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손현희
주연 : 탁재훈, 염정아, 신성록, 윤지민
개봉 : 2007년 8월 30일
관람 : 2007년 9월 1일
등급 : 15세 이상
무엇에 이끌리듯이...
황금 같은 토요일 아침... 평소 때라면 늦잠자기에 바빴을 테지만 9월 첫째 주 토요일엔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죠. 전날부터 계획을 꼼꼼히 세웠습니다. 제게 허용된 시간은 오전뿐이었기에 최대한 영화 시간을 맞춘다면 두 편은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리저리 영화의 시간들을 맞춰 보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토요일 아침엔 이 모든 계획들이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원래는 CGV목동에 갈 생각이었는데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보며 나도 모르게 발길이 CGV공항으로 바뀌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CGV목동에서 CGV공항으로 목적지를 바꾼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갑자기 너무나도 [미스터 브룩스]가 보고 싶었고, [미스터 브룩스]는 CGV공항에서 상영하기 때문이죠. 왜 갑자기 [미스터 브룩스]가 보고 싶어졌을까요? 비 때문인가???
하지만 막상 CGV공항에 도착했을 때 제가 확인한 것은 [미스터 브룩스]를 보기엔 시간이 너무나 안 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날 계획을 세울 때 CGV목동 위주로 계획을 세웠기에 미처 CGV공항의 [미스터 브룩스] 상영 시간표는 확인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시간이 가장 잘 맞는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고 그것이 바로 [내 생애 가장 최악의 남자]였습니다.
이미 크로스 스캔들을 소재로 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를 본 후 심란한 마음으로 며칠 동안 싱숭생숭했던 저는 맞바람을 소재로 삼은 [내 생애 최악의 남자]만큼은 그냥 비디오로 넘기려 했습니다. 구피와 화해하지 못한 이 시점에서 굳이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와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마치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엇에 이끌리듯, 정해진 운명에 어쩔 수 없이 따르듯 저는 그렇게 [내 생애 최악의 남자]를 보게 된 것입니다.(너무 거창하죠??? ^^;)
같은 소재, 다른 느낌
일단 결론부터 말한다면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즐거웠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영화를 보는 내내 싱숭생숭했었고, 그것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며칠 동안 이어졌기에 영화 자체가 인상 깊었다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즐거웠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과연 그 무엇이 비슷한 소재를 가진 이 두 영화를 이렇게 완벽하게 다르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요?
당연히 영화의 장르가 다르고, 출연한 배우들이 틀립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사랑과 결혼이라는 문제를 드라마로 풀어 나갔으며, 박용우, 이동건, 엄정화, 한채영 등 어느 정도 연기에 경력을 가진 배우들을 캐스팅함으로써 영화 자체를 더욱 진솔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에 비해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드라마보다는 코미디를 표방합니다. 그리고 주연으로 탁재훈을 캐스팅함으로써 그의 연기력보다는 코믹한 이미지에 기댑니다. 하지만 이 두 영화가 서로 완벽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렇게 밖으로 드러난 외적인 문제보다는 좀 더 내적인 문제를 파고 들어갈 필요가 있는 듯합니다.
장르가 코미디이고, 연기력이 있는 배우가 아닌 코믹한 이미지를 지닌 엔터테이너를 캐스팅 했다고 해서 그 영화가 사랑과 결혼에 대한 문제를 진솔하게 표현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결국 손현희 감독은 사랑과 결혼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표현할 생각이 애초에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저 웃기는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 사랑과 결혼에 대한 문제를 소재로 삼은 것이며 그것이 하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와 비교가 되어 버린 셈이죠.
그러한 것은 영화를 보면 잘 나타납니다. 이 영화엔 진솔한 그 무엇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연(염정아)과 성태(탁재훈)는 장난처럼 결혼하고, 결혼 후에는 장난처럼 재훈(신성록), 미연(윤지민)과 각각 사랑에 빠집니다. 사랑에 빠진 후에는 장난처럼 티격태격하고, 마지막 화해를 하는 것도 무슨 장난 같습니다. 모든 것이 장난 같은 이 영화를 보며 감독의 의도에 따라 비슷한 소재가 어떻게 전혀 다른 영화로 탄생되는지 느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웃은 걸로 만족해야 하나?
하긴 어쩌면 그것이 저로써는 좋은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구피와의 관계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아픈데 영화를 보면서까지 복잡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런 복잡한 감정을 지니고 본 영화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한 편으로 족하니까요.
처음부터 웃게 만들었던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사실 제 개인적인 취향에 따르면 절대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웃음이 진솔함이 빠져 버려서 일회성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일회성 웃음이라면 굳이 극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TV를 켜면 개그프로에서 충분히 만끽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의 웃음이라는 것이 TV 개그프로에서의 웃음과는 달라야한다고 생각하기에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막상 영화를 보며 웃으면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탁재훈의 연기도 그렇습니다. 염정아의 연기는 [여선생 VS 여제자]이후 코믹연기에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라서 [내 생애 최악의 남자]에서도 무난했습니다. 하지만 탁재훈은 다릅니다. 그가 지금까지 영화에서 연기한 배역들은 코미디 영화에서의 조연 정도였습니다. 그는 그냥 웃기면 되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주연 배우들이 알아서 해줬습니다. 하지만 [내 생애 최악의 남자]에서 그는 웃기는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의 그 모든 것을 책임져야합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더 이상 조연이 아닌 주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탁재훈의 연기력은 아직 많이 모자랐습니다. 코믹 연기를 할 땐 웃겼지만 조금이라도 진지한 연기를 해야 할 땐 많이 어색했습니다. 그가 앞으로 주연 배우로 나서기 위해서 필히 보완해야할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최악의 점수를 주기엔 1시간 30분 동안 제게 안겨준 웃음이 기특합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결코 제 마음은 편하지 않았는데 최소한 영화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편안하게 웃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코미디 영화들이 한국영화의 주류로 자리매김했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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