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BOOK STORY

<천사의 게임 전 2권> -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비극

쭈니-1 2018. 6. 14. 11:47



갑자기 내 눈을 확 잡아 끌었다.


<올림픽의 몸값>을 읽은 후 가벼운 마음으로 <개밥바라기별>을 단 하루만에 독파했습니다. 이제 뭔 책을 읽어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때 운명처럼 제 눈을 확 잡아끈 소설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페인 작가인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천사의 게임>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몇 달전부터 회사의 책장을 샅샅이 뒤졌을 땐 분명 없었던 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침 읽을 책을 고르는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입니다. 아마 다른 직원이 먼저 읽고 있었나봅니다. 회사의 작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직원이 저 말고도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누군지 궁금하기도 하고...

암튼 굉장히 충동적으로 <천사의 게임>을 책장에서 꺼내 들었고, 당장 읽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소설은 처음이라 조금은 낯설 것이라 걱정했는데, 그러한 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책은 술술 잘 읽혔습니다. 특히 3부로 이루어진 소설의 분위기가 각각 다르다는 점에서 마치 3권의 소설을 읽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1부 저주받은 사람들의 도시


<천사의 게임>은 1920년대 바로셀로나를 배경으로 작은 신문사에서 사환으로 일하는 다비드 마르틴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아인 그는 소설가를 꿈꾸지만 아무도 그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역의 유지인 페드로 비달의 도움으로 신문에 자신의 소설을 연재하면서 인기를 끌게 되고, 신문사를 나와 필명으로 '저주받은 사람들의 도시'라는 자극적인 소설을 쓰며 생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천사의 게임> 1부인 '저주받은 사람들의 도시'는 마르틴의 비극을 세세하게 잡아냅니다. 그는 비록 비달의 도움으로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소설가가 되지만, 탐욕에 눈이 먼 자들과 독점 계약을 하는 바람에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극적인 소설을 써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의사에겐 뇌종양으로 여생이 9개월도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비달을 대신해 쓴 소설은 큰 호평을 받지만, 자신의 최고 걸작인 '영원의 빛'은 오히려 비달 소설을 따라했다며 혹평을 받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마르틴이 남몰래 짝사랑했던 비달의 비서 크리스티나는 비달과 결혼하고, 비달은 마르틴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존경하는 스승을 모두 잃은 마르틴. 이 거대한 비극은 마르틴이 어린시절 동네 서점 주인인 샘페레가 마르틴에게 선물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틴이 신비한 분위기를 지닌 프랑스 편집인 안드레아스 코렐리를 만나며 <천사의 게임>의 분위기는 돌변합니다.



2부 영원의 빛


<천사의 게임> 1부 '저주받은 사람들의 도시'가 <위대한 유산> 분위기라면 2부 '영원의 빛'은 마치  괴테의 <파우스트>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코렐리는 마르틴에게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글을 의뢰하며 거액의 돈을 제시합니다. 마르틴이 코렐리의 제안을 수락하자 신기하게도 자신의 목숨을 갉아먹던 뇌종양은 사라지고, 마르틴을 괴롭히던 자들은 의문의 화재사고로 죽습니다. 그리고 자유와 건강을 되찾은 마르틴에게 소설가를 꿈꾸는 당돌한 소녀 이사벨라가 그의 조수로 옵니다.

2부에서는 두가지 분위기가 진행됩니다. 마르틴이 새로운 종교의 책을 써달라는 이상한 주문을 한 코렐리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종교에 대한 길고 지루한 대화와 코렐리가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음습한 분위기가 저를 공격합니다. 그와는 달리 마르틴이 이사벨라와 함께 하는 장면에서는 숨이 탁 하고 막힐 정도로 어두운 분위기가 조금은 밝게 변환됩니다.

그와 더불어 마르틴이 작가가 된 후 충동적으로 장기간 입주 계약을 맺은 탑의 집도 <천사의 게임>의 분위기를 섬뜩하게 몰고 갑니다. 마르틴은 탑의 집의 옛 주인인 디에고의 의문의 죽음과 코렐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을 하며 디에고의 행적을 뒤쫓습니다. 하지만 마르틴이 가는 곳마다 죽음이 뒤따라오고, 결국 마르틴은 살인 용의자로 몰리는 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3부 천사의 게임


<위대한 유산>과 <파우스트>의 기묘한 만남. <천사의 게임>을 전체적으로 표현한다면 그러합니다. 하지만 3부 '천사의 게임'에 들어와서는 또다시 분위기가 바뀝니다. 비달과의 불행한 결혼 끝에 크리스티나는 마르틴에게 돌아옵니다. 하지만 마르틴과 크리스티나가 함께 아무도 그들을 모르는 곳으로 떠나기로 한 날 크리스티나는 실종되고, 한달 후 요양병원에서 정신을 놓은채 발견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크리스티나의 죽음과 함께 <천사의 게임>은 할리우드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처럼 스펙타클해집니다. 실종된 크리스티나는 찾기 위해 경찰력까지 동원한 비달 가문. 마르틴은 경찰의 추적을 받으며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그리고 디에고에 대한 비밀을 풀어내지만, 마르틴에게 남은 것은 더이상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천사의 게임>의 마지막 결말이 가슴 아팠습니다. 코렐리가 마르틴에게 안겨준 크리스티나와의 사랑에 대한 축복이자 저주. 크리스티나가 간직하고 있었던 어린시절 해변가에서의 사진이 마지막 결말에서 그런 식으로 드러날줄 미처 몰랐습니다. 전 2권으로 이루어진 <천사의 게임>을 전부 읽고나서도 아련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과연 코렐리의 선물은 마르틴에게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정말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비극 한편은 본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