의 결말은 가족애 따위를 운운했던 [지구가 멈추는 날]과 비교해서 훨씬 철학적이고, 훨씬 실현 가능한 결말이었습니다. 저 넓은 우주에 인류보다 훨씬 월등한 존재가 있음을 믿기에...
인류의 주어진 운명과 그것을 관망하는 우주에서의 인류보다 우월한 존재, 그리고 절망 끝에 피어난 희망... 그러고 보니 [노잉]은 [지구가 멈추는 날]과 인류멸망이라는 소재 외에도 많은 것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슷한 영화가 왜 받아들이는 제 입장에서는 완전 극과 극일까요? 만약 아직 이 두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서로 비교해보면서 영화를 보면 색다른 재미가 느껴질 것 같네요. 장르영화의 함정에 빠진 영화와 폭넓은 상상력으로 그 함정을 피한 영화의 차이가 이렇게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이 어린 아이는 누가 구원해준단 말인가?
우릴 [지구가 멈추는 날]의 감성적인 클라투 따위와 비교하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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