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 그녀를 사랑할 수도, 증오할 수도 없었다.

쭈니-1 2009. 12. 8. 23:17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주연 : 케이트 윈슬렛, 랄프 파인즈, 데이빗 크로스
개봉 : 2009년 3월 26일
관람 : 2009년 3월 26일
등급 : 18세 이상

연차 휴가를 내다.

작년 말부터 갑자기 불어 닥친 외환 위기로 인하여 제가 다니는 회사에 불똥이 튀었습니다. 원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매출은 떨어지면서 제가 다니는 회사엔 일순간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결국 비용을 최대한으로 절감하고, 인원을 감축하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러면 그럴수록 회사의 분위기는 점점 삭막해졌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연차휴가를 낼 엄두조차 못 냈던 것이... 방통대 기말고사 시험이 다가와도 연차휴가를 내지 못했고(핑계 같지만 그 때문에 4학년 2학기 성적은 다른 학기에 비해 최악이었습니다.) 아파도 쉬지 못한 채 야근을 일삼았습니다.
게다가 2월엔 회사 서버의 데이터가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연차휴가는커녕 토, 일요일에도 나와 데이터 복구 작업에 매달렸으며, 3월엔 결산작업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린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저희 부서 직원들에게 '돌아가며 하루씩 연차휴가를 내자.'라고 제안을 한 것은 그러한 사정이 저 뿐만 아니라 저희 부서 직원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분위기 때문에 눈치 보느라 모두들 연차휴가 내는 것을 꿈도 못 꿨지만 먼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기에 저와 부서 직원들은 3월이 가기 전에 하루씩 연차휴가를 냈습니다.
제가 목요일을 연차휴가일자로 잡은 것은 첫째 새로운 영화들이 목요일에 개봉하기 때문이며, 둘째 여동생의 가게 개업일이 목요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휴가 날 저는 늦잠 대신 아침 일찍 일어나 CGV 상암에서(왜 CGV 상암이냐고요? 그곳에 평일 공짜 영화 초대권 2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효기간이 3월 31일까지인...)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동생의 개업식에서 일을 도와주며 오랜만의 연차휴가를 만끽했습니다.


 

구피와 함께 여행을 가며 휴가를 즐기고 싶었지만, 구피는 나보다 더 회사 눈치를 보더라.


첫 번째 선택은 당연히 [더 리더]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연차휴가 하루 전날 저는 CGV상암의 영화 시간표를 펼쳐놓고 이리저리 시간표를 짜 맞췄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계획의 중심엔 무조건 [더 리더]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우선적으로 [더 리더]를 보는 것을 전제로 하여 다른 영화의 시간표를 이리저리 짜 맞춰 본 것입니다.
그렇게 [더 리더]가 그날 계획의 중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영화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탔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디 아워스]를 만들었던 스티븐 달드리 감독에 대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케이트 윈슬렛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컸습니다.
케이트 윈슬렛은 모두들 [타이타닉]의 여주인공으로 기억하실 것입니다. [타이타닉]의 흥행기록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합니다. [타이타닉]이 1997년 기록한 전미흥행기록 6억 달러의 대기록은 작년 [다크 나이트]가 5억3천3백만 달러까지 접근했지만 여전히 철옹성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전미흥행기록을 포함한 전 세계 흥행기록인 18억4천2백만 달러의 기록은 2위인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이 기록한 11억1천9백만 달러와 비교했을 때 무려 6억 달러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대단한 [타이타닉]의 여주인공을 맡았기에 케이트 윈슬렛에게 [타이타닉]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족쇄와도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케이트 윈슬렛의 이후 행보를 보면 자신에게 달려있는 족쇄를 인식하지 않은 채 자신이 추구하는 연기철학을 위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록버스터에 대한 집착도 없고, 자신이 예쁘게 나오는 것에 대한 욕심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뚝심에 아카데미가 뒤늦게 여우주연상을 수여한 것입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더 리더]를 보며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줌마,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 하세요?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10대 소년과 30대 여성의 사랑이야기이다.

