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 - 양이 된 늑대, 혹은 양의 탈을 쓴 늑대

쭈니-1 2018. 7. 5. 11:38



감독 : 스테파노 솔리마

주연 : 조슈 브롤린, 베니치오 델 토로, 이사벨라 모너

개봉 : 2018년 6월 27일

관람 : 2018년 7월 4일

등급 : 15세 관람가



과연 전편의 충격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저는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당시 드니 빌뇌브 감독은 [프리즈너스]라는 독특한 스릴러를 만든 감독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제겐 필수 관람 감독 목록에 오르기 전이었습니다. 만약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가 [컨택트] 이후에 만들어졌다면 당연히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를 극장에서 관람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를 극장에서 관람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이유는 영화가 정말 말그대로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는 악명 높은 멕시코 마약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FBI와 CIA가 손을 잡는다는 단순한 내용이지만, 그 안에는 악을 처단하기 위해 스스로 늑대가 되어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원칙대로 임무를 수행하려햇던 FBI 요원 케이트 메이서(에밀리 블런트)는 순한 한마리의 양에 불과했습니다.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기에 속편인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땐 꼭 극장에서 보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드니 빌뇌브에서 스테파노 솔리마로 변경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와 저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스테파노 솔리마는 마피아, 종교계, 부패한 정치권이 결탁한 로마 최악의 재개발 게이트를 내용으로한 [수부라 게이트]로 주목을 받은 이탈리아 감독입니다. 2017년 9월에 개봉한 [수부라 게이트]를 보지 못한 저로써는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에 대한 기대가 한풀 꺾여 버렸습니다.

게다가 에밀리 블런트도 빠진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물론 조슈 브롤린과 베니치오 델 토로는 여전히 출연한다고 하지만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에서 에밀리 블런트가 연기한 케이트 메이서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녀는 관객의 눈과 귀가 되어 늑대들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 추악한 범죄 게임을 목격하고 이용당함으로써 관객이 느낄 충격을 함께 공유합니다. 그러한 케이트 메이서가 없다는 것은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에 온통 늑대만 남아 버렸다는 것을 뜻하며, 관객이 감정이입을 할 캐릭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가 개봉하고 일주일이 지나가는 시점까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할지, 나중에 다운로드와 봐야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제 블로그 이웃분의 추천이 없었다면 극장 관람은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CIA요원 맷 그레이버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온갓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는 늑대이다.

가족을 마약 카르텔에 잃은 전직 멕시코 검사 알레한드로 길릭은 복수를 위해

끔찍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늑대이다.

결국 이 영화엔 전편의 유일한 양은 사라지고, 두마리 늑대만 남아 버렸다.



마약? 이번엔 사람 장사이다.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는 미국의 국경수비대가 심야에 이동하는 불법이민자 무리를 포착하며 시작됩니다. 그런데 멕시코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불법이민자 무리 중 한명이 미국 국경수비대 앞에서 자폭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캔자스시티의 한 마트에서 4명의 남자가 벌인 자살 폭탄테러로 수 많은 인명피해가 납니다. 이에 미정부는 테러리스트에게 강력 대응을 발표합니다. 화면이 바뀌어 미국 특수부대가 소밀리아 해적 소탕 작전을 펼칩니다. 소말리아 해적 두목을 생포한 CIA 요원 맷 그레이버(조슈 브롤린)는 캔자스시티에서 벌어진 자살 폭탄테러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과연 소말리아 해적과 미국에서 벌어진 자살 폭탄테러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맷 그레이버의 설명에 의하면 자살 폭탄테러를 벌인 이들은 예멘 국적의 이슬람 테러집단 ISIS 소속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미국으로 입국을 못하자 예맨에서 멕시코까지 배를 통해 밀입국하고, 다시 밀입국 브로커를 통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여 자살 폭탄테러를 벌인 것입니다. 소밀리아 해적은 돈을 받고 예맨에서 멕시코로 향하는 배를 무사 통과시켜 줬고, 맷은 소말리아 해적 두목을 통해 그 연결고리를 찾아낸 것입니다.

