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8년 영화이야기

[추격자] -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스포일러 있습니다.)

쭈니-1 2009. 12. 8. 22:16

 

 


감독 : 나홍진
주연 : 김윤석, 하정우, 서영희
개봉 : 2008년 2월 14일
관람 : 2008년 2월 18일
등급 : 18세 이상

온통 [추격자]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일주일에 두 편의 영화를 보면 일단 저는 만족입니다. 하지만 지난주는 만족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봤지만 여전히 보고 싶은 영화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보고 싶은 모든 영화를 볼 수 없었던 저는 보고 싶은 영화중 몇 편은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사실은 [추격자]를 포기하려 했습니다. 극장 예고편을 보고나서 김윤석의 카리스마와 하정우의 연기 변신에 반해 기대작이 되었지만 지난주엔 [추격자]외에도 보고 싶었던 영화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일찌감치 [스파이더위크가의 비밀]과 [점퍼]를 본 저는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을 마지막으로 보고 [추격자]는 포기하려고 했던 겁니다.
하지만 제가 [추격자]를 포기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영화 이웃 분들의 적극 추천으로 인하여 귀가 얇은 저는 다시한번 고민에 빠져야만 했고, 영화 사이트에서 온통 [추격자] 이야기뿐인 것을 발견하자마자 제 마음은 완전 [추격자]로 기울어지고 말았습니다.
구피도 [추격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나봅니다. 하지만 구피는 저와는 정반대로 [추격자]를 기피하더군요.  저와 같이 [추격자]의 예고편을 봤을 땐 '재밌겠네.'라며 맞장구쳐주던 그녀가 갑자기 마음이 돌아선 이유는 '영화의 뒷맛이 찝찝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유난히 밝은 영화만 찾는 구피는 찝찝한 스릴러는 보고 싶지 않았나봅니다.
결국 구피와 몇 차례 실랑이 끝에 저 혼자 [추격자]를 보러갔습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앞좌석까지 꽉 들어찬 극장 안에서 저녁식사도 굶어가며 [추격자]를 기필코 보고 말았던 것입니다.  


 

 


미진을 찾아라!

사실 제가 예상했던 [추격자]는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과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대한 액션 스릴러였습니다. 조연배우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김윤석과 2008년이 가장 기대되는 배우 하정우의 카리스마 대결을 기대하며 저는 [추격자]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제 앞에 나타난 [추격자]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엄중호는 지영민 만큼은 아니지만 '쓰레기'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나쁜 놈이었습니다. 스릴러가 기본적으로 좋은 놈과 나쁜 놈의 대결이라면, [추격자]는 나쁜 놈과 조금 덜 나쁜 놈의 대결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으니 두 캐릭터의 대결에 의한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게다가 지영민은 의외로 빨리 경찰에 잡혀버립니다. 지영민이 영화의 초반 경찰에 잡혀 버린다는 것은 이 영화가 지영민과 엄중호의 대결이 주를 이루고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지영민과 엄중호의 대결을 보려면 영화의 마지막까지 기다려야합니다. 물론 기다린 만큼의 보람은 충분히 있었지만...
[세븐 데이즈]처럼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영민이 범인이라는 것은 이미 예고편에서부터 나온 사실이고, 새삼스럽게 그것을 감출만큼 이 영화는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무엇으로 우리는 이 영화를 봐야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김미진(서영희)입니다. 제가 김윤석과 하정우라는 이름에 매료되어 가볍게 지나쳐버린 그 이름 서영희. 바로 그녀가 연기한 김미진이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입니다.


 

 


누가 미진을 죽였는가?

