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BOOK STORY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 - 엽기적이지만 허술하고 찝찝한 추리게임

쭈니-1 2018. 6. 25. 15:59


아주 오래전, 대형서점에서 고민했던 적이 있다.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서점인 교보문고 목동점에서 한참동안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를 집어 들고 살까 말까를 고민했었습니다. 당시에는 무슨 까닭이었는지 모르지만 독서를 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었고, 제가 좋아하는 추리 소설로 꽉 막혀 있던 제 독서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이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었으니 아마도 2010년 10월에서 2011년 2월 사이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 대신 다른 소설을 선택했는지, 아니면 아무 소설도 선택하지 못한채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렸는지 역시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단지 회사의 책장에서 이 책이 눈에 띄었을때 은근히 반가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 대신 다른 소설들을 먼저 읽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소재가 너무 자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는 추리게임을 위해 직접 살인을 저지르고 동료들에게 자신의 트릭을 맞추도록 하는 다섯명의 살인마가 주인공입니다. 그들의 살인은 금전, 원한 등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단지 써보고 싶은 트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추리게임에 뛰어든 다섯명의 살인마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의 주인공은 두광인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신원불명의 사람입니다. 그는 인터넷상에서 004APD, aXe, 잔갸군, 반도젠 교수라는 기묘한 닉네임을 가진 이들과 함께 추리게임을 즐깁니다. 그들의 법칙은 서로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채 한명은 범인이 되어 실제 범행을 저지르고, 나머지 네명은 탐정이 되어 범인이 낸 문제를 맞춰야합니다.

첫번째 문제 출제자인 aXe의 문제부터가 충격적인데, 그는 연쇄살인사건을 벌이며, 동료들에게 자신이 다음에 죽일 피해자를 알아내라는 문제를 제출합니다. 두번째 출제자인 잔갸군은 살인 후 머리를 잘라낸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벌인 이후 범인은 어떻게 피해자의 몸통을 들키지 않고 집 근처 공원까지 가져갈 수 있는지 묻습니다. 반도젠 교수는 자신의 알라바이 깨기를 문제로 출제하고, 004APD는 경비가 철저한 고급 빌라에서 자신이 어떻게 경비를 뚫고 살인사건을 벌였는지 문제를 냅니다.

그들의 범행 하나 하나가 모두 엽기적이기에 책을 읽는 저는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 소설은 범인을 쫓는 형사 혹은 탐정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저 장난삼아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벌이는 미친 살인마들이 주인공입니다. 만약 그들에게 동기라도 있으면 어느정도 참고 버티겠는데, 동기조차 없습니다. 그야말로 제가 최근에 읽었던 추리소설 중 가장 악랄하고 엽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난 그들의 트릭을 거의 알아맞추었다. (이후 소설 속 반전이 언급됩니다.)


문제는 그들의 살인이 엽기적이긴 하지만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는 기본적으로 추리 소설이기 때문에 독자에게 추리의 기회를 마련합니다. 저 역시 당연히 각각의 살인마들이 벌인 트릭을 알아맞추기 위해 책의 내용에 더욱 집중해야 했는데, 제가 추리소설과 스릴러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인지, 아니면 소문과는 달리 이 책의 트릭이 허술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살인마들의 트릭을 거의 맞추었습니다.

첫번째 문제 출제자인 aXe의 문제에서 저는 각각의 피해자가 동물과 관련이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12간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고양이가 튀어나와 헷갈렸습니다. 고양이는 12간지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토끼 대신 고양이가 12간지에 속해 있다고 하더군요. 흠...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aXe의 연쇄 살인이 12간지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맞추었으니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입니다.

잔갸군의 문제는 더욱 간단했습니다. 몸을 가지고 갈 수 없다면 목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니까요. 물론 드라이아이스로 피해자의 비명소리를 만들어내오 범행시간을 조작한 트릭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반도젠 교수의 알리바이 깨기 문제는 너무 시시해서 맞출 의지가 없었고, 조금은 집요한 004APD의 트릭은 애초부터 침입하지 않고 집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의심했었습니다. 장난삼아 살인을 벌이는 이들의 추리게임이기에 뭔가 특별한 트릭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마지막 두광인의 문제는 실망스러웠다.


솔직히 저는 두광인이 마지막 출제자라는 점에서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의 결말을 나름대로 상상했었습니다. 다른 살인마와는 달리 처음부터 캐릭터를 설명한 두광인. 그렇다면 그는 재미로 살인을 벌이는 살인마들이 주인공인 이 소설의 찝찝함을 날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두광인의 마지막 문제는 추리게임 참가 동료들을 차례로 죽이는 문제일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예상이 맞았는지 004APD는 모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물론 제 예상은 틀렸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처럼 두광인이 일부러 004APD를 죽인 것이 아닌, 의도하지 못한 이유로 죽인 것이니 절반은 맞은 셈입니다. 그리고 두광인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마지막 문제를 출제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건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는 그 어떤 추리도 필요없습니다. 그저 행운만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는 단 이틀만에 다 읽었습니다. 그만큼 소설의 내용은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읽고나서 무지 찝찝했습니다. 도대체 작가인 우타노 쇼고가 이 엽기적인 추리 게임을 통해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소설 속 살인마들의 엽기적인 범행과는 달리 그들의 트릭은 어처구니없이 쉬워서 싱거웠습니다. 마지막 두광인의 문제는 추리가 아닌 복불복 게임이라 멍했습니다. 게다가 결말마저 내지도 않더군요. 뭐 어쩌라는 것인지...

지금 저는 고민 중입니다.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의 후속편인 <밀실살인게임 2.0>을 읽어야할지 말아야할지... 하지만 <밀실살인게임 2.0>은 제10회 본격미스터리 대상을 받은 작품이라 하니 다시한번 우타노 소고에게 기회를 줘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