미국방부장관은 맷에게 묻습니다. 요즘 멕시코 카르텔에게 가장 돈이 되는 장사는 무엇이냐고. 맷은 예전엔 마약이지만, 요즘은 사람 장사라고 답합니다. 밀입국에 실패하더라도 또다시 돈을 대고 밀입국을 시도할테니 멕시코 카르텔 입장에서 밀입국자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돈줄인 셈입니다. 결국 미국내 자살 폭탄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밀입국 브로커를 장악한 멕시코 카르텔을 무너뜨려야 하고, 이 임무는 맷에게 맡겨집니다. 그리고 맷은 아직 가족에 대한 복수를 완성하지 못한 알레한드로 길릭(베니치오 델 토로)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들의 계획은 멕시코 최대 카르텔의 보스인 카롤로스 레예스의 딸 이사벨(이사벨라 모너)을 납치하고 그것이 경쟁 카르텔의 짓으로 조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멕시코 카르텔 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미국은 손 쉽게 멕시코 카르텔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입니다.


두 늑대의 타깃은 이사벨 레예스라는 어린 소녀이다.

그녀는 첫 등장부터 학교 내에서 아버지의 빽만 믿고 시원스럽게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어린 그녀의 순수함은 점차 두 늑대를 변화시킨다.



늑대의 소굴에 내던져진 어린 소녀


분명 맷과 알레한드로의 이번 작전 또한 독합니다. 아무리 멕시코 카르텔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벌인 짓은 아직 어린 소녀를 납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소녀를 레예스 카르텔의 경쟁 카르텔인 마타모로스 카르텔 지역에 버려둠으로써 두 카르텔 간의 전쟁을 유발시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사벨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지만 맷과 알레한드로는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긴 이 두 사람은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에서 동료인 케이트를 미끼로 사용하여 위험에 빠뜨린 전력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임무 완수(혹은 복수)를 위해서라면 선량한 누군가의 희생 따위는 당연한 것입니다.

결국 이사벨은 늑대 소굴에 내던져진 한마리 순한 양입니다.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에서 케이트가 했던 역할입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케이트는 FBI요원이었기에 얼마든지 늑대 소굴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 나갈 수 있었지만, 아무리 레예스 카르텔의 보스 딸이라고해도 어린 소녀에 불과한 이사벨은 케이트처럼 살아서 늑대 소굴을 빠져 나갈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안타까움이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를 전편을 넘어서는 잔혹한 스릴러로 만듭니다.

실제로 이사벨은 온갖 죽을 위기를 맞이합니다. 납치된 이후 잠시 미국에 옮겨진 이사벨은 멕시코의 마타모로스 카르텔 지역에 내던져질 처지였지만, 맷 일행을 호위하던 멕시코 경찰의 배신으로 사막 한가운데에서 충격전에 휘말립니다. 겨우 총격전 현장을 빠져 나왔지만 그녀를 노리는 죽음의 손길은 멈추지 않습니다. 겨우 알레한드로에게 구출되지만, 이사벨은 자신의 아버지가 알레한드로의 가족을 죽인 원수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녀로써는 자신의 목숨을 원수에게 내맡길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멕시코 경찰과의 총격전을 부담스러워한 미정부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이사벨은 물론 알렌한드로마저 제거하려합니다. 이쯤되면 이사벨의 살아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수의 딸과의 동행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아버지와 딸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 이사벨은 미국으로의 밀입국을 시도하며 알레한드로를 아버처럼 따르기도 한다.



어린 소녀 앞에 그들은 양이 되어간다. (이후 영화의 결말을 공개합니다.)


