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8년 영화이야기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 - 판타지는 아니지만 영화는 재미있다.

쭈니-1 2009. 12. 8. 22:16

 

 


감독 :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주연 : 벨렌 루에다, 로저 프린셉
개봉 : 2008년 2월 14일
관람 : 2008년 2월 18일
등급 : 15세 이상

또 속았다.

혼자 [추격자]를 보고나서 이번엔 구피와 함께 연달아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을 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추격자]를 보며 흥분했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컵라면으로 굶주린 배를 채운 후 구피와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오퍼나지]를 봤답니다.
하지만 [오퍼나지]를 본 후의 첫 느낌은 '속았다'입니다. 거짓 정보와 낚시질 마케팅이 난무하는 요즘 전 곧잘 거짓 정보에 속고, 낚시질 마케팅에 낚이곤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궁녀]였습니다. 사극 스릴러를 기대하고 갔다가 전설의 고향식의 귀신 영화만 보고나온 전 다시는 낚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다짐은 채 6개월도 되지 않아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오퍼나지]는 [판의 미로]의 길예르모 델토르를 전면으로 내세웠습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것은 '[판의 미로] 길예르모 델토르의 2008년 새로운 판타지 스릴러'입니다. 하지만 전 첫 번째 낚시질을 잘도 피했습니다. 그것은 길예르모 델토르라는 이름입니다. 이 영화는 신인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의 영화입니다. 길예르모 델토로는 제작자일 뿐입니다. 첫 번째 낚시질을 피했던 저는 '내가 또 속을 줄 알고?'라며 의기양양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낚시질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두 번째 낚시질은 판타지 스릴러라는 이 영화의 장르입니다. 워낙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비록 감독이 길예르모 델토로는 아닐지라도 [오퍼나지]가 [판의 미로]와 비슷한 어두운 판타지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네이버에서도 이 영화의 장르를 판타지, 스릴러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제가 영화 정보 및 스틸 사진을 구하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씨네서울에서도 이 영화의 장르를 공포, 스릴러, 미스터리, 판타지라고 소개하였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가 판타지라는 말인가요? 이 영화가 판타지라면 [궁녀]도 판타지 영화일 것입니다. 그냥 순수하게 공포 스릴러라고 이 영화의 장르를 소개했다면 이렇게 속았다는 분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텐데...


 

 


정말 무서웠단 말이다.

[오퍼나지]는 벽지를 뜯는 어린 아이들의 섬뜩한 손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고아원의 한때와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이어집니다. 로라가 입양되어 영화는 몇 십 년 후, 고아원으로 이사를 온 로라(벨렌 루에다)와 그녀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처음엔 낡은 저택의 음습함 외엔 별다른 공포거리가 없던 이 영화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제 심장을 조여 옵니다. 로라의 아들인 시몬(로저 프린셉)이 보이지 않는 상상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집안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펼쳐지며, 그렇게 긴장감은 서서히 고조되어만 가는 것입니다. 정체불명의 사회복지사 베니그나의 등장과 시몬의 실종이 이어지며 이 영화의 긴장감은 최고조로 치솟습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코 무서운 장면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섬뜩한 귀신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관객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할만 장면들이 갑자기 튀어 나오지도 않습니다. 끔찍한 장면도 교통사고를 당한 베니그나의 모습뿐입니다. 그런데 무섭습니다. 사건이라고는 시몬의 실종뿐이며, 로라를 위협하는 것은 고작 어린 원혼뿐이지만, 서늘한 기운이 절 감싸는 듯 제 몸은 딱딱하게 굳어만 갔습니다.
어쩌면 [오퍼나지]는 그러한 점만으로는 충분히 호평을 할 만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판의 미로]식의 판타지로 꾸며냈던 것은 어차피 국내 영화 수입사의 횡포이니 [오퍼나지]와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퍼나지]는 정말 나무랄데 없는 완벽한 공포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서서히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연출력은 굳이 무섭고 끔찍한 장면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관객의 공포를 끄집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비극이지만 비극이 아닌 결말

그렇게 서서히 제 심장을 조여오던 이 영화는 심령술사가 등장하는 영화의 중반부에 잠시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이미 판타지에 대한 기대감을 포기했던 저는 그래도 여전히 스릴러에 대한 나지막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심령술사가 원혼의 존재를 밝히는 장면에서 스릴러도 아닌 단순한 공포 영화가 되어 버릴까봐 당황했던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재빠르게 공포 스릴러로 복귀하며 귀신이 난무하는 단순한 공포영화에 대한 제 거부감을 잠재워 주었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장면을 계기로 이 영화는 '이 저택에 무언가가 존재 한다'라는 추측을 '어린 원혼들이 존재 한다'는 확신으로 바꿔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은 시몬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차 나약해지는 로라가 다시한번 용기를 내어 시몬을 찾기 위한 결심을 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러한 로라의 결심 덕분에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클라이맥스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남편도 떠나버린 텅 빈 낡은 저택. 로라는 어린 원혼들을 불러내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시몬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두려움을 극복해냅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한 그녀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두려움보다 더욱 무서운 아픈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하게 비극적인 결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판의 미로]의 오필리아처럼 로라 역시 참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여 그녀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세계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가 [판의 미로]와 맞닿아 있는 것은 제작자인 길예르모 델로로 뿐만 아니라 마지막 결말의 의미도 비슷하군요.


