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BOOK STORY

<용의자 X의 헌신> - 두 천재의 슬픈 대결

쭈니-1 2018. 7. 18. 11:56



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2018년 제가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입니다. <탐정 갈릴레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변신>, <갈릴레오의 고뇌>에 이어 이번에 읽은 <용의자 X의 헌신>까지... 무려 다섯편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많이 읽은 이유는 그의 소설이 유난히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다른 추리소설과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일단 그의 추리소설은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내세우는 범인 맞추기가 아닙니다. 첫 부분부터 범인을 드러내놓거나, 대놓고 드러내지 않더라도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 범인의 트릭을 맞추는 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의 기본적인 재미입니다.

또다른 특징이라면 잔인함 대신 애절함을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 일본 추리소설을 많이 읽는 편인데 상당히 자극적인 소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자극적인 부분보다면 감성적인 부분을 더 부각시킵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그러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의 특징을 가장 잘 담아낸 소설입니다.



처음부터 범인은 밝혀졌다.


지금까지 제가 읽은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를 내세운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단편을 묶은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용의자 X의 헌신>은 장편소설입니다. 과연 장편소설에서의 유가와는 어떤 활약을 펼칠까요? 이번에 유가와의 상대는 유가와와 대학동기이며 천재수학자인 이시가미 데츠야입니다. 대학 졸업 후 집안 사정 때문에 자신의 천재성을 썪히며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만족하며 살아가던 이시가미는 평소 연모하던 옆집 하나오카 야스코, 마사토 모녀의 살인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범행을 감춰주기로 결심합니다.

아무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시체를 감춘다고해도 살인사건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게다가 도미가시 신지의 살인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면 가장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도미가시에게 괴롭힘을 당한 전부인 야스코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시가미는 이 어려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고등학교 수학선생인 이시가미는 시험문제를 기하학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수문제라는 식으로 착각하기 쉬운 맹점을 함정으로 넣습니다. 하나오카 모녀의 살인사건을 감추는데에도 같은 트릭이 사용됩니다. 경시청 형사인 구사나기는 범행 당시 야스코의 알리바이 깨기에 집중하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이시가미의 함정이었던 것입니다.



풀기 힘든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푸는 것 중 어느 쪽이 어려울까?

사실 저는 <용의자 X의 헌신>의 마지막 반전을 미리 알고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2009년 국내 개봉한 일본영화 [용의자 X의 헌신]과 [용의자 X의 헌신]을 방은진 감독이 리메이크한 [용의자 X]를 이미 봤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렇기에 회사 책장에 <용의자 X의 헌신>이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제가 읽을 수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모두 읽은 후 마지막으로 선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을 미리 알고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재미가 전혀 반감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진정한 재미는 이가시미의 트릭을 밝히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야스코를 지키고자 했던 이시가미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여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야스코가 이시가미의 희생을 외면하고 인쇄소 사장 구도와 만나는 장면에서 분노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유가와가 야스코에게 굳이 사건의 진실을 밝힌 이유도 저와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등장했던 명대사를 책으로 읽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풀기 힘든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푸는 것 중 어느 쪽이 어려울까?", "수학문제에서 스스로 생각해서 해답을 내는 것과 남에게 들은 답이 옳은지 그른지 확인 하는 것 중 어느게 더 간단할까?"와 같은 두 천재 유가와와 이시가미의 질문과 대답은 수학과 물리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저와 같은 독자에게도 한번쯤 이 난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대형서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추리소설이 베스트샐러 1위에 오른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역시 베스트샐러 작가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