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정윤수
주연 : 손예진, 김주혁, 주상욱
개봉 : 2008년 10월 23일
관람 : 2008년 11월 11일
등급 : 18세 이상
나도 논란에 끼어들고 싶었다.
11월, 보고 싶은 영화의 리스트업은 이미 끝마친 상황입니다. 일주일에 두 편의 영화를 본다고 한다면 남은 11월 한 달 동안 제가 볼 수 있는 영화는 6편. 이번 주에 개봉하는 [미인도]와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시작으로 한동안 부지런히 극장을 들락거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11월 개봉작 라인업을 완료한 가운데에서도 자꾸 마음에 걸리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10월에 개봉한 [아내가 결혼했다]와 [바디 오브 라이즈]입니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영화의 장르상 극장보다는 비디오로 보는 것이 더 좋겠다고 이미 마음속으로 판결을 내려놓은 상태이고, [바디 오브 라이즈]는 번번이 저와 영화상영 시간대가 맞지 않아 이젠 반 포기상태입니다. 이렇게 10월에 개봉했지만 아직 보지 못한 이 두 편의 영화는 각기 다른 이유로 제 극장 나들이용 영화 라스트에서 제외되었건만 그렇다고 순순히 포기하기엔 뭔가 껄떡 지근한 그 무언가가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습니다.
그 중 결국 [아내가 결혼했다]를 봤습니다. 구피에게 끊임없이 같이 보러가자고 졸랐으나 구피가 싫다고 하는 바람에 이런 류의 영화를 혼자 극장에서 보는 것이 뻘쭘해서 그냥 나중에 비디오로 보려고 했는데 이 영화를 사이에 두고 요즘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나도 끼어들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결국 뻘쭘함을 이겨냈습니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남편을 둔 한 여자가 남편을 놔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선언하는 이야기로 분명 결혼에서 일부일처제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상당한 논란을 일으킬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결혼은 신성한 것이라 믿는 대한민국의 보수적인 보통 남자이기에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한 제 자세는 조금은 공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공격적인 자세는 영화를 보는 동안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날 공격할 수 있어?
당신이 남자라면 손예진의 매력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제가 이 영화를 향한 공격적인 자세가 영화를 보며 갑자기 풀어진 이유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손예진 때문입니다. 제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뭔가 논리정연하고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유를 기대하셨겠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남자입니다. 다시 말해 손예진은 정말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손예진이라는 배우를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녀가 예쁘다는 것은 알지만 전 예쁜 배우보다는 개성 있는 배우에 더 끌리기에(정말?) 손예진은 그저 예쁜 배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아라는 캐릭터의 옷을 입은 손예진은 예쁜 배우를 뛰어 넘는 엄청난 매력을 발산합니다. 귀엽고, 애교도 많습니다. 섹시하고 남자의 성적 판타지를 기꺼이 들어줄 만큼 성에 대해서도 적극적입니다. 비록 제가 싫어하는 축구지만(전 축구보다 야구가 좋습니다.) 여자들이 대부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스포츠에 대해서 남자보다 빠삭한 지식과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예쁘고 능력마저 있으니 과연 이런 여자에게 빠져들지 않는 남자가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그런 면에서 정윤수 감독은 꽤 영리한 선택을 한 셈입니다. 만약 주인아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남자 관객들에게 잘 먹히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결코 관객들과 정당한 논쟁을 벌일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가 이 논란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만큼 관객을 끌어들인 이유는 전적으로 주인아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관객들에게 충분히 먹혔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그토록 매력적이다 보니 결혼을 하고나서도 다른 남자와 또 결혼하겠다는 부당한 요구에도 어쩔 수 없이 거부하지 못하는 노덕훈(김주혁)이라는 캐릭터도 힘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좀 매력적이긴 하지!
일부일처제? 웃기고 있어!
자! 이제 논란의 중심에 한번 서 보죠.
