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8년 영화이야기

[주노] - 날라리인줄 알았는데 범생이더라.

쭈니-1 2009. 12. 8. 22:19

 


 


감독 : 제이슨 리트먼
주연 : 엘렌 페이지, 제니퍼 가너, 마이클 케라, 제이슨 베이트맨, 올리비아 썰비
개봉 : 2008년 2월 21일
관람 : 2008년 3월 4일
등급 : 12세 이상

땡잡았다.

그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일정이 빡빡하게 채워졌던 날입니다. 구피에겐 미리 야근할 것이라 통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날에 대한 그 어떤 기대도 제겐 없었습니다. 그저 열심히 일해서 다음날이라도 좀 한가하게 만들자는 생각뿐.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일정을 끝마치고 야근을 하기위한 두 번째 일정에 돌입하려는 순간, 두 번째 일정을 다음 주로 미루자는 전화를 받게 된 것입니다. 종로 한가운데에서 일에 치여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다가 전화를 받는 순간 처음엔 당황스러웠습니다.
오후 4시 30분. 일정이 취소되었으니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만 했지만 시간이 어정쩡했던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자니 회사에 도착하면 퇴근 시간이 되어 버릴 것이고, 집으로 가자니 너무 이른 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있으니 내일 업무를 위해 스트레스도 풀 겸 영화를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1순위는 요 며칠 동안 저와 계속 인연이 엇갈리고 있는 코헨 형제의 아카데미 정복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영화는 저와 인연이 닿지 않더군요. 어쩜 그렇게 상영시간대가 저와 안 맞을 수가 있는 것인지... 결국 [그때 그 사람들]이후 거의 3년 만에 다시 종로3가 단성사에 선 저는 시간대가 가장 알맞은 [주노]를 보는 것으로 이 땡잡은 날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미국 박스오피스의 신화를 만나다.

사실 [주노]라는 영화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습니다. 올해 아카데미의 작품상 노미네이트된 5편의 영화중에서도 [주노]는 제게 가장 기대치가 낮은 영화였으니까요. 하지만 [주노]의 놀라운 미국 박스오피스 성적을 본 다음부터는 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선 작년 12월 7일에 고작 7개 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던 이 저예산 영화는 이후부터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점점 스크린을 늘려나갔고 급기야는 [나는 전설이다]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개봉한지 13주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박스오피스 1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벌써 [주노]가 벌어들인 흥행수입은 1억3천5백만 달러를 돌파하고 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아카데미에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후보에 올랐으며 스트리퍼 출신의 디아블로 코디가 각본상을 수상함으로써 이 영화로 국민 여동생으로 떠오르고 있는 엘렌 페이지와 함께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하였습니다.
이러한 [주노]의 성공신화는 분명 색다른 사건입니다. 자극적이고 거대하며 새로운 영화들이 넘쳐나는 할리우드에서 10대의 임신을 다룬 이 작은 코미디는 엄청난 제작비와 화려한 특수효과를 갖춘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해내지 못한 것들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시간대가 맞는 영화가 [주노]밖에 없어서 선택하긴 했지만 텅 빈 극장에 앉아 [주노]를 기다리는 제 마음은 호기심 반, 기대 반이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영화 길래, 그 깐깐하다는 미국 관객들을 무장해제 시킨 것일까?' 이러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저는 마쳤던 것입니다.


 

 


10대 임신이 이렇게 건전할 수 있을 줄이야...

[주노]가 국내에 개봉하며 자연스럽게 이 영화와 비교되는 영화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제니 주노]라는  우리 영화입니다. 10대 임신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와 주인공의 이름이 같은 이 영화는 [주노]의 각본가인 디아블로 코디가 우연이라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일단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사실 [제니 주노]를 보지 못한 저로써는 [주노]와 [제니 주노]를 비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만 개봉당시 자극적인 소재 탓에 국내 영화팬에게도 집중포화를 맞으며 흥행 실패의 길을 걸었던 [제니 주노]를 생각한다면 [주노]는 분명 [제니 주노]하고는 기본부터가 다른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제가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주노]는 10대의 임신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채택했으면서도 그 어떤 영화보다도 건전하고 착하게 진행됩니다.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한 엉뚱 소녀 주노(엘렌 페이지)는 결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며, 그녀의 주변 사람들도 마치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표정으로 주노를 도와줍니다.
임신한 10대 소녀의 방황과 탈선이 그려질 법한데 그런 것 따윈 찾아볼 수도 없고, 보수적인 어른들과 친구들의 손가락질이 뒤따를법한데 역시 그런 것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임신을 통해 사랑에 대해 조금씩 눈을 떠가는 주노의 성장담이 풋풋한 웃음과 함께 펼쳐질 뿐입니다.
제가 처음엔 [주노]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이유가 날로 자극적이 되어가는 영화의 소재가 이젠 10대 임신으로까지 번져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는데 [주노]를 보고나니 보수적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미국 관객들이 왜 [주노]에 열광하는지, 그런 미국 내에서도 보수적인 단체로 유명한 아카데미가 왜 이 영화에 주목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이 영화, 정말 보수적입니다.


 

 

  
너무 착해도 심심하더라.

자극적인 소재를 전혀 자극적이지 않게 이끌어 나간 데에는 물론 주연을 맡은 엘렌 페이지의 공이 컸습니다. 결코 예쁘지는 않지만 왠지 친숙한 얼굴을 가진 그녀는 이제 갓 20대를 맞이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쟁쟁한 할리우드 여배우들도 해내지 못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
[데어데블], [엘렉트라], [킹덤]의 액션히어로 제니퍼 가너도 정말 예뻤습니다. 엄마가 되고 싶어서 주노의 아기를 입양하는 바네사를 연기한 그녀는 액션배우보다는 이런 배역이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마음에 들었던 배우는 주노의 엉뚱한 친구 레아를 연기한 올리비아 썰비인데 그녀의 최근작인 [더 시크릿]을 조만간 볼 생각입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영화인데 그녀 덕분에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렇게 자극적인 소재를 착하게 만든 배우들의 매력덕분에 [주노]는 편안하게 볼만한 영화가 되었지만 문제는 너무 편안해서 조금은 심심하더라는 것입니다. 마치 언제나 올바른 정답만을 알고 이는 친구와 대화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가끔은 엉뚱한 말과 행동도 했으면 좋으련만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말과 행동만을 하는 그런 친구를 보는 듯한 느낌이 [주노]에게서 들었습니다.
구피가 처음 임신했다고 제게 고백했을 때도 전 이 영화의 주노와 블리커(마이클 케라)처럼 담담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10대 소녀, 소년에 불과한 주노와 블리커의 너무나도 담담한 표정을 보고나니 '넌 너무 착해서 재미없어'라며 심술을 부려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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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전, 여주인공 남친, 애아빠죠? ㅋㅋ 암튼 그 배우의 연기에 맘이 끌리던데요^^ 여주인공은 생긴건 10대인데 말투는 30대 ㅡ,.ㅡ;;  2008/03/14   
쭈니 성숙한 어린 연기자들의 연기가 가장 눈에 띄긴 하더군요. 엘렌 페이지는 이제 완전히 스타로 뜰것 같습니다. ^^  2008/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