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강경훈
주연 : 예지원, 임원희
개봉 : 2007년 8월 22일
관람 : 2007년 8월 28일
등급 : 15세 이상
요즘은 조급증이 생겼다.
요즘은 개봉당일 극장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왠만한 흥행작이 아니고서는 극장에서 쉽게 볼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일주일 정도의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것도 무너진 것 같습니다. 개봉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영화가 어느새 교차 상영을 하는 것이 자주 눈에 띄더군요.
몇 년 전만해도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개봉 첫 주를 고집했던 이유는 남들보다 먼저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으며, 다른 분들의 영화 리뷰를 읽게 되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고 그래서 영화 보는 나만의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개봉 첫 주를 고집하는 이유는 이번 주가 아니면 영영 그 영화를 볼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개봉 일주 만에 사라지는 영화가 부지기수이고, 개봉 2주차에 들어서도 교차상영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면 바쁜 직장 생활을 핑계 삼아 쉽게 관람을 포기하게 됩니다. 게다가 요즘은 동네에서 비디오 대여점도 찾아 볼 수가 없어서 '극장에서 못 보면 비디오로 출시 후 보지 뭐'라는 느긋함마저도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에 대한 조급증이 생겨버린 것은 비단 저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오랜만에 극장을 찾은 평일 오후,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았지만 개봉 첫 주가 아직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차상영을 하고 있는 [죽어도 해피엔딩]을 보았습니다. 이미 수많은 네티즌들의 그리 낙관적이지 못한 리뷰를 접한 후이기에 영화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오늘이 아니라면 영영 이 영화를 볼 수가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보고는 싶었던 영화이기에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죠.
그렇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하며 '빨리 빨리'를 외치는 풍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만 가는데, 영화 보는 것마저 이렇게 '빨리 빨리'를 외쳐야만 하다니... 참 서글픕니다.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지만 그 분에겐 디저트를 줘야한다.
[죽어도 해피엔딩]은 1999년도에 국내에서 개봉되었던 프랑스 코미디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를 리메이크한 영화입니다. 안타깝게도 1999년도는 1988년 이후로 제가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지 않았던 유일한 해입니다. 그래서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에 대한 제 리뷰를 확인해 볼 수는 없지만 제 기억력에 의존해본다면 '하하호호'하며 참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면 [죽어도 해피엔딩]은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하하호호'하며 봤습니다. 깐느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여배우 예지원(예지원)에게 크리스마스 날, 네 명의 사나이가 갑자기 찾아오고 불의의 사고로 그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며 지원과 그녀의 매니저 두찬(임원희)의 요절복통 시체 치우기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화는 한없이 가벼운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웃어라'라고 속삭입니다.
한동안 제겐 비호감 배우였다가 [올드미스 다이어리 극장판]을 통해 호감 배우로 급부상한 예지원은 그녀 특유의 푼수 끼를 맘껏 발산했으며, 한동안 뜸했던 임원희는 자신의 코믹연기를 맘껏 폼 냈습니다. 게다가 지원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가 불의의 죽음을 당하는 캐릭터들 역시 부담 없는 웃음을 안겨줍니다.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라면 영화 속 캐릭터들이 강경훈 감독이 의도와는 달리 요즘 영화계와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먼저 깐느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지원은 [밀양]으로 깐느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과 묘하게 겹쳐집니다. 물론 이 영화를 찍을 당시 강경훈 감독은 설마 전도연이 깐느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탈 줄은 몰랐겠지만 왜 하필 깐느영화제인지... 아마도 전도연이 이 영화를 봤다면 약간 기분이 나빴을수도...
특히 이 영화의 진짜 백미는 영화 속에서 파시스트를 연발하며 툭하면 꼭지가 돌아버리는 대학 강사 유교수(정경호)입니다. 그는 요즘 [디 워]를 통해 열심히 글빨, 말빨을 날리시고 계신 그 분을 맘껏 패러디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지원의 깐느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설정이 우연에 의한 것처럼, [디 워]로 인하여 그 분이 갑자기 인터넷상의 트러블 메이커 혹은 스타로 뜰 줄 강경훈 감독은 몰랐기에 의도된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말입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맘껏 즐겼습니다. 부담 없는 사건전개와 코믹연기의 대가들의 후회 없는 코믹연기 퍼레이드, 그리고 한동안 절 심심하지 않게 했던 그 분의 패러디(물론 그건 제 생각일 뿐이지만...)까지 곁들여져 [죽어도 해피엔딩]은 코미디 영화로써의 재미를 충분히 발휘합니다.
그래, 너넨 행복하겠지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영화를 보고나서 마냥 기분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코미디를 보며 하하호호 웃고 나면 대개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기분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죽어도 해피엔딩]을 보고나서는 약간 찜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느낌의 이유는 굳이 더러운 화장실 코미디를 이 영화에 삽입했어야만 했을까하는 개인적인 취향 탓이기도 했고,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그들의 시체를 유기하고는 희희낙락하며 해피엔딩을 외치는 지원과 두찬에 대한 거부감 탓이기도 합니다.
하긴 생각 없이 즐길 코미디 영화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웃어도 돼?'라고 묻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없는(밥맛은 없지만...) 그들이 죽었고, 그것이 지원과 두찬의 잘못은 아니더라도 죽은 이들의 시체를 그렇게 유기시킨 그들이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다는 것은 좀 거북하더군요.
그러한 점이 [달콤, 살벌한 연인]과 비교됩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의 이미나(최강희)는 아무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였고, 그로인한 법적인 벌은 면했지만 사랑하는 황대우(박용우)의 사랑을 붙잡지 못함으로써 인간적인 벌은 받아야만 했습니다. 물론 그것으로 그녀의 죄에 대한 대가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차피 코미디영화이기에 웃고 넘어가 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어도 해피엔딩]의 지원은 죄는 커녕 오히려 행복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그녀의 이 지독한 불운과 그로인한 범죄 행각이 오히려 그녀의 진정한 사랑 되찾기에 기여한 꼴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참 절묘했습니다. '죽어도 해피엔딩'이라니... '죽여도 해피엔딩'이 좀 더 어울리긴 하지만...
암튼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점수를 준다면 75점정도...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을 준 것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영화를 보고난 후에는 자기네들끼리만 해피엔딩을 이룬 것에 대한 불쾌감이 점수를 많이 깎아 먹었네요. 그래도 이 정도면 조급증을 내며 영화를 본 보람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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