연쇄살인마 지영민은 미진을 납치합니다. 어린 딸이 있는 미진은 엄중호의 강요에 못 이겨 몸을 팔기위해 지영민에게 갔고 그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 엄중호는 미진을 찾아 헤맵니다. 사실 매우 간단한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신인 나홍진 감독은 이 간단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관객이 빠져들 만한 장치들을 마련해놓습니다.
천연덕스러운 김윤석의 연기는 관객을 웃게 만듭니다. 마치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를 보는 듯한 그의 연기는 올해 최고의 발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정우의 섬뜩한 연기는 그가 왜 충무로의 주목받는 배우인지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이미 영화 [두 번째 사랑]과 드라마 [히트]에서 결코 범상치 않은 배우임을 알아봤던 저로써는 제 예감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에 내심 기뻤으면서도 죄책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끼지 못하는 지영민이라는 캐릭터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김윤석의 신들린 연기도, 하정우의 섬뜩한 연기도 모두 제가 보기엔 들러리에 불과했습니다. 전 미진이 안타깝게 죽는 장면이 나오기까지 그저 담담하게 '재밌네.'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적절한 긴장감과 웃음을 동반한 잘 만든 한국식 스릴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미진이 죽는 그 장면에서 제 온몸은 얼어 버렸습니다. 마지막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한줄기 눈물을 보며 저는 재미가 아닌 죄책감을 느껴야했습니다. 망치를 휘두르고 있는 것은 분명 지영민이지만 그녀를 그렇게 방치했던 것은 바로 우리들의 작은 무관심이 아니었던가요?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왜 하필 그녀는 그 슈퍼마켓에 들어갔을까요? 왜 하필 슈퍼마켓 주인은 뒤돌아서는 지영민을 붙잡았던 걸까요? 왜 하필 경찰들은 그때 낮잠을 자서 늦게 출동을 했으며, 왜 하필 여형사는 슈퍼마켓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다렸던 걸까요? 그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녀를, 미진을 살릴 수도 있었는데, 영화 속 그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져줬더라면 삶을 향해 그렇게 안타깝게 몸부림을 쳤던 미진을 어린 딸의 폼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는데...
영화 속의 그 모든 캐릭터들은 무능하고 무관심했습니다. 서울 시장이 똥 테러를 당하자 지영민 사건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려고 발버둥치는 경찰들은 미진의 생사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오직 미진의 딸을 통해 점점 나쁜 놈에서 좋은 놈으로 개과천선하고 있는 엄중호만이 고군분투 노력하지만 그도 미진을 살리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우린 뉴스에서 잔인한 연쇄살인마의 기사를 들으며 '쯧쯧쯧' 혀를 찹니다. 하지만 며칠 후면 곧 잊어버립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동네의 연쇄살인보다도 바로 내 자신의 아주 작은 문제가 더욱 크게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의 무능하고 무관심한 그들을 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며 미진의 죽음 장면에서 재미 대신 죄책감을 느꼈던 것 역시 같은 이유이며, 영화를 보고나서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결국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던 것은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어항 속에 있던 그녀의 머리가 무섭기 보다는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엄중호가 지영민을 내려칠 때 저도 같은 마음으로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에 대한 죄책감에 잠을 못 이룰 것 같아서. 그리고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IP Address : 58.236.170.151 
투야
휴,, 평을 읽으면서,, 저는 다시한번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사실 전 이 영화를 그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화관에서 나와서 잠시 앉아있는동안 다음 회차를 보기위해 들어가는 사람들을 잡고 싶었습니다.. 보지마세요..
이영화.. 그냥 보기엔 너무 힘든 영화에요.. 보지마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답니다.
정말 영화만 봤을때,, 너무 잘만든 영화같다고,, 영화를 잘 모르지만,, 분명,,근래에 보기드문 수작인거 같은데,, 내용이 너무너무 안타까워서,, 화가나서,, 무서워서,,
보고 난후의 그 찝찝함을 어찌할바를 몰라서 말리고 싶었어요.

미진이 다시 깨어났을때,, 역시.. 얘도 주인공이구나.. 안죽었구나..라며 약간은 피식..
거렸드랬죠,, 하지만,, 4885가,, 빈 담뱃갑을 버릴때,, 그때부터 속이 타들었갔어요..
제발제발,, 속으로 외치면서,, 제발,, 그런데 결국,,, 지옥에나 떨어질 4885놈이..
미진을,, 불쌍한 미진을... 휴.. 그장면에서 영화관 내에 모든 사람들이..
조그마한 탄식을 내지르는걸 느꼈습니다.. 그 답답한 기분.. 본 사람만 알수 있죠.
화가 나서 울었어요.. 영화를 보며,, 대체 왜~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참,, 씁쓸하더군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싸이코패스형의 범죄라 해도
아무래도 거기에 더 노출이 쉽게 되는게 미진과 같은 여자들이 아닌지..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두 김윤석씨에게 푹 빠졌답니다.. 이전에도 본적이 있지만,,
정말 그분의 엄중호를 보면서,, 본인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으니까요,,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하정우씨,, 사실 지인이 팬이라 아무정보없이 본건데,,
당분간 하정우씨 쳐다보고 싶지가 않은 정도에요 ㅡㅡ;

그리고,,전 왜 문득문득,, 4885의 조카가 떠오르는지 모르겠어여..
생각할수록 끔찍한.. 자신의 조카마저.. ㅡㅡ; 무서운 세상입니다.
구피님이 안보셨다니 천만 다행이네요~앗 넘 길게 썼어요 ㅋ

