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전윤수
주연 : 김강우, 이하나, 임원희
개봉 : 2007년 11월 1일
관람 : 2007년 11월 9일
등급 : 12세 이상
주말에도 출근해야 한다.
직딩에게 가장 행복한 날은 바로 금요일 저녁일 것입니다. 5일간의 힘든 회사 생활과 2일간의 짜릿한 휴식이 교차하는 금요일 저녁은 밤늦도록 술을 마셔도 부담이 되지 않으며, 아무리 피곤해도 그냥 잠이 들기 아깝습니다.
저는 금요일 저녁엔 극장에서 영화를 자주 봅니다. 평일에 영화를 보면 영화가 끝나는 시간이 너무 늦어 집에 들어가는 것도 걱정되고, 다음날 출근도 걱정되지만, 금요일만큼은 아닙니다. 영화가 끝나고 여유롭게 집까지 걸어 들어오기도 하고, 다음날 늘어지게 늦잠을 자서 피곤함을 달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은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토, 일요일에 회사 재고조사 때문에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직딩에게 주말을 빼앗긴다는 것은 12일 동안 연속해서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피곤한 일입니다. 하지만 매주 주말에 나가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1년에 단 두 번하는 재고조사이기에 군말 없이 나가 일해야 합니다.
그런 제 심정을 알았는지 구피는 금요일에 영화보자고 합니다. 구피도 토요일에 당직을 서야하기 때문에 출근을 해야 해서 금요일 저녁이 부담스러웠을 테지만 주말동안 쉬지 못하고 일할 제 심정을 달래줄 생각으로 영화를 보자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날 가을 타령하며 두 편의 영화를 봤던 저는 구피와 함께 [식객]을 봄으로써 쉬지 못하는 주말의 아쉬움을 달래주었습니다.
사실 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사실 [식객]은 제게 그리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11월 첫째 주 기대작 순위에 [블랙 달리아]에 이어 2위에 올랐지만 그것은 단순히 [타짜]에 이어 허영만의 원작만화를 영화화했다는 것과 한국영화로는 드물게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호기심 때문이었지 [식객] 자체에는 솔직히 별로 기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한 스토리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예고편만으로도 영화의 대강적인 줄거리와 선과 악의 대결, 그리고 결말까지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해서 굳이 극장까지 가서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이 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식객]이 의외로 흥행에 성공중이며, 구피도 부담 없는 영화를 보자고 조르는 바람에 그냥 [식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난 후의 첫 느낌은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였다.'입니다. 어찌나 스토리와 캐릭터가 단순하던지 영화를 보면서도 마치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한번 보는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너무 단선적인 선과 악의 구별은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천재적인 요리사 성찬(김강우)에 가려진 비운의 2인자 봉주(임원희)라는 캐릭터는 잘만 가꾸었다면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와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전윤수 감독과 임원희는 우스꽝스러운 악당의 이미지만으로 봉주라는 캐릭터를 완성함으로써 영화 자체는 뻔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찬과 진수(이하나)의 캐릭터 역시 그리 특출 난 것이 없었고,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도 제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감으로써 영화에 대한 집중력을 흐려놓았습니다.
하지만 볼만했다.
하지만 재미는 있었습니다. 제법 웃겼고, 제법 슬펐습니다. 제법 감동적이었으며, 제법 행복했습니다.
일단 조연들의 연기가 웃겼습니다. 정은표와 김상호의 연기는 물론이고, 이하나도 특유의 발랄함으로 웃겼으며, 임원희도 특유의 코믹연기로 웃겼습니다. 물론 임원희의 코믹함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암튼 웃겼습니다.
그리고 슬펐습니다. 성찬이 정성껏 키웠던 그래서 형제와도 같았던 황소와 마지막 작별을 하는 장면이 슬펐습니다. 최고 숯쟁이의 사연도 슬펐습니다. 그러한 슬픔이 단편적이라 아쉬웠지만 암튼 슬펐습니다.
그리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요리사인 대령숙수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조국을 한탄하며 일본인들을 위해서 음식을 할 수는 없다고 자신의 손목을 스스로 잘라버린 그의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물론 그 감동이라는 것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건드리며 작위적으로 자아낸 것이라 씁쓸했지만 암튼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했습니다. 해피엔딩은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예견된 것이었지만 막상 그 예견된 해피엔딩이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정의의 승리에 대한 안도랄까? 물론 그러한 행복이 해피엔딩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이긴 하지만 암튼 행복했습니다.
이렇듯 [식객]은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재미난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엔 영화 속에서 펼쳐질 진귀한 궁중음식의 향연을 기대했는데 결과물은 배고플 때 먹는 삼양라면이었습니다. 하지만, 궁중음식이던, 삼양라면이던, 굶주린 배를 채워주고 포만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궁중음식은 되지 못했지만 배고플 때 먹는 삼양라면은 충분히 되었으니 [식객] 역시 좋은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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