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7년 영화이야기

[내사랑] - 사랑보다는 이별과 잊음에 대한 이야기.

쭈니-1 2009. 12. 8. 20:37

 

 


감독 : 이한
주연 : 감우성, 최강희, 엄태웅, 정일우, 이연희, 류승용, 임정은
개봉 : 2007년 12월 18일
관람 : 2007년 12월 24일
등급 : 12세 이상

크리스마스이브 영화 제 3탄

[용의주도 미스신]을 선택하는데 약간의 망설임이 필요했고, [내셔널 트레져 : 비밀의 책]을 선택하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필요하지 않았다면, [내사랑]을 선택하는데엔 정말 몇 시간 동안의 망설임을 겪어야 했습니다.
[내사랑]에 대한 망설임은 영화를 보기 전날인 23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리저리 영화의 시간표를 짜다보니 마지막 세 번째 볼 영화에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과 [내사랑]이 남더군요. 당연히 둘 다 보면 좋으련만 둘 중 하나는 나중으로 밀어 놔야할 판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은 은근슬쩍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당일에도 [내사랑]과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을 둘러싼 고민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셔널 트레져 : 비밀의 책]을 보고 나온 저는 한동안 극장 매표소에서 서성거렸습니다.
결국 제 마음이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으로 완전히 기울여질 때쯤 한 가지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극장 안으로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을 보러온 단체 유치원생의 행렬을 목격한 것입니다. 순간 아이들의 고함 소리로 소란스러울 극장 안을 생각하며 저는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을 자연스럽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치원생보다도 더 강력한 닭살 커플들의 애정행각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멜로영화, 당연히 데이트 족들로 극장 안이 가득 찰 것임을 저는 예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저는 제 옆 좌석의 닭살 커플들이 영화는 안보고 서로의 입술을 쪽쪽 빨아대는 소리를 들이며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인 제 처지를 비관하며 [내사랑]을 봤습니다.  


 

 


[러브 액츄얼리]가 되고 싶은가?

[내사랑]은 제 2의 [러브 액츄얼리]를 꿈꾸는 영화입니다. 사랑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네 커플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에 아기자기하게 펼쳐낸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용 영화로는 안성맞춤으로 보입니다.
감우성과 최강희 커플의 통통 튀는 사랑 이야기, 정일우와 이연희 커플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첫사랑 이야기, 류승용와 임정은의 일방적인 짝사랑 이야기, 그리고 엄태웅의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 등. [내사랑]은 마치 사랑 영화의 뷔페처럼 맛난 음식을 여러 가지로 차려 놓고 관객들에게 동시에 즐기라고 권유합니다.
그것은 분명 [내사랑]의 장점입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한다면 제 2의 [러브 액츄얼리]를 꿈꾸는 모든 영화들의 장점입니다. [용의주도 미스신]에서도 드러났듯이 로맨틱 코미디의 굳건한 틀은 깨기가 여간해서는 힘이 듭니다. [러브 액츄얼리]는 어차피 깨기 힘든 틀 안에 갇혀 있다면 차라리 그 틀 안에서 전형적인 스토리를 여러 개 겹쳐서 보여줌으로써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내사랑]은 그런 [러브 액츄얼리]의 방식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내사랑]에서의 네 가지 에피소드들은 솔직히 새로움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이들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영화를 이루었다면 '진부해'라며 외면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진부함들이 여러 개 모여 뷔페를 만든 것입니다. 아무리 진부하더라도 여러 가지 메뉴들을 즐길 수 있다면 관객으로써는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건 이별에 대한 영화이다.
    
