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스카이스크래퍼] - 천국에 닿고자 했던 원초적 욕망을 담은 미래의 바벱탑 이야기

쭈니-1 2018. 7. 16. 18:27



감독 : 로슨 마샬 터버

주연 : 드웨인 존슨, 니브 캠벨, 로랜드 몰러

개봉 : 2018년 7월 11일

관람 : 2018년 7월 14일

등급 : 12세 관람가



무더위는 역시 시원한 액션영화로...


유난히도 무더웠던 지난 토요일, 저희 가족은 소래포구에 다녀왔습니다. 원래 계획은 소래포구에서 싱싱한 횟감과 해산물을 구경하고, 맛난 점심도 먹고 오는 것이었지만, 무더워 때문에 서있는 것조차 너무 힘이 들어서 그냥 대충 자연산 대하 1kg만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에어컨을 틀었지만 축 늘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찬물로 목욕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그때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축 늘어져 만사가 귀찮아졌습니다. 결국 저는 축 늘어져 있는 웅이를 데리고 영화를 보겠다면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날 제가 웅이와 함께 본 영화는 [스카이스크래퍼]입니다.

무더위를 날려버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좋은 피서법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기왕이면 오싹한 공포영화를 봐야겠죠. 온 몸의 신경이 공포로 곤두서면 더위를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때마침 극장가엔 우리나라의 학원공포물 [속닥속닥]이 상영중입니다. 하지만 저는 물론, 저를 닮은 웅이도 공포영화를 못보는 체질인지라 차선책으로 시원시원한 액션영화 [스카이스크래퍼]를 골랐습니다.

[스카이스크래퍼]는 홍콩에 세워진 가상의 최고층 빌딜 '펄'을 배경으로한 액션영화입니다. 영화의 제목인 'Skyscraper'는 마천루 혹은 고층 빌딩이라는 뜻입니다. 저보다 영어실력이 몇 수가 위인 구피는 'Skyscraper'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하늘을 뜻하는 'Sky'와 긁어내는 도구를 뜻하는 'Scraper'를 조합해서 하늘을 긁어내는 도구가 아니냐는 우스운 답변을 내놓았고, 미래의 과학도인 웅이는 [스카이스크래퍼]의 포스터 중, 주인공이 크레인에서 건물로 뛰어드는 장면이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제게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암튼 '스카이스크래퍼'가 하늘을 긁어내는 도구를 뜻하는 것이던, 현실이라면 윌 소여(드웨인 존슨)가 크레인에서 뛰어내리다가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던, 어찌되었건 [스카이스크래퍼]는 저와 웅이의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게해준 시원한 액션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영화일뿐, 절대 따라하지 말자.

실제로 저랬다가는 십중 팔구 떨어져 죽는다고

미래의 과학도 웅이가 말했다.



주인공에게 과거의 트라우마를 뒤집어 씌우는 전형적인 시작


[스카이스크래퍼]는 굉장히 전형적인 영화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가 그러합니다. FBI요원 윌 소여는 가족을 잡고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한 남자와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의 어린 아들을 안고 있는 인질범. 동료들은 윌에게 남자를 쏘라고 하지만 윌은 무기를 들지 않은 사람을 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다행히 인질범은 아이를 내려 놓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인질범은 폭탄을 꺼내 들어 터트리고, 그로인하여 윌은 큰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릅니다. 주인공에게 과거의 트라우마를 뒤집어 씌우는 것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써먹었던 방식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레니 할린 감독,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1993년작 [클리프행어]가 대표적이지만, 아마도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그러한 방식은 쓰여졌을 것입니다.

암튼 윌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안고 새출발을 합니다. 당시의 사건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자신을 치료해준 군의관 사라(니브 캠벨)와 만나 쌍둥이 남매를 낳고 알콩달콩 살아갑니다. 미국에서 보안점검을 해주는 회사를 차려 살아가던 그에게 옛 동료가 연락을 해옵니다. 홍콩에 위치한 240층 규모의 세계 최고층 빌딩 펄의 안전점검을 해달라는... 윌이 이 일을 해낸다면 윌의 회사는 단숨에 주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윌은 일생일대의 기회라 여기고 가족과 함께 홍콩에 도착합니다.

이 부분에서도 역시 전형적인 설정이 등장합니다. '과분하게 친절을 베푸는 동료를 의심하라.' 이것은 세상 모든 액션, 스릴러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역시나 옛 동료의 친절에는 음모가 있었습니다. 펄의 주인인 쟈오(친 한)가 안전점검을 위해 윌에게 건물의 통제권이 담긴 태블릿 PC를 넘겨주면 이를 빼앗아 펄을 공격하는 것이 그들의 계획입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쟈오의 금고 안에 숨겨진 USB. 그곳엔 코레타 보타(로랜드 몰러) 조직의 범죄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 윌은 건물에 갇힌 가족을 구해내고, 쟈오의 USB를 빼앗으려는 보타 일당에 맞서 혼자 싸워야합니다.


옛 동료의 과분한 친절을 의심하지 않은 댓가는 가혹하다.

윌은 초고층 빌딩에서 온갖 고생은 다하고,

가족과 함께 온갖 죽을 고비를 다 경험한다.



새로운 것은 없다.


