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크리스 웨이츠
주연 : 다코타 블루 리차드, 니콜 키드먼, 에바 그린, 다니엘 크레이그
개봉 : 2007년 12월 18일
관람 : 2007년 12월 20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영화에 파묻힐 것이다.
이제 이틀 후면 대망의 크리스마스. 사실 크리스마스라고해서 뭐 특별한 추억이나 계획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크리스마스는 연말이라는 분위기에 맞물려 묘한 흥분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올해 크리스마스는 제겐 그리 흥겹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찌어찌하다보니 크리스마스에 회사 당직이 걸려버렸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2008년 1월 1일이 당직이었는데 갑자기 24일 샌드위치데이에 의한 임시공휴일로 선포한다는 회사의 방침에 의해 제 당직이 앞당겨져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전 크리스마스이브엔 쉬고 막상 크리스마스엔 회사에 출근해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구피는 쌤통이라며 놀립니다. 크리스마스에 저만 빼놓고 파티 하겠다며 좋아하더니만 이번엔 크리스마스에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며 자랑합니다. 남편 없는 크리스마스를 맘껏 즐길 요량인 듯합니다. 크리스마스를 구피와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직딩이라는 슬픈 제 처지는 어쩔수 없이 회사 당직실에서 혼자 쓸쓸하게 TV영화나 보면서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우울함을 날려버리기 위해 24일은 혼자 영화나 실컷 보겠다고 구피에게 일찌감치 선언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먹는 시간만 제외하고 볼 수 있는 영화는 모두 볼 계획입니다. 그러기위해선 이미 20일 날 봤던 [황금 나침반]의 영화이야기를 써야만합니다. [황금 나침반]의 영화이야기를 써야 맘 편하게 다른 영화들을 볼 수 있으니... 거의 20년 동안 영화를 보면 리뷰를 써왔더니 리뷰를 쓰지 않으면 다음 영화를 보는 것이 꺼림칙한 이상한 증상에 시달립니다. ^^
이제 [황금 나침반]을 쓰는 이유.
사실 요즘은 영화이야기를 쓰는 시간이 좀 빨라졌습니다. 예전엔 영화 보는데 2시간이 걸렸고, 영화이야기 쓰는 시간이 3시간 정도 걸려서 오히려 영화보기보다는 글쓰기가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불합리적인 상황에 빠지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편하게, 글을 잘 쓰겠다고 노력하기 보다는 그냥 내 느낌 그대로, 그냥 그렇게 내 맘대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시간도 절약되었고, 조금 모자라도 이게 내 글이다. 라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황금 나침반]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지난 21일 [황금 나침반]의 영화 이야기를 쓰겠다며 시도를 했었지만 2시간동안 쓰다 지우기를 반복한 후 그냥 삭제해 버렸습니다. 최근 들어선 좀 드문 경우이죠.
제가 이렇게 [황금 나침반]을 쓰는 것에 시간이 많이 빼앗긴 이유는 이 영화에 대한 제 상반된 감정이 공존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쪽에선 너무 부실한 캐릭터와 스토리에 분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오랜만에 보는 판타지 영화에 대한 반가움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지난 21일 쓴 글은 [황금 나침반]에 대한 불만에 가득 찬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자꾸만 '그래도 2편은 보고 싶은데...'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분명 [황금 나침반]은 제 기대감을 채워주기엔 부족했지만 2편에 대한 기대감을 안겨주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데 제게 며칠의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입니다.
난 꼬마 영웅이 싫다.
일단 제가 이 영화에 대해서 실망했던 요소부터 써야겠군요. 제가 [황금 나침반]에서 가장 싫었던 것은 너무 당당한 꼬마 영웅의 존재입니다.
제게 있어서 판타지 영화는 기본적으로 성장 드라마였습니다. 물론 판타지 영화가 모두 성장 드라마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반지의 제왕 시리즈],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며 제가 가장 많은 재미를 느낀 부분이 바로 주인공들의 성장이었습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프로도는 처음엔 아무런 힘도 없는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만약 절대 반지가 미약한 존재인 호빗이 아닌 야망이 큰 인간이나, 위대한 힘을 가진 엘프, 자존심이 강한 난장이가 가졌다면 이야기가 틀려졌을 것입니다. 절대악인 사우론조차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호빗이 절대반지를 가졌기에 절대반지는 오랜 기간 동안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었으며, 절대반지를 이용하기 보다는 순수하게 절대반지를 파괴하겠다는 여정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한가운데엔 프로도의 영웅으로써의 성장이 있었습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처음 등장한 해리 포터는 비쩍 마른 아무런 힘도 없는 꼬마 아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하고, 론과 헤르미온느 등 친구들을 만나고, 부활하려는 절대악 볼드모트의 공격을 받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영웅적인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황금 나침반]의 라라는 조금 다릅니다. 처음부터 너무나도 당돌한 이 꼬마 여자아이는 마치 준비된 영웅처럼 모든 것을 척척해냅니다. 심지어 황금 나침반의 조작법도 별 무리 없이 알아냅니다. 그녀는 자신 앞에 펼쳐진 위험한 모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자신감에 가득 차있습니다. 그런 당돌한 그녀의 모습에 저는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영화를 보며 주인공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던 저로써는 처음부터 영웅인 라라의 모습은 제가 좋아하는 판타지의 모습이 아닌 셈입니다.
그래도 2편은 나와 줘라.
주인공인 라라의 캐릭터가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영화 자체를 제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며 영화를 즐기는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 외에도 제가 [황금 나침반]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유는 많습니다.
개연성이 없는 스토리 전개도 그 중 하나입니다. 도대체 왜 라라의 삼촌인 이스라엘(다니엘 크레이그)는 라라를 방치하고, 라라의 임시보호자인 대학학장은 콜터 부인(니콜 키드먼)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라라가 콜터 부인의 여정에 동참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황금 나침반이 악의 손에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라라에게 황금 나침반을 건네준 것일까요? 도대체 왜 콜터 부인은 아이들을 시험한 것이며, 라라의 주위에 동조자들이 쉽게 모이는 것일까요?
만약 라라가 예언의 아이라는 사실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면 이스라엘은 좀 더 라라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했으며, 대학학장은 콜터 부인의 손에 라라를 그렇게 쉽게 넘겨주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라라가 예언의 아이라는 사실을 모두들 모르고 있었다면 대학학장은 라라에게 황금 나침반을 줘서는 안되며, 라라의 주위에 동조자들이 그렇게 쉽게 모이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암튼 이래저래 이 영화의 스토리 개인성은 참 많이 부실해 보입니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저는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습니다. 제 2의 [반지의 제왕]을 원했지만 [황금 나침반]은 오히려 [나니아 연대기]보다도 더 부실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황금 나침반]을 무조건적으로 싫어할 수 없는 것은 대작 판타지에 대한 목마름 때문입니다. [반지의 제왕]은 끝나버렸고, [해리 포터 시리즈]만을 목 놓아 기다리는 것도 이제 지쳤습니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는 1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반년을 더 기다리라고 합니다. [황금 나침반]은 이렇게 기다림에 지친 제게 그래도 오아시스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그 오아시스가 기대대로 시원한 물이 아닌 뜨끈 미지근한 물이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입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반지의 제왕]처럼 내년 겨울에도 어김없이 [황금 나침반 2]가 찾아오길 바라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아무리 1편이 미국 내에서 흥행 참패를 당했어도 제발 2편을 나와 주길... 그러면 저는 기대를 조금 낮춰 2편은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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