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 클린트 이스트우드, 어니 허, 비 방
개봉 : 2009년 3월 19일
관람 : 2009년 3월 26일
등급 : 12세 이상
3월 26일... 난 두 번의 감동을 얻었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을 본 후 저는 감동에 휩싸였습니다. 케이트 윈슬렛의 그 불꽃같은 연기도 감동이었고, 사랑할 수도, 증오할 수도 없는 묘한 한나 슈미츠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연출력도 감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감동은 그날 제가 받을 감동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제가 소중한 연차휴가 날, 새롭게 개봉한 영화가 아닌(실제로 [그랜 토리노]와 [기프트]를 놓고 한참을 고민했었습니다.) 지난주 개봉한 [그랜 토리노]를 선택한 이유는 사실 단순합니다. 80세가 넘은 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정열을 극장에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 번 언급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가 서부의 사나이로 이름을 떨쳤던 때 전 너무 어려서 영화를 보지 못했으며, 제가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배우로써의 전성기는 이미 지난 이후였습니다.
그런 제게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이름이 깊게 각인된 영화가 바로 [용서받지 못한 자]였습니다. 1993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하여 4개 부문을 수상했던 [용서받지 못한 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사회의 쓴맛을 본 후 좌절하고 있던 제게 [용서받지 못한 자]가 총소리만 요란한 다른 서부극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제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 전까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제 취향과는 맞지 않은 감독 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그랜 토리노]를 통해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뛰어 넘는, [체인질링]의 가공된 감동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결코 기대조차 안 했던 이 감동의 기쁨은 그렇기에 오히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보다 컸습니다.
꼬마야, 이젠 내 영화가 좋지?
처음엔 [용서받지 못한 자]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15년 전 봤던 [용서받지 못한 자]는 제 기억 속에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은퇴한 총잡이가 불의에 맞서 다시 영웅적인 활약을 하는...(제 기억이 맞는지는 이젠 가물가물합니다.) 그저 그런 서부극에 불과했습니다. 왕년 서부극의 스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물간 총잡이 윌리엄 빌 머니를 연기한 것이 흥미롭긴 하지만 부패한 보안관 리틀 빌 다겟(진 핵크만 :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에 맞서 다시 영웅이 되는 결말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랜 토리노]는 신기하게도 [용서받지 못한 자]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그랜 토리노]의 꼬장꼬장한 늙은이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용서받지 못한 자]의 월리엄 빌 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월리엄 빌 머니와 마찬가지로 월트 코왈스키 역시 한국전에 참여하여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으며,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던 아내의 죽음으로부터 영화가 시작하는 것도 묘하게 비슷합니다.
월트가 옆집에 이사 온 동양계 몽족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총을 잡는 모습 역시 [용서받지 못한 자]의 월리엄과 겹쳐지는 설정입니다. 은퇴 후 조용히 지내던 왕년의 히어로가 아내가 죽은 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일어서는... 영화의 중반부까지 전 '클린트 이스트우드 할아버지, 15년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으시군요.'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하지만 [그랜 토리노]는 [용서받지 못한 자]와는 달리 초반부터 꽤 재미있었습니다.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낯선 이웃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훈훈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월트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타오(비 방), 수(아니 허)를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이 당돌한 동양계 여자아이를 지켜주고 싶단 말야.
월트 코왈스키가 분기탱천하여 일어서길 바랬다.
몽족 갱단이 타오에게 폭행을 했을 때 월트는 노장의 힘을 발휘합니다. 왕년의 액션 히어로로 돌아가 몽족의 갱단 중 한 명을 경고로 묵사발을 내줍니다. 그 장면에서 얼마나 통쾌하던지...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할아버지 화이팅'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폭력은 더 큰 폭력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월트에게 당한 몽족 갱단은 수에게 복수를 합니다. 폭행당한 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저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월트는 '내가 뭔 짓을 한 거지?'라며 후회를 합니다. 그는 그들을 지키기 위한 폭력이 오히려 더 큰 폭력이 되어 그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느낀 것입니다.
수의 복수를 하자며 월트를 찾아온 타오를 지하 창고에 가두고 홀로 몽족 갱단을 찾아가는 월트. 저는 마음속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80세의 나이로 펼치는 멋진 액션 활극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경고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뭔가 본때를 보여줘서 다시는 그들이 타오와 수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면 된다고 저는 생각한 것입니다. 폭력이 더 큰 폭력이 되어 돌아온 사실을 알면서도 또다른 폭력으로 복수해야한다고 어리석은 저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 기대와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월트는 그 어떤 폭력 없이도 타오와 수를 몽족 갱단으로부터 지켜냅니다. 만약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전 월트의 마지막 선택을 미리 눈치 챌 수 있었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에 이 영화의 결말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가 과거 폭력적인 영화에 출연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참회의 의미로 감독과 주연을 겸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습니다. 만약 아카데미가 그런 의미를 높이 사서 [용서받지 못한 자]에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여했다면 [그랜 토리노]에겐 작품상을 뛰어넘은 더 큰 상을 수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랜 토리노]는 이제 테러는 전쟁으로 되갚아주는 폭력에 중독된 미국을 향한 노장의 충고와 더불어 미국의 폭력에 희생당한 약소국을 향한 참회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만 믿고 너무 까불지 말아라. 그 할아버지도 이젠 너무 늙었더라.
정녕 그의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단 말인가?
1995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며 로버트 킨케이드가 로버트 레드포드가 아닌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사실에 상당히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 클린트 우스트우드가 감독만 맡고 주연은 맡지 말았어야 한다며 제 영화노트에 써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제 경솔한 행동이 후회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랜 토리노]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연기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감독만으로도 벅찬 나이에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젊은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젠 아무도 할리우드의 거장이 되어 버린 이 노장 감독을 배우로 캐스팅하지도 않을 것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랜 토리노]를 보며 세상에 대한 심술이 얼굴 가득히 묻어있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연기를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니면 누가 해낼 수 있을지 감이 안 잡히더군요.(잭 니콜슨 정도? 하지만 잭 니콜슨은 꼬장꼬장하기 보다는 왠지 모르게 귀여움. ^^) 세상과 소통을 하지 못하지만 마음을 연 상대를 위해서라면 이 세상 그 무엇도 줄 수 있는 넓은 관용과 희생정신이 있는 그의 모습은 오랜 세월이 이 늙은 감독 겸 배우에게 얼마나 멋진 흔적을 남겼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평생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포드에서 일했고, 그렇기에 일본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아들이 못마땅한 월트 코왈스키.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으로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준 낯선 동양계 가족들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그의 모습은 정확히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겹쳐집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이젠 감독으로 밖에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왜 이제 그의 진가를 알아버린 걸까요?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노장의 투혼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마음속으로 응원하렵니다.
이제 내 진가를 알다니... 너무 늦었군.
정말 할아버지의 연기를 다시는 못 보는 건가요? 그 결정을 번복해주시면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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