솔직히 [스카이스크래퍼]는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액션영화입니다. 고층 빌딩에서 가족을 구하기 위한 주인공의 원맨쇼는 [다이하드]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쟈오의 금고에서 USB를 꺼내기 위해 펄에 화재를 내는 장면에서는 재난영화의 고전 [타워 링]과 우리나라의 재난영화 [타워]가 생각납니다. 여기에 영화의 설정은 온갖 전형적인 것들 투성입니다. 영화 오프닝에서 윌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장면은 어김없이 영화 후반에 재현되고, 윌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며 딸을 구해냅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과분한 친절을 베푼 옛 동료가 사실은 악인이라는 사실을 마치 마지막 반전인것 마냥 영화 후반부에 내놓는 안타까운 실수는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완벽한 보안을 자랑한다던 초고층 빌딩 펄은 범죄조직의 습격 하나에 단숨에 무너지고,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펄에 불을 지름으로써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엄청난 짓을 벌인 보타가 원한 것은 고작 조직의 범죄 기록이 담긴 USB입니다. 범죄 기록을 없애기 위해 세계 언론의 이목을 끌 수 밖에 없는 더 큰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 것인지... 그리고 웅이의 지적대로 영화는 비현실적인 것 투성이입니다. 윌이 아무리 전직 FBI요원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리 하나가 의족인 장애인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슈퍼 히어로와 같은 힘을 발휘해서 온갖 불가능한 임무를 완수해냅니다.

한마디로 [스카이스크래퍼]는 액션은 볼만하지만 내용은 진부하다는 평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이전 영화들에서 써먹은 전형적인 설정과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펄의 부실한 보안, 그리고 목표물에 비해 너무 일을 크게 벌이는 보타 일당의 범죄 동기와 의족을 낀 장애인이 아닌 과거의 사건으로 의문의 힘이 생긴 슈퍼 히어로라는 설정이 더 어울려 보이는 윌의 과도한 액션까지 영화의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하긴 드웨인 존슨이 출연한 영화 중에서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 영화가 있긴 했던가?

그래도 올해 개봉한 [쥬만지 : 새로운 세계]와 [램페이지]는 SF, 판타지액션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만한 이유


분명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스카이스크래퍼]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든 영화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개봉 첫 주 영화의 흥행 성적은 부진하기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앤트맨과 와스프]라는 강적을 만나 개봉 첫주 46만 관객 동원에 그쳤습니다. [쥬만지 : 새로운 세계]가 65만, [램페이지]가 60만 관객을 동원했음을 감안한다면 여름 성수기에 개봉한 [스카이스크래퍼]의 성적은 초라하기만합니다. 북미 성적은 더 처참합니다. 개봉 첫주 2천5백만 달러 흥행수입으로 [몬스터호텔 3]와 [앤트맨과 와스프]에 밀려 3위에 데뷔했습니다. 우리나라, 그리고 북미 관객들도 [스카이스크래퍼]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았음을 알 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대로 만족했습니다. 왜냐하면 딱 제가 원했던 그대로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래형 마천루 펄의 위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2010년에 지어진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로 공식 높이가 828m에 달하고, 163층 공간에 사무실, 레지던시, 호텔 전망대가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스카이스크래퍼]에서 펄은 비록 가상 빌딩이지만 240층 규모의 1km가 훌쩍 넘는 높이입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실제 펄과 같은 높이의 건물이 완성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펄의 내부는 아름답고 경이로웠습니다.  부르즈 할리파를 건축한 아드리안 스미스의 자문을 받아 완성된 펄은 [스카이스크래퍼]의 진짜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밖에서 건물을 콘트롤할 수 있는 콘트롤 타워가 진압되자 너무 쉽게 화재 취약성이 노출되고 맙니다. 펄이 불에 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 하던 쟈오처럼 저 역시도 펄이 불에 타는 장면에서 주인공이 죽어가는 것만 같은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스카이스크래퍼]는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액션과 불타 사라지는 펄의 아름다움에 대한 안타까움이 뒤섞여 1시간 40여분 동안 제 더위를 싸그리 잊게 해줬습니다.


세계 최고층 빌딩 펄은 가상의 건물이지만

언젠가 정말 저 높이의 건물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인간의 욕망이 고스란히 담긴 미래의 바벨탑


[스카이스크래퍼]에서 불에 타버린 펄을 바라보며 저는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분명 [스카이스크래퍼]는 [다이하드]와 [타워 링]을 교묘하게 뒤섞은 킬링타임용 액션영화에 불과했지만, 불타는 펄은 신에 닿으려 했던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제게 고스란히 느끼게 해줬습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인류 최초의 마천루, 즉 '스카이스크래퍼'라고 합니다. 모두들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인간들이 천국에 닿으려고 바벨탑을 계속 쌓아올렸으나 이에 분노한 신이 인간의 말을 제각각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미래의 바벨탑인 펄은 천국을 재현하고자 했던 쟈오의 욕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벱탑이 그러했듯이 펄 역시 아주 작은 불씨 때문에 결국 공사가 중단되고 맙니다. 하지만 쟈오는 윌에게 다시 짓겠다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의 바벨탑과 [스카이스크래퍼]의 펄을 보며 어쩌면 우리가 고층 아파트에 살기를 원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쉽게도 가난한 저는 천국에서 한참 떨어진 아파트 3층에 살고 있지만...)

천국에 닿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은 부질없는 인간의 욕심에 무너지고, 그 속에 남은 것은 가족을 지키고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장애인 아빠의 이야기 뿐입니다. 결국 천국에 닿으려는 인간의 원초작 욕망보다 더 강한 것은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부모의 모성애, 부성애가 아닐런지...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 영화를 본 후 웅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집으로 향하는 길. 분명 [스카이스크래퍼]는 킬링타임용 액션영화가 분명하지만 천국에 닿고자 했던 원초적 욕망을 담은 미래의 바벨탑이라는 묘한 감정도 제게 안겨줬습니다.


 초고층 빌딩 펄이 그렇게 허무하게 불타는 장면이 나는 왜 그리도 가슴이 아팠을까?

아마도 영화 초반 공개된 펄의 아름다운 모습과

천국에 맞닿은 고층 빌딩에 살고 싶은 나의 원초적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