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질리안 암스트롱
주연 : 가이 피어스, 캐서린 제타 존스, 시얼샤 로넌
개봉 : 2008년 3월 27일
관람 : 2008년 3월 27일
등급 : 15세 이상
3월, 쭈니는 무기력에 빠졌다.
봄은 여성의 계절이라고들 합니다. 흔히들 봄 처녀라는 말이 있는데, 봄만 되면 여성들은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설렌다고 하는 군요. 그런데 남성인 저도 요즘은 봄을 타나봅니다. 일이 손에 안 잡혀 그냥 하루 종일 멍하게 앉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제 몇 주 후면 방통대 중간고사가 시작되는데 아직 공부는 시작도 안했고, 예전엔 영화 이야기 쓰는 것이 큰 기쁨이었는데 요즘은 영화 이야기 쓰는 것조차 귀찮습니다. 이 무기력증을 탈피하고자 나름대로 이것저것 노력을 해봤지만 아무래도 봄이라는 놈이 지나가야 무기력증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암튼 무기력증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재미있는 영화보기를 선택했던 저는 [천일의 스캔들]과 [데스 디파잉]을 이틀에 걸쳐 연달아 봤습니다. 구피도 제 무기력증을 눈치 챘는지 이틀 연달아 영화를 보자고해도 순순히 따라와 주더군요.
다행히 [천일의 스캔들]을 재미있게 본 덕분에 약간은 무기력증에서 빠져나올 기미가 보였던 저는 [데스 디파잉]으로 봄날 무기력증을 완전히 빠져나올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데스 디파잉]을 보고 나오는 길... 전 오히려 제 몸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기력마저 쑤욱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데스 디파잉]은 제가 기대했던 영화의 재미를 단 하나도 갖추지 못한 채 2시간동안의 지루함만을 안겨주었습니다.
마술영화... [프레스티지]? 혹은 [일루셔니스트]?
[데스 디파잉]을 기대했던 이유는 이 영화가 마술을 소재로 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프레스티지]와 [일루셔니스트]를 통해 마술 영화의 묘미를 만끽했던 저는 [데스 디파잉]도 그러한 재미를 안겨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일단 모든 것은 갖추어 있었습니다. [프레스티지]의 휴 잭맨과 크리스찬 베일, [일루셔니스트]의 에드워드 노튼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가이 피어스의 연기력과 카리스마는 분명 [데스 디파잉]의 재미를 풍성하게 해줄 것이며, [프레스티지]에서 역할이 미미했던 스칼렛 요한슨과 [일루셔니스트]에서 에드워드 노튼에게 가려져 그 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제시카 비엘에 비해 [데스 디파잉]의 캐서린 제타 존스는 가이 피어스와 함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킬 동반자로써 적합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영혼이라는 마술과는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소재도 눈에 띄었습니다. 마술을 소재로 했지만 철저하게 판타지적인 결말을 이끌어냈던 [프레스티지]와 판타지적인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다가 사랑이라는 현실적인 결말을 선택했던 [일루셔니스트]의 중간 지점에 [데스 디파잉]이 서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 어떤 것이라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무기력한 일상의 연속 속에서 마술이라는 활기찬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만 있다면 그 결말이 판타지적이건, 현실적이건, 제겐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전 철저하게 이 영화를 즐기기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던 것입니다.
이도, 저도 아니다.
하지만 [데스 디파잉]은 [프레스티지]와 같은 극적인 재미도 없으며, [일루셔니스트]와 같은 가슴 절절한 애틋함도 없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마술사인 후디니(가이 피어스)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상심한 나머지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맞추면 1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는 지상 최대의 심령술 쇼를 벌이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스코틀랜드의 3류 심령술사 메리(캐서린 제타 존스)는 후디니를 속여 상금을 탈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그녀는 후디니의 매력에 빠져버리고 말죠.
후디니와 메리의 싱거운 로맨스가 진행되는 동안 이 영화는 마술 영화의 재미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한 재미를 점차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단지 변덕심한 톱스타 후디니와 그런 후디니와 사랑에 빠진 가난한 심령술사 메리의 로맨틱 무비다운 스토리만 펼쳐질 뿐입니다.
영화의 전개가 지루하면 할수록 영화의 마지막에 펼쳐질 클라이맥스에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심령술 쇼는 그리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았으며, 마지막 반전이라는 것도 영화의 초반에 모두 풀어헤쳐버려 더 이상 볼 것이 없었습니다.
배우들에 의한 재미도 기대 이하였는데, 가이 피어스는 실존 인물인 해리 후디니를 연기하기위해 머리를 뽀글 퍼머를 했는데 별로 어울리지는 않더군요. 캐서린 제타 존스도 이젠 예전의 그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약간은 뚱뚱한 몸매를 보여줘 영화를 보는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구피가 묻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영화야?' 사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적인 재미는 아닌 것 같고, 해리 후디니의 신비로운 인생을 다룬 전기 영화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사랑 영화도 아닌 것 같고... 도대체 이도, 저도 아닌 이 영화,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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