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BOOK STORY

<낯선 아내에게> - 짧은 이야기 속에 만들어내는 쓸쓸한 감정

쭈니-1 2018. 7. 11. 11:37



<내 인생 마지막 4.5초>에 이은 단편소설집 체험 2탄


장편소설만 읽다가 단편소설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읽게된 성석제 작가의 단편소설집 <내 인생 마지막 4.5초>는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꽤 인상적인 단편이 몇 있었지만, 일곱편의 단편의 형식이 거의 엇비슷해서 읽는 내내 조금 식상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단편소설집 체험을 마칠 수는 없었습니다. 단 한편의 단편소설집으로 "단편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속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일본 작가 이사다 지로의 단편소설집 <낯선 아내에게>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이미 <지하철>을 통해 아사다 지로의 장편소설을 체험했습니다. <지하철>은 전후 시대를 살았던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타임워프를 통해 체험하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약간은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이지만 그 속에는 이룰 수 없는 슬픈 사랑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낯선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낯선 아내에게>는 8개의 단편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단편들의 일관된 주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 인생 마지막 4.5초>처럼 형식이 거의 비슷하지도 않습니다. 각각 다른 처지에 빠진 이들이 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쓸쓸한 삶을 살아가야 했는지 슬픈 감성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사랑을 이루지 못했나?


첫번째 단편인 '춤추는 소녀'는 서투른 사춘기 소년의 첫사랑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걷어차버립니다. 그리고 뒤늦게 그곳이 첫사랑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죠. 두번째 단편인 '스타더스트 레뷰'는 은퇴한 첼로리스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친구의 도움으로 다시 무대에 서고, 옛 애인과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붙잡지만, 스스로 그 기회를 차버리고, 자신의 삶에 만족합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했던 이유는 아마도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를 너무 사랑했고, 그로인하여 깊은 상처를 받았기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세번째 단편 '숨바꼭질'은 어린 시절 한순간의 잘못으로 인하여 평생을 죄책감에 빠져 살던 세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그 죄책감 때문에 아내와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세 친구는 결국 그날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고, 주인공은 아내와 사랑을 시작합니다. 어찌보면 <낯선 아내에게>에서 유일한 해피엔딩입니다. 네번째 단편인 '덧없음'은 과거를 너무 사랑했기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노부인의 이야기이고, 다섯번째 단편인 '의심스러운 시체'는 자신의 방에 놓인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체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빠진 한 야쿠자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주인공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애인과 새출발을 결심하지만 과연 그러한 그의 계획이 잘 될런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다섯번째 단편인 '금팔찌'는 친구와 결혼하는 짝사랑하는 회사 동료를 위해 스스로 거짓된 사랑을 만들어 스스로 가면을 썼던 한 여자의 이야기이고, 여섯번째 단편인 '마지막 행운'은 경마를 사랑한 한 중년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타이톨롤이기도한 '낯선 아내에게'는 돈을 위해 중국 여자와 위장 결혼을 한 중년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냥 사랑하면 될 것을...


<낯선 아내에게>에서 펼쳐지는 여덟편의 단편을 읽다보면 조금은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냥 사랑하면 될 것을 왜 그리들 주저하는지...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그렇게 이성적이지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답답한 선택이지만,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주저하고, 자기 자신에게 해가 되는 선택을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마치 <지하철>의 미치코처럼...

<내 인생 마지막 4.5초>가 잘 읽혀지지 않는데 반에, <낯선 아내에게>는 술술 잘 읽혀졌습니다.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 밀려오는 아련한 감정도 좋았습니다. 짧은 이야기 속에 이렇게 깊은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아사다 지로의 힘이 아닐까요?

이제 <낯선 아내에게>를 마지막으로 단편소설 체험은 끝을 내려합니다. 아무래도 제겐 서서히 캐릭터를 완성하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장편소설이 더 맞기에... 그래도 <내 인생 마지막 4.5초>와 <낯선 아내에게>를 통해 경험한 단편소설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한번 도전해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