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마녀] - 순수함이 갑자기 잔인함으로 돌변하는 순간의 놀라움

쭈니-1 2018. 7. 6. 13:12



감독 : 박훈정

주연 : 김다미, 조민수, 박희순, 최우식, 고민시

개봉 : 2018년 6월 27일

관람 : 2018년 7월 4일

등급 : 15세 관람가



모두가 [마녀]를 거부하다.


저는 일찌감치 6월 마지막주 최고 기대작으로 [마녀]를 선정해 놓았습니다. [마녀]는 [신세계], [대호], [브이아이피] 등 굵직한 남성 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박훈정 감독이 처음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로, 생체 실험을 통해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된 자윤(김다미)과 그녀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고편을 통해 저는 [마녀]가 한국판 '엑스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일찌감치 [마녀]의 전용 예매권 두 장을 구매해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마녀]를 보러 가는 길을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웅이는 기말고사 시험 공부 때문에 바쁘기에 오랜만에 구피와 함께 [마녀]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지난 주말 구피가 개도 안걸린다는 오뉴월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제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결국 웅이의 기말고사가 끝나는 목요일 저녁에 웅이와 [마녀]를 볼 새로운 계획을 세웠는데 이번엔 웅이가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친구가 [마녀]를 봤는데, 너무 피가 난무하는 잔인한 영화라고 했다며 [마녀]가 그다지 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웅이의 말을 들은 구피는 "나도 피가 난무하는 영화는 싫은데..."라며 역시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마녀] 전용 예매권 두 장을 구매했지만 혼자 영화를 보러 가야할지도 모를 상황. 저는 구피한테 그 비싼 버거킹 햄버거(햄버거 하나에 내 이틀치 밥값인)를 뇌물로 먹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고, 결국 구피는 '아직 감기도 낳지 않았는데...', '난 잔인한 영화 싫은데...' 등 온갖 투덜거림 끝에 마지못해 수요일 밤에 저를 따라 극장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습니다. 특히 피가 난무하는 장면에서는 구피가 질색을 하며 저를 향해 '미워'를 연발해서 구피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던... 영화가 끝난 후 구피는 2편이 나오면 절대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저는 [마녀]가 고이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벌써부터 2편이 기다려졌습니다. 물론 2편이 개봉하면 저 혼자 외롭게 봐야할테지만...


구피는 [마녀]가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웠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 영화가 무서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마녀]에서 우리나라의 SF 액션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너무 순수해서 더욱 조마조마했다.


[마녀]는 생체 실험에 대한 끔찍한 흑백 화면들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어느 시설에서 의문의 사고가 발생하고 한 여자아이가 시설을 도망치지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앞의 흑백 화면과 뒤의 시설에서의 사고 장면을 통해 저는 시설이 생체 실험을 하는 곳이며, 시설에서 도망친 어린 여자 아이는 생체 실험 대상자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여자아이는 시골의 한적한 농장에서 쓰러진채 발견되고, 농장의 노부부에 의해 딸로 키워집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어린 여자 아이는 구자윤(김다미)라는 이름으로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어 있습니다.

영화 오프닝씬을 제외한다면 [마녀]의 초반부는 순수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여고생인 자윤과 그녀의 베프 명희(고민시)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며 남들과 다르지 않은 자윤의 평범한 여고 시절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특히 몸이 불편한 아버지(최정우)와 치매에 걸린 어머니(오미희)를 위해 헌신하는 자윤의 모습은 저로 하여금 마음 속으로 자윤을 응원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자윤이 경영난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위해 TV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탄생'에 출연하며 상황은 바뀝니다. 정체불명의 귀공자(최우식)가 자윤에게 접근하고, 10년 전 시설의 책임자였던 닥터 백(조민수)와 미스터 최(박희순)도 자윤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마녀]는 순수함으로 가득한 자윤에게 불어닥친 위기를 통해 서서히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귀공자 일당은 과거 생체 실험에 참가한 과학자들을 처참하게 살해하는데 '심심해서'라는 이유로 가족까지 죽이는 장면을 일부러 관객에게 보여주며 자윤의 가족과 친구도 결코 안전하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그러한 암시는 영화를 보는 저로 하여금 조마조마하게 만듭니다. 귀공자 일당이, 혹은 미스터 최는 언제든지 자윤의 가족과 명희를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죽음으로써 자윤의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 넣고, 분노에 의한 그녀의 각성이 진행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에 영화의 중반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위기 장면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관객은 순수함이 지켜지길 원한다.

그렇기에 자윤과 그녀의 주변의 순수함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극한 긴장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박훈정 감독이 파 놓은 함정이었다.



순수함이라는 덫에 걸려 함정에 빠지다. (이후 영화의 결말 내용이 언급됩니다.)


