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띠유 카소비츠
주연 : 빈 디젤, 양자경, 멜라니 티에리
개봉 : 2008년 10월 2일
관람 : 2008년 10월 7일
등급 : 12세 이상
우린 그저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것뿐이다.
지난주 구피를 두 달 만에 극장으로 끌어 들인 것은 흥행에 철저하게 실패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헬보이 2]였습니다. 그리고 1주 후 구피는 다시한번 극장 나들이를 감행하는데 이번에도 할리우드의 흥행 실패 블록버스터인 [바빌론 A.D.]를 선택했습니다.
[바빌론 A.D.]의 미국 내 흥행 기록을 이야기하자면 정말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분노의 질주], [트리플 엑스]의 액션 스타 빈 디젤이 주연을 맡아 관객의 기대를 모았던 이 영화는 7천만 달러를 투입하여 완성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블록버스터들이 1억 달러가 훌쩍 넘는 제작비를 쏟아 붓는 것을 감안한다면 [바빌론 A.D.]는 비교적 저렴한 제작비를 쓴 셈입니다.
하지만 지난 8월 29일에 개봉된 이 영화는 벤 스틸러, 잭 블랙의 코미디 [트래픽 썬더]에 밀려 9백만 달러라는 참담한 실적으로 박스오피스 2위에 그치더니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고작 2천2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그쳐 제작사인 폭스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빌론 A.D.]가 본전을 찾기 위해선 미국 내에서의 흥행은 물 건너갔으니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적 흥행을 기대해봐야 하지만 그도 여의치 않습니다. 현재 [바빌론 A.D.]의 전 세계 흥행 실적은 1천8백만 달러로 오히려 미국 흥행 실적에도 못 미칩니다. 제작비가 7천만 달러밖에 안 들어간 영화라서 충분히 제작비 회수가 가능할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현재 기록은 2008년 할리우드 흥행 실패작 상위권에 들어 갈만한 성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 구피가 묻습니다. '재미있대?' 저는 대답합니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 폭삭 망했대!' 제 대답에 구피는 그저 고개만 끄덕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폭삭 망하던, 말던, 구피와 저는 그냥 보고 싶은 영화를 볼 뿐이기에 남들의 평가는 참고사항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구피와 제가 영화를 보는 방식입니다.
이번엔 요 녀석을 보기위해 극장에 갔다.
그저 스피드와 액션을 바랬을 뿐이다.
전 미래를 소재로 한 영화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미래의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과학의 발전은 우리 사회를 좀 더 살기 편한 곳으로 만들지도 모르고, 현재의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미래는 대부분 암울합니다. 핵전쟁이 일어나 인류의 대부분이 죽거나, 외계의 침략, 로봇의 반란 등으로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또는 거대 자본이나 독재자가 세계를 장악하여 사람들은 그저 꼭두각시처럼 무미건조한 생을 살아가거나 그것에 반항하는 이들은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영화들이 자주 등장하고는 합니다.
[바빌론 A.D.]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는 거대한 전쟁으로 인하여 폐허나 다름없는 무법천지가 되어 버립니다. 주인공인 투롭(빈 디젤)은 내가 살기위해선 남을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 투롭은 더욱 강한 자가 되기 위해 무자비한 살인을 자행합니다.
사실 조금은 진부했습니다. 이런 식의 미래의 모습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투롭이라는 캐릭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혀 새로움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애초에 새로움을 얻기 위해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기에 [바빌론 A.D.]의 진부한 설정과 진부한 캐릭터는 제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는 좀 더 화끈하게 빈 디젤의 액션을 감상하기를 바랐습니다. [분노의 질주]와 [트리플 엑스]에서의 아찔한 스피드와 액션의 쾌감을 느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바람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깊은 나락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아줘.
그들의 여정엔 위험만 있을 뿐 액션은 없다.
이 영화에서 새로운 것이라고는 영화 속 음모자가 거대 기업이나 독재자가 아닌 동정녀 마리아와 예수의 기적을 미래 사회에 재현하려는 광신 집단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화끈한 액션만 있다면 그깟 새로움은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화끈한 액션도 없다는 점입니다.
투롭은 의문의 소녀 오로라(멜라니 티에리)를 미국으로 안전하게 데려오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몽골의 수녀원에서 오로라와 그녀의 보호자인 레베카(양자경) 수녀를 만난 투롭은 미국으로의 위험천만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 투롭은 오로라를 미국으로 데려오라는 의뢰를 받고 군용 헬기로 안전하게 오로라가 있는 몽골의 수녀원에 도착합니다. 그렇다면 의뢰자는 투롭과 오로라를 헬기로 꼭 미국은 아니더라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헬기는 휭 하니 가버리고 투롭과 그 일행은 열차를 타고, 잠수함을 타며 목숨을 건 미국으로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뭔가 헬기로 그들을 안전한 곳에 데려갈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그러한 설명을 생략해 버립니다. 그러니 투롭의 위험천만한 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도대체 쟤네 왜 저렇게 고생하는 거야? 투롭이 아까 타고 온 헬기타고 휭 하니 날아가면 되잖아?' 영화 내내 들었던 제 의문점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점은 그 위험천만한 여정에 액션은 극히 제한되어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빈 디젤로도 모자라 양자경까지 가세했기에 영화 내내 화끈한 액션을 기대했지만 그들의 여정에는 위험만 있을 뿐 액션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뭐야?'라는 푸념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그런데 우리 시원한 액션은 언제 하냐?
서둘러서 끝내줘라.
'그래도 뭔가 나오겠지!' 지루한 장면이 계속되어도 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마지막엔 정말 뭔가 화끈한 액션이 나와 줄 거야.'라고...
오로라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녀를 둘러싼 음모가 벗겨지는 그 순간에도 저는 기대감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기대감을 [비빌론 A.D.]는 끝내 외면했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구피는 '뭐야, 끝난 거야?'라고 묻습니다. 구피 역시 저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서둘러서 끝낸'입니다. 마치 흥행 실패를 예감한 제작사가 극장 상영 시 1회라도 더 상영하기 위해서 억지로 영화의 러닝타임을 90분으로 맞춘 느낌입니다. 제 생각엔 투롭이 죽는 장면으로 1편을 마무리하고, 2편을 제작해서 1편에서 제대로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풀어내고 투롭과 광신 집단인 노라이트의 최후 결전을 화끈한 액션으로 그려냈다면 조금은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초등학교 학예회에서 한 어린 아이가 엉터리 노래를 부른 후 관객들의 야유를 참지 못하고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부분은 얼버무리고 황급히 무대 밖으로 도망치는 것처럼 영화를 마무리합니다.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라도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로써는 [바빌론 A.D.]가 끝나고 나서 엉터리 영화에 대한 화가 나기보다는 측은감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마티유 카소비츠는 [증오]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암살자(들)], [크림슨 리버]로 관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은 프랑스의 젊은 감독입니다. [고티카]로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블록버스터 [바빌론 A,D.]를 감독하게 된 그는 이 영화의 실패로 할리우드 내에서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습니다. 그가 결코 능력이 부족한 감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바빌론 A.D.]는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할리우드에서의 성공의 길은 멀고도 험하단다.
그러니 너무 속 쓰려 하지 말고 위장약이나 실컷 먹어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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