하지만 [내사랑]은 [러브 액츄얼리]처럼 보고나서 사랑에 충만하여 기분이 좋아지기 보다는 잊혀진 옛 사랑에 대한 기억에 조금 우울해집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내사랑]이 사랑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이별에 대한 그리고 지나간 사랑을 잊는 것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이 영화가 메인으로 내세운 감우성과 최강희 커플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굳이 3년 전이라는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 이 둘의 에피소드는 착한 세진(감우성)과 4차원적인 감수성을 가진 주원(최강희)의 사랑 이야기를 달콤하게 그려냅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 관객은 느끼게 됩니다. 이 영화가 왜 3년 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는지. 주원의 사랑을 못 잊어 눈물을 짓는 세진의 모습은 이 영화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해줍니다.
과 선배인 지우(정일우)를 짝사랑하는 소현(이연희)의 첫사랑 이야기도 그러합니다. 이연희의 귀여운 연기가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업 시켰지만 기본적으로 이 둘의 이야기 역시 지우가 옛 사랑을 잊고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였습니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정석(류승용)과 그런 정석을 지고지순하게 짝사랑하는 수정(임정은), 6년 전 헤어진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작정 서울을 찾은 프리허그 운동가 진만(엄태웅)까지. 물론 그들은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별을 전제로 세워진 것이며, 잊음을 이루고 나서야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내사랑]은 사랑 이야기이기 이전에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며, 잊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잊는건 힘이 들다.

그렇기에 [내사랑]은 [러브 액츄얼리]를 보고난 후의 행복감은 없습니다. 감우성과 최강희 커플의 사랑은 예뻤고, 이연희는 귀여웠으며, 류승용과 임정은도 미처 깨닫지 못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여기에 배낭족 엄태웅의 모습까지 곁들여지면 [내사랑]은 충분히 사랑스러워집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슬픕니다. 세진과 주원의 사랑은 안타깝고, 지우와 연희의 사랑은 싱그럽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진정 사랑했던 아내를 잊기로 결심하고 어렵게 수정에게 마음을 연 정석 역시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6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머나먼 고국으로 돌아온 진만의 사랑 역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웃고 있습니다. 세진은 주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생일 선물을 보고 웃고 있으며, 지우와 연희는 새로 시작된 사랑 앞에서 웃고 있으며, 수정과 정석도 서로를 향해 웃습니다. 이룰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진만 역시 환하게 웃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제부터가 시작일 것입니다. 세진은 주원의 그림자를 걷어내야 하고, 지우와 연희는 서투른 풋사랑을 시작해야하며, 정석과 수정은 마음의 문을 조금씩 천천히 열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6년 동안의 약속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진 진만은 비로써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이 시작하는 그 순간 영화는 끝이 납니다.
결국 [내사랑]은 너무나도 어렵게 잊음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이며, 사랑은 [내사랑]이후에 비로써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사랑]은 보고나면 아련함이 남습니다. 내게도 저렇게 잊혀진 사랑이 있기에... 저도 그녀에게 그렇게 잊혀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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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빵
친구랑 크리스마스때 이 영화를 봤습니다.
(크리스마스때부터 이런 영화를 보고 있었다니...ㄱ-;;)
왠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프리허그 할때 눈물이 나오더라구요..ㅠㅠ;;
영화를 오랜만에봐서 감정이 부풀어 오른거 같습니다만..
잘 만들어진 영화라 생각됩니다..^^;;
 2007/12/27   
쭈니 네, 행복이 충만하지는 않았지만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데엔 동감입니다.  2007/12/27   
스턴트맨
오랫만에 생각나서 왔네요~
개인적으론 내사랑 보고 그저 평범하다 란 생각만 했던..
사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극장 가서 '옴니버스형식'이란 말만 들었을 뿐인 영화라서 어떤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지요,
그게 영화를 조금더 나아보이게 했는지 더 재미없게 만들었는진 나로선 알수없지만 아무튼, 코끝이 찡하지도 않았던뭐,,
그래도 쭈니님 평을 보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네요ㅎ
 2008/01/08   
쭈니 제 리뷰를 보고 새롭게 느껴지셨다니 기분 좋네요. ^^;
뭐... [내사랑]은 조금 평범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워낙 멜로라는 장르자체가 더이상 할이야기가 없는 장르라서 평범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녔죠. ^^
 2008/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