작전을 위해 어린 이사벨을 납치한 맷과 알레한드로. 그리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이사벨을 깨끗이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미정부. 비록 드니 빌뇌브 감독과 에밀리 블런트가 빠졌지만, 확실히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는 전편보다 독해진 듯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반까지일 뿐입니다. 멕시코 경찰과의 총격전 이후 작전에 부담을 느낀 미정부는 발 빼기에 급급했고, 결국 작전권은 맷에게서 CIA 간부 신시아(캐서린 키너)에게로 넘어갑니다. 신시아의 첫번째 명령은 이사벨과 알레한드로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맷은 그러한 신시아의 명령에 반발하지만 그로써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명령에 따르는 수 밖에요.

이렇게 가장 잔인한 선택의 순간, 하지만 맷과 알레한드로는 갑자기 순한 양이 됩니다. 알레한드로는 원수의 딸인 이사벨을 안전하게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위험한 모험을 마다하지 않고, 맷은 신시아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이사벨을 구합니다. 만약 이사벨을 구하는 것이 멕시코 카르텔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면 맷과 알레한드로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미 미정부가 작전에서 발을 빼는 순간 작전은 실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시아의 명령대로 이사벨은 후환을 위해 제거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이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에서 보여준 늑대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알레한드로는 이사벨에게서 죽은 청각장애인 딸의 환영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의 목표는 이사벨의 아버지인 카를로스 레예스를 죽이는 것이기에 이사벨을 죽이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도합니다. 하지만 맷의 마지막 선택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신시아의 명령을 어길 것이라면 이사벨이 아닌 알레한드로를 구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맷은 알레한드로가 미겔의 총에 맞아도 그를 구하지 않습니다. 만약 후일을 기약한다면 알레한드로는 맷에게 중요한 존재일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더이상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이사벨은 신시아의 명령을 어기며 구합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그 누구보다 악랄한 늑대였던 맷이 이렇게 순한 양이 되어 버린 것일까요?


임무와 복수를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던

흉악했던 늑대가 어느순간 갑자기 순한 양이 된다.

이게 전부 이사벨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청소년 선도위원 알레한드로


이 영화에서 갑자기 신시아의 명령을 어기고 이사벨을 구하는 맷의 선택과 더불어 한가지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알레한드로의 모습입니다. 신시아가 맷에게 알레한드로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 임무를 다른 팀에게 맡기려하자 맷은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나섭니다. 만약 알레한드로 제거를 실패했다가는 알레한드로가 신시아를 죽이기 위해 찾아올 것이라는 이유를 댑니다. 알레한드로를 제거해야한다면 괜히 후환을 남기지 말고 확실하게 처리해야한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알레한드로는 그렇게 맷조차 두려워한 인물입니다.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겔의 총에 맞고 죽을 위기를 겨우 넘긴 알레한드로는 1년 후 범죄자로 타락한 미겔을 찾아옵니다. 저는 당연히 복수를 위해 찾아왔을 것이라 예성했지만 의외로 알레한드로는 미겔에게 "너의 장래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라고 말합니다. 순간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맷은 알레한드로 제거에 실패했다가는 그의 복수로 인하여 CIA 고위 간부인 신시아의 목숨마저 위태로울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미겔은 알레한드로를 죽이려 했고(비록 명령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1년 후 미겔을 찾은 알레한드로는 복수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하여합니다. 미겔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인걸까요?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와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의 각본을 쓴 테일러 쉐리던은 3편에 대해 언급했다고 합니다. 그에 의하면 에밀리 블런트는 3편에서 카메오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갑자기 순한 양이 되어 버린 맷과 알레한드로의 변신은 3편에서 새로운 작전을 위한 떡밥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카를로스 레예스 제거에는 실패했지만 1년 후 다시 시도할 것이고 그렇다면 신시아의 명령을 어기고 애써 살려둔 이사벨과 레예스 카르텔의 조직원이 되었을 미겔은 완벽한 미끼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양이 된 늑대의 모습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3편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나니 늑대는 양이 된 것이 아닌 양의 탈을 쓴 것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3편의 개봉을 기다리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네요.


만약 3편이 제작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갑자기 양이된 늑대, 맷과 알레한드로의 행동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이 영화는 내게 1편의 분위기를 망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3편은 제작될 것이고, 양의 탈을 쓴 늑대의 본격적인 활약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