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8년 영화이야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감동이 필요한 요즘 그녀들이 나타났다.

쭈니-1 2009. 12. 8. 22:13

 

 


감독 : 임순례
주연 : 문소리, 김정은, 엄태웅, 김지영, 조은지
개봉 : 2008년 1월 10일
관람 : 2008년 2월 10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설 연휴 5일간 쭈니는...

설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 마치 소풍을 하루 앞둔 초등학생의 들뜬 마음처럼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자꾸만 시계만 쳐다보았습니다. 오늘만 지나면 5일간의 꿀맛 같은 연휴가 시작된다는 생각만으로도 제 마음은 넉넉해지고 편안해졌습니다.
설 연휴 첫째 날, 아침부터 시댁에 가야한다며 부산을 떠는 구피의 성화에 못 이겨 늦잠도 못자고 졸린 눈을 비비며 웅이와 함께 부모님 댁으로 출발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만두를 무려 500여개를 빚고 잠시 낮잠을 자고나니 하루가 지나가 버렸더군요.
설 연휴 둘째 날, 새벽같이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술을 마시고, 저녁엔 처갓집에 가서 처남과 화투치고, 그렇게 왔다 갔다 했더니 또다시 하루가 금방 지나갔습니다.
설 연휴 셋째 날, 웅이와 함께 서울 대공원에 갔습니다. 눈썰매도 타고, 놀이기구도 타고, 웅이는 재미있다며 신나했지만 전 힘들고 어지러웠답니다. 저도 어렸을 땐 놀이기구 타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젠 놀이기구를 바라만 봐도 힘이 드네요. 서울 대공원에서 돌아와 그대로 쓰러져 저녁 내내 시체놀이 했습니다.
설 연휴 넷째 날, 전날 서울 대공원의 후유증이 컸는지 저녁이 될 때까지 마루에서 구피와 함께 시체놀이를 하다가 어영부영 저녁식사를 하고나니 또다시 하루가 지나버리더군요.
설 연휴 마지막 날. 갑자기 집으로 쳐들어온 어머니와 누나 식구들 때문에 편히 쉬지도 못하고 왔다갔다... 모두들 집에 보내고 나니 또다시 저녁. 구피에게 '이렇게 내 황금연휴를 보낼 순 없어!'라며 징징거려서 겨우겨우 영화 한편을 봤습니다. 결국 영화 한편만으로 허무하게 5일간의 황금연휴를 보내게 될 줄이야...


 

 


그렇게 감동이 고팠니?

구피에게 영화를 보자는 허락을 받았지만 솔직히 볼 영화가 없었습니다. 제가 보고 싶었던 [명장], [찰리 윌슨의 전쟁]은 교차 상영 중이어서 시간대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 연휴 기간 동안 국내 박스오피스를 장악한 한국영화들이 집 근처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도배한 상황이라서 제가 볼 수 있는 영화는 한국영화뿐이었죠. 이미 [더 게임]과 [원스 어폰 어 타임]을 봤기에 더 이상 한국영화는 이제 그만을 외치려 했던 저는 대형 멀티플렉스의 횡포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만고만해 보이는 한국영화들 중 무엇을 볼 것인지... 그리고 저와 구피의 선택은 개봉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박스오피스 1, 2위를 다투고 있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아니 어찌 보면 구피와 제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집 앞 멀티플렉스 극장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볼 수밖에 없게끔 구피와 저를 몰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네요. 암튼 요즘은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멀티플렉스 극장이 관객에게 영화를 강요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개봉한지 너무 오래된 영화의 경우는 너무 많은 영화의 홍보 덕분에 보지 않아도 마치 본 듯한 착각을 빠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2008년 한국영화의 흥행바람을 몰고 있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홍보 또는 리뷰, 인터넷 기사들과 접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는 사이 저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게 질려버린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전 결코 좋은 마음으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러갈 수는 없었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선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두고 보자.'라는 오기가 생겼으며, 영화이야기도 '그렇게 감동이 고팠니?'라는 약간은 딴죽거리는 제목을 미리 생각해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마음이 풀렸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좌석에 앉으니 이 영화에 대한 오기는 자연스럽게 풀리더군요. 하긴 제가 애초에 화가 났던 것은 관객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횡포와 한국영화가 조금만 잘나가면 오두방정을 떨며 관련 기사와 홍보를 내보내기에 여념이 없는 미디어의 한심함 때문이었을 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제겐 1월 둘째 주 기대작 순위 4위로 꼽힐 정도로 보고 싶었던 영화였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을 TV를 보며 손에 땀을 쥐고 응원했던 저로써는 임순례 감독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감동적인 드라마로 꾸며낼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봤습니다. 임순례 감독은 비인기 스포츠 선수들의 서러움과 고단한 삶에 대한 애환, 그리고 아줌마들의 코믹함과 스포츠의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을 적절하게 영화 속에 배치시켜 놓았더군요. 너무 질질 짜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실없이 웃기지도 않고, 강과 약을 조절하며 웃음과 감동을 제게 안겨주었습니다.
[세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등 저예산 영화만을 만들었던 임순례 감독은 너무나도 능수능란하게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더군요. 상업영화를 처음 만드는 감독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덴마크와의 결승전은 임순례 감독이 얼마나 상업적인 능력이 풍부한지 증명해보입니다. 사실 덴마크와의 결승전은 결과가 뻔히 나와 있는 경기입니다. 한국 선수들은 선전을 하지만 결국 연장전과 승부던지기 끝에 아쉽게 덴마크에게 무릎을 꿇고 은메달에 머물 것임을 모두들 알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드러난 스포츠만큼 김빠지는 것이 없을 텐데, 임순례 감독은 마치 그래도 우리 한국 대표 팀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기게끔 마지막 경기 장면을 장식합니다. 질것을 뻔히 아는 경기를 보며 이길 수도 있다는 이상한 희망이 들게 하다니 참 굉장한 능력입니다.  