[아내가 결혼했다]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부일처제에 대한 이 영화의 부정 때문입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영화에 대한 논란은 단순한 일부일처제의 부정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일부일처제가 무너진 상황을 바로 안방 TV 드라마에서 자주 목격했고, 드라마는 이 영화처럼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TV 드라마에서 일부일처제를 부정한 사람은 바로 남자였기 때문입니다. 부자, 혹은 능력 있는 남자들이 두 집 살림을 하는 것을 우리는 드라마에서 자주 보지만 그저 조강지처가 불쌍하다는 생각만 할뿐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강한 거부감은 바로 일부일처제를 부정한 주체가 남자가 아닌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여자는 너무 매력적입니다. 그렇다보니 남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노덕훈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는 주인아의 말에 노덕훈과 함께 관객들은 강한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럽던 그녀이기에 그녀가 사회적으로 결코 올바르지 못한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 더더욱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왜? 뭐가 부족해서? 덕훈이 인아에게 물어보듯 저 역시 인아에게 물어봤습니다. '도대체 왜 신성한 결혼의 의미를 더럽히려 하는 거지?' 하지만 돌이켜보면 TV 드라마에서 아내를 두고 첩과 함께 이중생활을 하는 남자 캐릭터에게 전 단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나쁜 새끼'라고 욕을 했을 뿐. 결국 [아내가 결혼했다]는 남성 중심적인 결혼관을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방법으로 부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 남편 한 명만 더 가지면 안 돼? 응? 딱 한 명만...
소유욕을 이겨내라!
그럼 왜 일부일처제의 부정이 그토록 논란을 일으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인 소유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공산주의 체제가 바로 그러한 인간의 소유욕을 부정했기 때문이죠. 누구나 자기 집을 가지고 싶고, 자기 방을 가지고 싶고, 자기 물건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것은 갓난아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장난감, 자기 침대, 자기 엄마의 품에 강한 집착을 보이죠.
결혼이라는 제도는 바로 그러한 소유욕의 대표적인 형식입니다. 결혼을 통해 '넌 내꺼'라고 선언하고 상대방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외도를 하는 경우 서로에 대한 소유의 의식인 결혼이 깨지고 법의 잣대로 간통이라는 죄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인아가 하려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결혼의 기본 원칙을 깨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그로인하여 덕훈은 인아를 소유하겠다는 강한 본능이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덕훈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결혼을 깨뜨리고 서로에 대한 소유를 풀어버리는 것과 인아의 다른 남자에 대한 소유욕을 인정하고 반쪽이라도 소유하는 것. 결국 덕훈은 후자를 선택합니다. 그러한 덕훈의 선택은 덕훈이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손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남자의 손해를 자주 접하지 못한 남자 관객들로써는 소유의 본능이 여자에게 짓밟히는 것에 분노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덕훈에게는 분명 다른 선택도 있었습니다. 바로 인아에 대한 소유를 포기하고 인아를 간통이라는 법의 잣대로 처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덕훈은 그러지 않음으로써 소유의 본능을 일정부분 포기합니다. 이것은 개인 선택의 문제이기에 그 누구도 덕훈을 욕할 수 없습니다.
너를 전부 소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난 좋아.
그들은 스스로의 행복을 선택했을 뿐이다.
자, 이쯤에서 이 영화의 논란에 대한 제 입장을 전반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만약 제가 덕훈이라면 전 인아를 포기했을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이와 함께 소유한다는 것을 저는 인정할 수 없으며,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저는 재 자신을, 그리고 아내를 용서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그렇다고 해서 인아와 덕훈을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아는 결코 덕훈을 속이지 않았고, 덕훈은 스스로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소유욕이 강하고,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의 힘이 강해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의미보다 강할 수는 없습니다.
인아는 행복해지고 싶었고, 그래서 자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합니다. 그것은 덕훈은 물론 재경(주상옥)이라는 남자와의 결혼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도 할 수 있으며, 일 때문에 덕훈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의 시간을 재경으로 채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분명 우리와 생각이 달랐지만 단지 너무나도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물론 그로인하여 덕훈은 불행해졌습니다. 하지만 덕훈 역시 인아와의 헤어짐보다 자신의 소유욕을 포기하는 것이 더욱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기에 인아의 이중 결혼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 역시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인아와 덕훈의 행복에 대한 욕망과 선택은 개인이 선택해야할 사항입니다. 간통이 범죄이지만 상대방이 신고를 하지 않으면 죄를 성립이 되지 않는 것처럼 인아와 덕훈의 선택 역시 결코 비난받을 일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이들의 행동과 선택에 저 역시 불쾌감과 많은 혼란을 느꼈지만 그것으로 덕훈와 인아가 행복해졌다면 그것으로 그들은 올바른 선택을 한 셈입니다. 우리의 사회적 통념이 아무리 강해도 그들이 그들 스스로 행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기에 저는 결코 그들을 우리가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술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그들이 부럽다.
그는 행복하다. 그것으로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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