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7년 영화이야기

[블랙 달리아] - 생각하지 말고 그냥 느껴라.

쭈니-1 2009. 12. 8. 20:30

 

 



감독 : 브라이언 드 팔마
주연 : 조쉬 하트넷, 스칼렛 요한슨, 에론 에크하트, 힐러리 스웽크
개봉 : 2007년 11월 1일
관람 : 2007년 11월 8일
등급 : 18세 이상

가벼운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로스트 라이언즈]를 본 후 한동안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미국이 벌인 전쟁과 그 전쟁에 희생당하는 무고한 청춘들에 대한 무수한 대화가 오고갔던 이 영화는 결국 '설득부족'이라는 결과를 제게 안겨주긴 했지만 확실히 생각할꺼리는 풍부했습니다.
[로스트 라이언즈]를 보고 마음속으로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태왕사신기'를 시청할 것인가? 아니면 영화를 한 편 더 볼 것인가?로 잠시 갈등했지만 '태왕사신기'는 재방송으로 보기로 결심을 굳히고 매표소 앞에 섰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또 다른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블랙 달리아]와 [히어로]의 선택 문제죠. 애초부터 [블랙 달리아]를 보기로 결심했었지만 [로스트 라이언즈]를 본 후 복잡해진 머리 탓에 가벼운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히어로]도 상당히 끌렸습니다. 하지만 역시 일본 코믹 형사물보다는 할리우드 스릴러가 제 취향엔 딱 맞죠.
[블랙 달리아]는 정말 제가 좋아하는 그 모든 것을 모아 놓은 듯한 영화입니다. 장르는 스릴러이고, 스릴러의 대가인 브라이언 드 팔마가 감독을 맡았습니다. 게다가 할리우드의 신성 조쉬 하트넷과 스칼렛 요한슨, 힐러리 스웽크가 주연을 맡았으며,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선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작품성도 인정받았습니다. [블랙 달리아]를 극장에서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 영화의 복합적인 요소들 때문입니다.


 

 


끈적끈적한 분위기가 내 생각을 마비시키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합니다. 마치 아주 오래된 고전 영화를 보는 듯한 낯선 분위기로 시작한 이 영화는 1940년대 미국의 분위기에 맞게 적당히 퇴폐적이고, 적당히 열정적이며, 다분히 끈적끈적한 분위기로 절 유도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일조하는 것은 역시 기대했던 대로 젊은 배우들의 신선함이었습니다. 조쉬 하트넷은 순수하지만 점차 타락에 물드는 벅키 블레이커트라는 캐릭터를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연기를 했으며, 에론 에크하트는 벅키와 비슷해 보이지만 정반대의 길에 서있는 리 블랜차드라는 캐릭터를 정말 인상적으로 연기했습니다. 사실 제 기억 속의 에론 에크하트는 [페어첵]의 악역 정도였는데 이 영화를 계기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동전의 양면처럼 같으면서 서로 다른 두 남성 캐릭터와 함께 여성 캐릭터들 또한 매우 강렬했습니다. 특히 유난히 고전적인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스칼렛 요한슨과 연기파 배우인 힐러리 스웽크는 결코 조쉬 하트넷과 에론 에크하트와 비교해서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로 영화의 균형을 맞춥니다. 여기에 또 한명의 다크호스는 단연 미아 커쉬너입니다. 이미 [크로우 2]에서부터 제 눈에 띄었던 그녀는 엽기적인 살인을 당하는 비운의 여배우를 너무나도 멋지게 연기해냈습니다.
이렇게 젊은 배우들의 멋진 연기가 배출해내는 이 영화의 분위기는 '스릴러는 감독과의 두뇌싸움이다.'라고 외치는 제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결국 저는 두뇌싸움은 커녕 이 영화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들의 진실게임의 참관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누가 범인인지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예리하게 두 동강났으며, 피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고, 피해자의 입술은 양 귀 쪽으로 찢어진 채 발견된 끔찍한 '블랙 달리아'사건의 범인을 밝히는 것에 별다른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고, 스릴러 영화를 보며 범인을 밝혀내는 것에 쾌감을 느꼈던 제가 [블랙 달리아]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끈적끈적한 이 영화의 분위기와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를 보는 제 관심이 범인보다는 다른 곳에 가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벅키의 타락입니다.
영화의 초반 벅키는 상당히 순수한 캐릭터였습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그는 정의롭고, 원칙주의자입니다. 그런 그가 아버지의 요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권투경기에서 리에게 일부러 져주며 타락의 길에 접어듭니다. 그렇게 패배의 대가로 강력범죄를 소탕하는 당시 최고 기관인 수사대에 입성하게 된 그는 이미 타락한 리와 파트너가 되며 점차 순수함을 잃어버립니다.
결국 강박증적으로 블랙 달리아 사건에 매달리는 리를 따라 사건을 파헤치던 벅키는 리의 죽음과 함께 타락의 최절정에 달합니다. 리의 아내인 케이(스칼렛 요한슨)와 사랑에 빠지고, 블랙 달리아 사건의 결정적인 열쇠인 매들린(힐러리 스웽크)을 비호하며 그 대가로 그녀의 몸을 탐닉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범인을 밝혀내지만 법에 의한 처결대신 자신 스스로 죄에 대한 심판을 내림으로써 영화 초반의 순수함을 완전히 잃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팜므 파탈.... 그녀들의 유혹