10년 전의 사건, 과거를 잊은 자윤, 그리고 순수한 여고생으로써의 자윤의 모습 등. 박훈정 감독은 관객을 속이기 위해 철저하게 함정을 파놓았습니다. 저는 자윤이 생체 실험의 대상자였음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10년 전의 끔찍한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임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순간 그러한 자윤의 정체를 잊은채 순수한 그녀의 모습에 매료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귀공자 일당은 완벽한 미끼입니다. 오디션 지역 예선을 통과한 이후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첫 만남을 가진 자윤과 귀공자. 이후 귀공자는 기차 안에서 시비가 붙은 건달을 살해함으로써 잔인함을 과시합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귀공자 일당은 살인 행각을 벌입니다. 그러한 귀공자 일당을 보며 저는 자윤이 귀공자 일당에 의해 위험에 처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자윤 또한 귀공자 일당과 똑같은 부류의 존재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채 시시각각 자윤의 목을 조여오는 귀공자 일당의 위험에 마음을 졸이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마녀]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뻔한 소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생체 실험, 혹은 불가사의한 뭔가에 의해 초인적인 힘을 가지게된 사람들의 모험담은 더이상 새롭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새로운 소재일지 몰라도 이미 할리우드의 '엑스맨' 시리즈를 경험한 관객 입장에서는 뻔해도 너무 뻔한 소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박훈정 감독은 그런 뻔한 소재를 오히려 역이용합니다. 자윤의 가족과 친구가 죽으며 초인적인 힘을 각성한다는 설정은 이미 수 많은 뮤턴트 영화 혹은 비슷한 소재의 영화에서 항상 사용하던 설정입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마녀]도 그런 식으로 진행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 중반까지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런 식으로 흘러갑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영화 후반에 박훈정 감독은 제게 강한 카운터 펀치를 날립니다. 자윤의 순수함에 매료된 제게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잔인함은 자윤이 아닌 그들의 몫일 것이라 생각했다.

자윤이 그들과 다를 것이 없는 부류의 존재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10년이라는 세월동안 그녀는 변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박훈정 감독은 그러한 순진한 내 생각을 완벽하게 비웃어줬다.



순수가 잔인으로 변하는 순간


한밤중에 집으로 침범한 미스터 최의 부하들을 결국 자윤은 잔인하게 죽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해도 자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가족과 명희를 살리기 위해 오히려 잠시 각성한 그녀의 모습을 응원할 수 있었습니다. 뒤이어 귀공자 일당이 찾아와 자윤을 닥터 백에게 데려갈땐 안타까웠지만 마음이 놓였습니다. 자윤이 귀공자 일당을 따라나섬으로써 자윤의 부모와 명희는 안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상대로 자윤은 닥터 백에 의해 또다시 결박당한채 실험실에 갇힙니다. 그 장면에서는 닥터 백의 웃음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제 착각이었습니다. 닥터 백이 자윤에게 약물을 투여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윤은 변합니다. 처음엔 기억이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닥터 백, 귀공자는 물론 관객 모두가 자윤에게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자윤은 생체 실험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고, 그녀가 살기 위해서는 가족의 골수 이식 외엔 방법이 없었습니다. 자윤은 닥터 백에게 뭔가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닥터 백의 실험실에 온 것입니다.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순수해 보이기만 했던 자윤의 표정이 갑자기 섬뜩하게 변하며 "솔직히 기대 이상이네. 안녕하세요, 박사님. 우리 정말 오랜만이죠?"라며 씨익 웃을땐 순수함이 한순간에 잔인함으로 변하는 끔찍한 순간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실 갑작스러운 반전이 아니었습니다. 영화에서 충분히 그에 대한 암시를 줬습니다. 영화 초반 얼마 안지나 뇌가 터져 죽을 것이라는 닥터 백의 대사,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며 피를 흘리는 자윤의 모습, 가족의 골수 이식을 받지 않으면 길에도 두달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충고 등등. 모든 것이 약물을 구하기 위한 자윤이 계획한 것이라는 것은 분명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박훈정 감독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심심해서 일반인을 죽이는 귀공자 일행은 잔인했다.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한 닥터 백과 미스터 최도 잔인하다.

하지만 순수함으로 숨겼다가 어느순간 정체를 드러낸 자윤이야 말로 가장 잔인했다.



내가 PART 2를 기대하는 이유


[마녀]의 후반부는 약물을 손에 넣고, 제대로 자신의 힘을 발휘하는 자윤과 그녀로 인하여 죽어 나가는 캐릭터들의 살육전으로 진행됩니다. 애초에 그들은 자윤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모니터 밖으로 몸을 숨긴 닥터 백, 수십명의 부하를 거느린 미스터 최, 그리고 초인적인 힘을 지닌 정예요원들과 함께 하는 귀공자까지... 자윤은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끔찍하게 죽입니다. 그러한 자윤의 모습은 영화 중반까지 순수함으로 무장했던 그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섬뜩했습니다. 그리고 신인이면서도 자윤의 이중성을 완벽하게 연기한 김다미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기력을 갖춘 또 한명의 대형 신인이 등장한 것입니다.

[마녀]의 영어 제목은 'The Witch : Part 1. The Subversion'입니다. 영화의 제목 뒤에 부제가 눈에 띄는데 'PART 1'이라는 것은 'PART 2'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마녀 2]의 제작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실제 영화도 속편을 암시하며 끝이 납니다. 자윤은 원했던 약물을 구했지만 약물의 효과는 단 한달 뿐입니다. 결국 약물은 자윤의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 아닌 셈입니다. 이에 자윤은 진정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본사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닥터 백의 쌍둥이 언니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의문의 소녀는 심상치않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언니한테 까불면 모가지 날아간다."라는 자윤의 마지막 한마디는 2편에서 그녀와 자윤의 대결이 진행될 것임을 짐작하게 만듭니다.

이로써 저는 또 한편의 한국영화 속편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체 실험을 감행한 본사를 향한 자윤의 복수극은 전편보다 훨씬 거대해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녀]가 좀 더 흥행을 해야겠지만... 게다가 [마녀]에서 생사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 귀공자도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기대되고, 새로운 능력자들도 대거 등장할 것입니다. 이쯤되면 2편에서 또다시 구피와 웅이가 함꼐 보기를 거부해도 충분히 기대할만한 값어치가 있어 보입니다.


박훈정 감독은 진정 영악했다.

자윤의 순수함으로 나를 현혹시키고

순수했던 그녀가 한순간에 최악의 잔인함으로 변하는 장면을 통해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재미를 창조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