 

 


그래, 난 감동이 고팠다.

영화를 보기 전 저는 '그렇게 감동이 고팠니?'라고 이 영화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그래, 그렇게 감동이 고팠다!'라고 인정하고 싶어지더군요. 맞습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감동이 필요한 요즘 시기적절하게 나타난 영화입니다.
돌이켜보면 [실미도]도 그랬고 [왕의 남자]도 그랬습니다. [쉬리]도 그랬고 [태극기 휘날리며]도 그랬습니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연말, 연초에 개봉을 했다는 것입니다. [실미도]와 [왕의 남자]는 12월에,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2월에 개봉했습니다. 한해가 끝나고 또 다른 한해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감동이 고팠고, 그래서 감동을 찾아 헤맸을지도 모릅니다.
전 그랬습니다. 의욕 있게 2007년을 시작했지만 2007년이 끝나는 시점에서 남은 것은 허무함뿐이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나이만 들어간다는 사실이 두렵고 처량했습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아줌마들의 힘찬 경기 장면을 보며 그렇게 마음속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함께 울어주며 지나간 해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해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들의 땀방울 하나에, 그녀들의 안타까운 눈물에, 그리고 그녀들의 혼 힘을 다하는 고함 소리에, 저는 그녀들과 함께 뛰었고, 그녀들의 희망을 공유했으며, 그녀들의 눈물을 느꼈습니다. 네, 전 감동이 고팠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참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3백만을 넘어 4백만 관객을 향해 앞으로 전진 하는 것을 보면 저처럼 참 많은 사람들이 감동이 고팠나봅니다. 감동이 필요한 요즘 그녀들이 나타나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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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쓰
약간 늦으막하게 보셨네요~^^
개봉하고 바로 봤는데 역시나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예상대로 감동을 주기로 작정한 영화였습니다;ㅋㅋ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가 후반부 경기장면에서는 앞에서 관객들이 진짜 경기를 보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더군요;;; ㅋ

그리고 기억에 남는 장면,,, 문소리씨가 볼을 던지고,,, 조용한 가운데,, 덴마크 선수들이 펄쩍 뛰어오르는 모습,,, 기억에 참 남는것 같습니다~ ^^
너무 아쉽고, 안타까워서,,, 탄성을 슬며시 냈죠;;
 2008/02/12   
쭈니 저희 동네 극장에선 사람들이 조용하게 관람하시던데... ^^;
후반 경기장면에서 같이 응원하며 봤다면 더욱 실감났을지도 모르겠네요.
역시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봐야한다는...
 2008/02/12   
바이올렛
전 김정은의 느끼한 연기와 김지영의 오버된 연기가 영화 보는 내내 많이 불편하더라구요. 마지막 패배를 알려주는 슛 장면이 인상에 많이 남네요.  2008/02/17   
쭈니 그래도 김정은은 이 영화 덕분에 이미지 변신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좀 느끼했지만 예전 그녀의 연기는 오히려 오버가 많았거든요. ^^  2008/02/17   
한국인 특유의 한과 스포츠 감동.. 딱 그것 뿐이었다..
우리나라 영화 시장과 관객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본 영화
 2008/04/28   
쭈니 관객에겐 한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폭코미디가 흥행성공한다고해서 저질코미디를 좋아하는 관객의 한계라고 한다면 참 우스운 거죠.
상업영화는 관객을 쫓아가야합니다.
관객이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철저하게 분석해서...
그런 관객에게 한계가 있다면 영화산업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죠.
 2008/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