[더 리더]는 195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독일을 휩쓸던 당시 15세 소년 마이클(데이빗 크로스)이 36세의 한나(케이트 윈슬렛)를 만나 열병과도 같은 첫사랑에 빠지며 시작합니다. 10대 소년과 30대 여인의 사랑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들고 나왔기에 저는 둘의 사랑이 최대한 아름답게 꾸며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마이클과 한나의 사랑을 결코 아름답게 꾸며지지 않았습니다.
마이클은 한나를 훔쳐보고, 한나는 마이클을 적극적으로 유혹합니다. 그렇기에 마이클과 한나의 과감한 섹스신이 나올 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나는 10대 소년을 유혹하며 고민도, 죄책감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감정표현에 정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그 이유모를 당당함에서 나오는 카리스마는 15세 마이클이 빠져들었듯이 영화를 보는 제 마음도 순식간에 사로잡았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당당함, 카리스마, 그리고 아름다움은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있어서 필수요소입니다. 만약 15세 소년을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한나의 모습에 '어떻게 저럴 수가...'라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며 외면한다면 결코 이 영화에 감동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한나가 갑자기 마이클의 곁을 떠나 8년 후 재회하는 그 순간에도 한나의 당당함은 여전합니다.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신분으로 법정에 선 그녀는 재판장이 당황할 정도로 너무나도 당당합니다. 자신의 직분은 유대인을 관리하고, 감독하고, 감시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죄에 대한 반성보다는 당당함으로 맞서던 그녀를 바라보는 마이클의 당혹스러운 시선은 영화 초반 한나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제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그녀의 당당함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 당당함으로 인한 감정은 상반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마이클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동안...


 

그녀의 당당함은 아름답기도, 당황스럽기도 하다.


우린 그녀를 사랑해야 할까? 증오해야 할까?

나치의 신분으로 유대인을 학살한 끔찍한 살인죄로 종신형의 선고를 받는 한나. 마이클은 한나의 누명을 벗겨줄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최소한 종신형이 아닌 그 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입을 다뭅니다. 그녀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아니면 그녀를 증오하기 때문에? 어쩌면 둘 다 그가 입을 다물어버린 이유일 것입니다.
한나의 형량을 줄인다고 해도 그녀가 저지른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이클이 유대인 수용소에 직접 가서 느끼는 그 끔찍한 실상에 대한 절망은 고스란히 한나에 대한 증오로 변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너무나도 당당했기에 그 증오는 증폭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이클의 대학동기가 한나에 대한 비난을 퍼부어도, 그는 그녀에 대한 변명을 하지 못합니다. 아니 안합니다. 그녀는 그러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마이클은 알기에 그녀를 사랑한 마이클의 가슴엔 점점 상처만 깊어집니다.
[더 리더]가 굉장한 이유는 한나에 대한 상반된 감정을 제게 심어줬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초반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그녀가 저지른 참혹한 행위를 보며 느끼는 배신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나에 대한 사랑과 증오의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기에 이 영화는 단순한 10대 소년과 30대 여인의 사랑을 담은 멜로영화의 범주에서 벗어나 좀 더 복잡한 그리고 깊은 여운과 감동을 안깁니다.
결국 그녀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데엔 2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한나도, 마이클도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세상과 소통하지 못합니다. 성인이 된 마이클(랄프 파인즈)이 보내준 테이프는 한나와 마이클이 세상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여는 매개체가 됩니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여는 그 순간 둘은 각자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더 리더]는 한나에 대해서 사랑으로 시작했다가 증오로 변했다가 연민으로 마무리되는 감정을 충실하게 제게 전달해줍니다. 그 감정의 기복이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진행 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케이트 윈슬렛의 힘이었습니다. 하나의 캐릭터에 이렇게 많은 상반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더 리더]는 대단한 영화였습니다.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소극적인 자세가 적극적으로 바뀌는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연기라면 그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그가 이 영화에선 확실히 케이트 윈슬렛한테 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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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영화광
흠.... 아카데미 상탄 영화라 보고는 싶었지만, 별 감흥은 없네요.
별로 할말이.... ㅎㅎ 커서 챙겨보겠습니다.
 2009/03/27   
쭈니 뭐 별로 내키지 않으신다면 굳이 챙겨보실 필요는 없을 듯... ^^
하지만 케이트 윈슬렛을 좋아한다면 챙겨봐도 후회는 없을듯... ^^
 2009/03/27   
이빨요정
아카데미에서 주목한 영화는 못해도 기본이상은 되는듯 싶어요.
적어도 이런 영화는 저의 취향에는 맞는것 같습니다.
치고 때리고 부수는 영화도 좋지만 가끔은 좀 잔잔한 영화도 좋은듯.
 2009/03/29   
쭈니 잔잔하지만 깊은 여운도 있는 영화입니다. ^^  2009/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