 

 


후유증이 꽤 오래 갈 것 같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오퍼나지]는 정말 잘 만들어진 공포 스릴러입니다. 구피는 이 영화를 [디 아더스]와 비슷하다고 하더군요. 정말 딱 그렇습니다. 무서운 장면 없이도 관객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탁월한 연출력. 몇 번을 칭찬해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많이 하던 놀이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공포의 장치로 사용했던 것도 탁월했습니다. 내가 보지 않는 사이에 서서히 내게로 다가오는 그림자들. 이 놀이가 그렇게 무서운 놀이인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어른이 되지 않는 피터팬과 환상의 나라 네버랜드. 그리고 어른이 되어 버린 웬디. 명작동화 '피터팬'을 차용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된 웬디가 피터팬을 찾아 현실의 세계를 버리고 네버랜드로 돌아가는... 그런 단순한 동화의 이야기가 이렇게 슬프게 느껴질 줄 몰랐습니다.
구피는 이 영화를 본 후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장을 조여오던 공포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피가 저런 반응을 보인 것은 [극락도 살인사건]을 본 후 두 번째입니다. 쎈 영화 두 편, [추격자]와 [오퍼나지]를 연달아 본 저는 며칠 동안 꿈자리가 뒤숭숭합니다. 하지만 워낙 악몽을 잘 꾸는 체질이라 악몽 때문에 잠을 못 이루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암튼 판타지를 기대했다가 공포만 맛보고 나온 [오퍼나지]에 대한 후유증을 꽤 오래 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다. 바보같이 낚시에 걸려든 제 책임인걸. 그리고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영화는 재미있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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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던행자
쩝....저는 심리적인 공포스릴러물에는 그닥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편입니다.....그래서 예전에 디아더스같은 영화보고도 공포는 전혀 못느꼈지만 그 반전에 " 정말 잘만들었다"라는 생각정도만 하고 넘어갔었으니깐요;;그래서 보다 "구체적인"공포가 나오는걸 좋아합니다....
ps.근데......저는 TV광고보고 왜 공포물이 지금나오지 =ㅅ=? 라고생각했었는데....음..쭈니님은 포스터를 보고 낚이셨군요(포스터는 못봐본;) -ㅁ-;; 어쩔때보면 포스터나 인터넷상의 정보보단 그냥 트레일러 같은걸보고 본인이 느끼는게 더 잘맞는것같네요 ㅋ;;
 2008/02/21   
쭈니 왠만하면 영화 정보는 안볼려고 노력중이랍니다.
그래서 더욱 잘 낚이는 듯... ^^
 2008/02/21   
PETAL
정말 공포영화를 못 보는데 언니가 질질 끌고 가서 봤습니다-_-;
정말 쭈니님 말씀대로 딱히 무서운 장면은 없는데 소리도 쾅쾅! 거리고... 괜히 긴장돼서무섭더라구요T_T
(덧붙여 베니그나의 사고장면을 보면서 대체 왜 중요하지도 않은 부분만 그렇게 잔인하게 만드는거냐!! 라고 절규했어요. 으헑..)
 2008/02/22   
쭈니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 의사남편은 도대체 베니그나의 어디에 인공호흡을 한거냐고... 순간 너무 공감되었어요. ^^  2008/02/23   
길예르모 감독은 어떻게 영화를 이렇게 풀어갈수 있는건지..
저한테는 공포나 무서움 보다도 어떻게 가서 어떤 결말을 주려하는건지가 늘 궁금합니다
판의미로때부터 참 독특하고 재미있네요..
 2008/03/16   
쭈니 그러게요...
비록 이번 영화는 길예르모 감독의 영화는 아니지만 그 독특함은 길예르모 감독의 후예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
 2008/03/17   
아.. 감독이 달랐군요 -.,-;;; 왜 아무생각없이 후속작이라고 생각했을까요  2008/03/27   
쭈니 [판의 미로]가 국내에선 좀 알려진 영화이니 그 덕을 보려고한것 같습니다. ^^  2008/03/28   
Mid
으와! 이거 스페인어로 봤었는데.....묘하게 중독적이더라구요 ㅎㅎ  2008/06/21   
쭈니 무자막으로???
설마!!!
저도 스페인어로 봤습니다만 자막을 열심히 읽느라 그게 스페인어인지 영어인지 분간을 못했을 뿐입니다. ^^;
 2008/07/06   
yeji
이 사이트를 어떻게하다가 들어왔는데요~ 너무좋은데요^^ 저도 오퍼나지를 봤는데..진짜 엄청난반전이.. 그래서 엄청재미있게본기억이나네요^^  2008/10/25   
쭈니 좋다니 다행입니다. ^^
저도 이 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하지만 꽤 무서웠다는... ^^
 2008/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