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민규동
주연 : 주지훈, 김재욱, 유아인, 최지호
개봉 : 2008년 11월 13일
관람 : 2008년 11월 13일
등급 : 15세 이상
애초에 꽃미남이 득실거리는 영화가 보고 싶었을 리가 없다.
이번 주 개봉작중 기대작은 단연코 [미인도]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극이고, 야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니 엉큼한 30대 후반 중년 남자인 저로써는 [미인도]가 보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와 반대로 [앤티크]는 제 관심 밖의 영화였습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잘 생긴 남자는 모두 미워!'를 외치는 제게 꽃미남이 한 명도 아닌 네 명이나 나오는 영화를 제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운명은 잔혹했습니다. [미인도]가 개봉하는 목요일을 그토록 기다렸건만 막상 극장에선 [미인도] 대신 [앤티크]를 봐야 했습니다. 11월 한 달 동안은 옥션 이벤트로 당첨된 평일 메가박스 무료 영화 티켓으로 영화를 관람하는데 [미인도]는 옥션 이벤트 대상 영화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보고 싶었다면 돈 주고라도 볼 수 있었겠지만 다른 영화를 보면 무료인데 [미인도]만 돈 주고 본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더군요.
요즘 경제도 어렵고, 저희 회사도 경비절감을 시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저는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했습니다. '그래, 그까짓 꽃미남이 많이 나오면 어떠냐. 모두 나보다 못생겼다고 생각하면 되지!'라는 말도 안 되는 자기 최면을 걸며 [앤티크]를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앤티크]에 누구 나오는데?'라며 시큰둥한 표정을 짓던 구피는 주지훈이 나온다는 소리에 갑자기 표정이 밝아집니다. 이번 주 내내 야근으로 인하여 피곤하다며 투덜거리던 구피는 극장에서 한숨 자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오히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영화를 보더군요. 암튼 여자들이란... 꽃미남이 그토록 좋더냐? 나도 한때는 꽃미남이었다... 퍽~ ^^;
어디 섹시 미녀들만 잔뜩 나오는 영화는 없냐?
[여괴괴담]의 저주는 민규동 감독에게 통하지 않는다.
[앤티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이전에 먼저 이 영화의 감독인 민규동 감독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민규동 감독의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포영화 시리즈로 유명한 [여고괴담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무섭지 않은 영화로 정평이 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그러나 [여고괴담 시리즈]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이기도 합니다.
[여고괴담 시리즈]에는 한 가지 저주가 있는데 영화에 출연한 신인 여배우들은 모두 뜨지만 연출한 감독들은 흥행에서 부진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1편의 박기형 감독은 [여고괴담]이후 자신의 특기를 살려 연속 두 편의 공포영화를 연출합니다. 그것이 바로 [비밀]과 [아카시아]입니다. 하지만 두 편 모두 흥행참패를 당하죠. 결국 세 번째 영화인 [폭력서클]에서 액션으로 장르를 바꿨지만 흥행실패를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2편에서 민규동 감독과 함께 공동 연출을 맡은 김태용 감독은 [가족의 탄생]으로 평론가들의 찬사를 얻었지만 역시 흥행에선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 여우계단]을 연출한 윤재연 감독은 아직 차기작조차 맡지 못하고 있으며, [여고괴담 4 : 목소리]의 최익환 감독은 [그녀는 예뻤다]를 연출했지만 역시 조용히 간판을 내렸습니다.
오로지 민규동 감독만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이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로 흥행능력을 인정받고 [앤티크]에서도 현재 첫 주 출발이 꽤 좋은 편입니다. 물론 그러한 [여고괴담]의 감독에 대한 저주는 제가 너무 억지논리를 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여고괴담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 모두 아직 젊기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그들이 실패했다고 단정 짓기보다는 그들의 성공 가능성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괴괴담]의 저주라고? ㅋㅋㅋ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퀴어영화이면서 퀴어영화가 아닌...
잠시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러가 버렸네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민규동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민규동 감독은 참 특이한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동성애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이 분명합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시은(이영진)과 효신(박예진)의 미묘한 동성애 감정을 표현했었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는 여러 에피소드 중 조사장(천호진)과 태연(김태연)의 동성애적인 에피소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영화 모두 동성애가 표현되긴 했지만 퀴어영화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릅니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표현된 동성애는 단지 하나의 연결고리이거나([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여러 에피소드중 비중이 가장 작은 에피소드에([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민규동 감독의 취향은 [앤티크]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됩니다. [앤티크]의 주인공중 하나인 선우(김재욱)는 자기 스스로 '마성의 게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고교 시절엔 동창인 진혁(주지훈)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으며, 영화 중반엔 관객들을 놀라게 만드는 쟝(앤디 질렛)과의 진한 키스씬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민규동 감독의 연출한 세 편의 영화중 가장 퀴어영화에 가까운 영화가 바로 [앤티크]입니다.
그러나 [앤티크] 역시 퀴어영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의 관심은 동성애가 아닌 진혁이 케이크가게를 통해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진혁을 도와주는 친구 중 한명이 동성애일 뿐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민규동 감독의 관심이 다음 영화에서는 어떻게 작용될지 모르지만 그는 분명 동성애를 영화 속 하나의 소재로 차용하며 영화의 재미를 증폭시키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내가 부담스러워? 그러면 이 영화 보지 마!
호모포비아만 아니라면...
제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보다 민규동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에게 늘어놓은 이유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관람하려면 동성애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선우가 게이라서, 선우와 쟝의 키스씬이 나온다고 해서 [앤티크]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한다면 분명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재미를 모두 놓치게 될 것입니다.
민규동 감독은 [앤티크]에서 진혁을 제외한 세 명의 캐릭터들의 사정을 아주 간략하게 그려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유기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의지합니다. 이런 유기적인 캐릭터의 관계는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섭니다. 그러한 유기적인 캐릭터중 하나가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의 재미가 송두리째 빼앗긴다면 그건 너무 억울한 일입니다. 민규동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선우의 사랑 이야기는 아닌 것이 분명하니까요.
전 [앤티크]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영화는 유쾌했고, 귀여웠습니다. 화면에 펼쳐진 여러 종류의 케이크는 비록 그 달콤한 맛이 스크린에 표현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예쁜 화면을 만들어 냈으며, 게이 이야기도 나름 신선했습니다. 민규동 감독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감독답게 진혁의 어린 시절 유괴당한 이야기를 공포스럽게 포장하여 예쁘기만 하던 이 영화에 긴장감도 불어넣었습니다.
단지 영화의 후반부 유괴범을 잡는 과정이 너무 우연에 치우치는 것이 문제였지만 어차피 이 영화가 치밀함이 관건인 스릴러 영화가 아니기에 그 정도 단점은 그냥 넘길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뒤의 여성 관객은 동성애 장면이 나올 때마다 '징그러워'를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다들 들리도록 말하더군요. 동성애에 대한 취향은 각자 개인의 문제이지만 분명 호모포비아는 남에게 자랑할 정도의 떳떳한 행동은 아닙니다. 자신이 호모포비아임을 자랑하시는 분들만 아니라면 [앤티크]는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동성애의 관점에서 보지 말고, 네 남자의 유기적인 캐릭터의 관점에서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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