스릴러에서 한 남자의 타락...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따라 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부 즉 팜므 파탈의 존재입니다.
[블랙 달리아]에선 두 명의 팜므 파탈이 존재합니다. 그 중 하나는 케이입니다. 벅키에게 있어서 케이의 존재는 그녀가 의도했건, 안했던 상관없이 타락의 직접적인 요소가 됩니다. 사실 그녀는 리의 타락에도 직접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은 그녀를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그러한 욕망이 타락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리와 케이의 숨겨진 과거의 행적이 바로 그렇습니다. 케이를 갖고 싶었던 리는 극단적인 타락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그러한 그의 타락은 그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리의 죽음과 함께(아니 그 이전부터) 케이의 유혹이 벅키에게 옮겨집니다. 처음엔 동료의 아내를 탐할 수 없다는 도덕적인 책임감이 벅키의 타락을 가로막지만 리의 죽음과 함께 이 모든 것이 무너지며 벅키는 리의 길을 뒤따릅니다.
케이가 극단적인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그녀 스스로는 의도하지 않았던 팜므 파탈이라면 또 다른 여인 매들린은 다분히 의도적인 팜므 파탈입니다. 자신과 연관된 블랙 달리아 사건에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자 그녀는 의도적으로 벅키를 유혹합니다. 벅키는 이 치명적인 유혹에 빠져들며 결국 헤어 나올 수 없는 타락의 길에 접어든 것입니다.
이렇듯 케이와 매들린의 팜므 파탈 연기는 오히려 3류 영화 배우이며, 돈을 벌기위해 동성애와 포르노까지 마다하지 않다가 처참하게 살해되는 엘리자베스 쇼트(미아 커쉬너)가 오히려 더 순수해보일 지경입니다.


 

 


[차이나타운], [L.A. 컨피덴셜] 그 사이에서...

자욱한 담배연기와 이성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유혹, 그리고 엽기적인 살인사건과 1940년대를 감싸는 할리우드 랜드의 퇴폐적인 분위기. [블랙 달리아]는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벅키는 이러한 가운데 점차 타락하고 언젠가는 리처럼 파멸할 것입니다. 벅키도 어쩌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은 너무 달콤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이 끈적끈적한 스릴러를 보고나니 두 편의 영화가 생각나더군요. 바로 스릴러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차이나타운]와 [L.A. 컨피덴셜]입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연출력과 잭 니콜슨의 연기력이 멋진 하모니를 이루었던 1974년작 [차이나타운]은 스릴러 영화의 팬이라면 꼭 봐야할 고전 명작입니다. 특히 페이 더너웨이의 팜므 파탈 연기는 지금 봐도 치명적입니다. [차이나타운]의 고전적인 분위기와 퇴폐성 그리고 치명적인 팜므 파탈의 아름다움이 [블랙 달리아]와 상당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티스 핸슨 감독의 1994년작 [L.A. 컨피덴셜]은 제 2의 [차이나타운]이라고 불리 울 정도로 당시에 호평을 받은 영화입니다. 특히 이 영화의 원작자는 제임스 얼로이인데 그가 바로 [블랙 달리아]의 원작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블랙 달리아]와 [L.A. 컨피덴셜]은 닮은 부분이 많은데, 무대가 LA라는 점과 버드(가이 피어스)가 서서히 타락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점, 그리고 킴 베이싱어라는 팜므 파탈의 존재가 닮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스릴러의 걸작인 [차이나타운], [L.A. 컨피덴셜]과 비견될만한 영화를 보고나니 글이 길어졌군요. 암튼 스릴러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머리를 비우고 그저 분위기에 몸을 맡긴 채 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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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던행자
개인적으로 이렇게 무거운 영화는 보고난후에 기분이 심란해져서 피하는 편입니다 ㅋ;;;감동적인거나 신나는거 공포영화는 보고나면 왠지모를 개운함이 남는데 이렇게 복잡한 인간세상을 다룬쪽 이야기는 보고나도 그냥 깝깝~~한 기분이 남더군요;;
진국이지만 먹고나면 뒷맛은 씁쓸한 음식이랄까요;;그런느낌때문에 이런장르는 좀;;
 2007/11/23   
쭈니 사실 전 그런 뒷맛을 즐기는 편입니다.
뭐랄까... 되씹는 쾌감이랄까???
제가 비극적인 결말의 영화를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 물론 해피엔딩 영화도 좋아합니다만... 억지 해피엔딩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하죠.
암튼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딱 제 취향이었는지도...^^
 2007/11/23   
바이올렛
스칼렛 요한슨..을 좋아하는데 왠지 보기 망설여지는 영화에요. 그녀의 투박함을 좋아하는지라 '매치포인트' 에서의 여유있는 도도함이 여기서도 잘 나올지...? 의심이 자꾸 되던데... 현대물이 아니어서 그런가...? 뭐, 그녀를 좋아하니 언젠간 보겠죠^^  2008/01/06   
쭈니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이 물씬 풍겨나오는 영화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을듯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렇다고 거부감이 들 정도로 못하지도 않았던듯 합니다. 제겐 배우들의 매력보다는 이 영화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답니다. ^^  2008/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