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명세
주연 : 강동원, 이연희, 공효진
개봉 : 2007년 10월 25일
관람 : 2007년 10월 30일
등급 : 15세 이상
밥 대신 영화를 선택하다.
큰 맘 먹고 영화를 보러갔던 지난 10월 30일. 저녁식사도 굶고 [바르게 살자]를 보고나니 시간은 저녁 9시10분. 뱃속에선 심하게 꼬르륵 소리가 요동을 치고 있었습니다. 하긴 저녁밥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포식을 하던 제가 갑자기 연이틀(전날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의 패배에 충격을 받아 술로 배를 채우고...) 저녁밥을 굶었으니...
마음 같아선 당장 식당으로 달려가 양 많은 음식을 시켜 맘껏 입속으로 들이붓고 싶었지만 자꾸만 영화 [M]이 제 발목을 붙잡습니다. 제발 봐달라고...
결국 [M]을 보기위해 저녁밥을 포기했습니다. 제 손엔 비싸다고 소문난 CGV의 핫도그와 콜라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지만 5천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한 먹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면은 물론 양적인 면마저 절 실망시키며 굶주린 제 배를 더욱 성나게 만들더군요.
아마 [M]이 재미없었다면 성난 제 뱃속의 울부짖음과 더불어 더욱더 영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어댔겠지만 다행스럽게도 [M]은 절 만족시켜줬고 [M]에 대한 만족감으로 허기의 괴로움을 막아낸 저는 영화의 잔상을 회상하며 행복하게 10월 30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Memory : 강동원... 기억의 숲에서 헤매다.
영화의 초반 미미(이연희)는 M이라는 영문자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단어들이 모두 있다라고 말합니다. 매직, 미라클, 모짜르트,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의 이름 민우...
워낙에 영어를 증오(?)하는 제게 'M'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은 상당히 모호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겠지만 'M'하면 당연하게도 94년도 심은하 주연의 공포 드라마 [M]이 떠올랐을 뿐입니다. (실제로 구피는 영화 [M]이 드라마 [M]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더군요.)
하지만 영화의 초반 미미의 대사를 듣고, 영화를 본 후 집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정말 영화 [M]은 'M'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신기한 영화였습니다.
우선 영화의 주인공인 민우(강동원)는 'Memory'라는 단어로 설명이 되는 캐릭터입니다. 그는 촉망받는 소설가이지만 불면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환상에 빠진 그는 알 수 없는 기억의 숲에서 헤매고 또 헤맵니다.
[M]은 바로 이러한 강동원의 상태를 영화의 중반까지 집요하게 잡아냄으로써 관객들마저 기억의 숲에 헤매는 효과를 일으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상당히 간단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관객들이 강동원과 함께 기억의 숲에 헤매는 순간 이미지만 난립하는 난해한 영화가 되어 버린 것이죠.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것이 기억이지만 그러한 기억이 조작되어지고 잊혀지면 가장 어렵고 믿을 것이 못되는 것 또한 기억이죠. 민우와 [M]은 바로 이러한 기억의 이중성에 매달리며 관객들을 혼동시킵니다.
Money : 공효진... 현실의 힘으로 그를 붙잡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 구피에게 말했습니다. 'M'으로 시작하는 영문자에는 좋은 단어가 많다고... 그랬더니 대뜸 구피는 '머니?'라고 대답하더군요. 저는 그 대답에 웃음을 터트렸지만 저 역시 공감했답니다. 영화 속의 미미의 대사엔 머니가 없었지만 저처럼 일반인들에게 가장 좋은 단어는 아마도 머니일 것입니다.
영화에서 공효진이 연기한 민우의 약혼녀인 은혜의 이미지는 바로 돈입니다. 돈은 바로 현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기억의 환상 속에 빠져 있는 민우가 현실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은혜가 가진 현실에 의한 도움 덕분입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앞에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이유로 사람들로 인하여 도피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은 현실로부터 환상으로의 도피를 꿈꿉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현실에서 완벽하게 도망을 칠 수는 없습니다.
민우와 은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촉망받는 소설가이지만 자신의 작품이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민우는 자꾸만 희미해지는 기억의 숲으로 도망치려 합니다. 그러한 민우를 느꼈기에 은혜는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민우는 결코 은혜에게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그가 꿈꾸는 기억의 숲은 환상이며, 은혜는 바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억의 숲에서 헤매던 민우가 다시 은혜의 폼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현실의 힘 때문입니다.
Mystery : 이연희... 미스터리한 그녀의 슬픈 몸부림.
민우는 자신이 알 수 없는 기억의 숲에서 헤맵니다. 은혜는 민우의 헤맴에 불안해하며 그를 기다립니다. 그렇다면 과연 민우와 은혜의 사이에 놓여있는 기억의 숲은 누구에 의한 것일까요? 바로 이연희가 연기한 미미라는 캐릭터가 그 숲에 존재합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미미입니다. 하지만 미미는 미스터리한 존재입니다. 영화의 초반 짝사랑에 빠진 귀여운 여인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그녀는 영화가 중반으로 넘어가고 민우의 헤맴이 점차 격해짐에 따라 미스터리한 여인의 존재로 변합니다.
여기에서 미미의 존재가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식스센스]를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미미가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하고도 남을 테니 말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미미가 민우의 잊혀진 첫사랑의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첫사랑은 안타까움과 설렘을 남깁니다. 첫사랑은 서투른 풋사랑이기에 순수할 수 있으며, 이루어질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잊혀진 첫사랑의 존재라면 더욱더 안타깝겠죠.
미미는 바로 그러한 존재입니다. 그녀의 미스터리는 민우의 잊혀진 기억에 의한 만들어진 슬픈 이미지이며, 그녀는 민우의 잊혀진 기억의 조각을 맞춤으로써 미스터리한 자신을 벗어던지고 편안하게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나중에 당신이 아주 많이많이 슬퍼했으면 좋겠어.'라는 미미의 바람은 잊혀지지 않으려는 기억의 안타까운 몸부림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Magic같았다.
기억의 숲에서 헤매는 민우, 그런 민우를 현실의 힘으로 붙잡는 은혜, 그리고 민우의 기억의 숲에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며 몸부림치는 미스터리한 미미. 이렇게 [M]은 세 명의 캐릭터를 세 개의 M으로 시작하는 영문자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렇게해서 완성된 영화 [M]은 결과적으로 마술 같은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의 영상미는 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형사]를 통해 더욱 업그레이드된 영상미를 선보였던 이명세 감독은 [M]에서도 그런 마술 같은 영상미를 뽐냅니다.
캐릭터를 향한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인상적이었고, 마치 연극을 보는듯한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횟집에서의)가 놀라웠으며, 거울을 이용한 미스터리한 분위기 연출도 멋있었습니다. 보아가 리메이크한 이 영화의 주제곡인 '안개'는 끈적끈적하면서도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영화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음율을 선사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두고 이미지만 난립하고 내용은 없다 라고 생각하시는 것을 보면 이명세 감독은 관객과 소통하는 법을 좀 더 배워야할 듯 보이지만 최소한 제게 [M]은 정말 멋진 영화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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