 2008/02/20   
쭈니 늦은 시각까지 제 글을 기다려주셨군요. 감사합니다. ^^
투야님의 말씀대로 참 힘든 영화였습니다.
[세븐 데이즈]도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의 재미를 떠나 내용만으로 무거운 마음만을 안고 왔었는데...
저 역시 두려움에 떨던 조카가 떠올랐습니다.
그 장면은 중호가 영민의 정체를 알게되는 장면임과 동시에 정말 섬뜩한 장면이었습니다.
암튼 뭐 덕분에 한국스릴러의 가능성을 [세븐 데이즈]에 이어 확인했지만... ^^
 2008/02/20   
엘잠
저는 사실 서영희의 죽음은 마지막 20분의 전투씬을 위한 하나의 '도구' 였다고 생각하는지라....
굳이 황당한 상황설정을 만들어서 살려냈다가 다시죽였어야되는지 좀 이해가 안되네요... 다른 부분은 다 맘에 드는데 여기서는 꽤나 실망했습니다.
물론...영화상에서 서영희의 죽음이 가장 중요한 '자극제'가 되는건 분명합니다. 단지 그 시퀸스의 구성 자체가 좀 더 치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영화가 짜증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런 슬픔의 정서를 느낄수 있는 부분을 적절히 제한했기 때문이죠. 그게 심하면 '실미도'나 '홀리데이'처럼 되어버리거든요.
시장 테러 건도 그렇지만 여기저기에 상당한 비판요소가 깔려있습니다. 신인감독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연출력입니다. 이게 장편영화 처녀작이라니....
 2008/02/20   
쭈니 미진의 죽음씬은 관객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엘잠님처럼 치밀하지 못함을 탓하시는 분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경우는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이라고 생각하기에 치밀함보다는 메세지를 읽으려 노력한 편입니다.
덕분에 그 장면의 부족한 치밀함은 개의치않은 부류죠. ^^
이 영화의 코믹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요소는 어쩌면 신인감독의 대담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홍진 감독이 그런 초심을 잃지않고 용감하게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네요.
 2008/02/20   
카츠라사
간만에 글을 남깁니다.^^

어떤걸 떠나서 이 영화는 정확히 '한국형!' 스릴러 물인거 같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것보단 잔인한 씬인데 최대한 커트해서
머릿속에서 그 상상하게 만드는것 하며...아직 우리나란 여자에 대해 폭력을 가할순 있지만 강간이나 추행하는 장면은 좀 꺼려합니다..만약 일본이나 미국이었다면 사람을 죽이는 장면도 몇번이나 있었을거며 분명히 여자한테 못된행동을 보여줬을겁니다. 하지만
감독은 보란듯이 다이렉트로 보여주는게 아니라 그러한것들은 관객의 상상에 맏기고있더군요. 그것이 오히려 더 섬짓하게 보이기도 하고요..왜냐하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끝이 없기때문인거 같습니다.
 2008/02/25   
쭈니 카츠라사님 정말 오랜만...^^
카츠라사님 말씀대로 잔인한 장면을 최대한 자제하긴 한것 같습니다.
잔인한 장면을 잘 못보는 저도 좀 약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런대도 섬찍했던 것은 카츠라사님 말씀대로 상상탓일지도...^^
 2008/02/25   
쭈니팬
너무 오랜만에 댓글 달아보네요... 사실은 너무 오랫만에 영화를 봐서 그렇지만요(먹고살기 바빠서...ㅠ.ㅠ) 봐야지하면서도 시간이 안나서 못 보나 하고 있었는데... 오늘 세미나가 일찍 끝나줘서... 바로 달려가서 봤네요...ㅋㅋ
오랜만에 영화를 봐서 그런지 너무 좋았구요... 저도 쭈니님과 같은 생각을 했었네요... 관람중 주위 여자분들이 아쉬움에, 긴장감에 내뱉는 괴성(?)도 재밌었구요...
누군가 저에게 "잘 만들어진 살인의 추억 2"라고 했었는데... 김윤석씨의 연기가 자꾸만 송강호씨를 생각나게 하더군요(쪼금 아쉬웠죠). 그래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최고의 연기였네요... 하정우씨도 마찬가지구요...
간만에 좋은 영화보니 기분이 좋으네요... 쭈니님 글 보면서 이 영화는 꼭 봐야지 하면서도 놓치는 영화가 많았는데...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리구요... 아니, 냉정한 평가 부탁드리구요... 제가 영화 선택하는데 지침이 된다는거 잊지 마세요...^^
 2008/02/26   
쭈니 이거 어깨가 무겁군요. ^^
쭈니팬님의 닉네임이 절대 부끄럽지 않은 글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ㅎㅎㅎ ^^;
 2008/02/27   
아.. 하정우 멋있더군요..
시나리오 자체가 빈약해 일어날때의 끝맛은 좀 약했지만 그걸 덮고도 남을 연기력에 2시간과 돈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
 2008/03/11   
쭈니 하정우는 분명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임에는 분명합니다.
하필 저와의 첫만남이 [구미호 가족]이어서 첫 느낌은 별로였지만... ^^;
 2008/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