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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스 8] - 긴장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케이퍼 무비

쭈니-1 2018. 6. 14. 17:16



감독 : 게리 로스

주연 : 산드라 블록, 케이트 블란쳇, 앤 헤서웨이

개봉 : 2018년 6월 13일

관람 : 2018년 6월 13일

등급 : 12세 관람가



국민의 주권을 행사한 다음엔 재미있는 영화를...


6월 13일은 전국동시 지방선거날이었습니다. 웅이는 태권도장에서 합숙을 한다며 전날 집을 나섰고, 저와 구피는 오랜만에 늘어지게 늦잠을 잤습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 투표를 하기 위해 동사무소로 향했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오전 늦게 투표를 하러 나섰기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람이 별로 없어서 투표는 금방 끝마쳤습니다. 그날 유일하게 해야할 일이었던 투표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더군요. 그래서 국민의 소중한 주권을 행사한 저와 구피를 위해서 어느정도 재미가 보장된 [오션스 8]을 봤습니다. 물론 태권도장에서 합숙이라는 미명아래 밤새 놀다가 집에 와서 잠을 자기 시작한 웅이가 깨어나길 기다렸다가 함께 보고 왔습니다.

[오션스 8]은 2002년에 국내 개봉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의 스핀오프입니다. [오션스 일레븐]은 뉴저지 교도소를 출소한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이 출소하자마자 동료를 모아 사상 최대 규모의 카지노를 털기로 계획한다는 내용의 케이퍼 무비입니다. 개봉 당시 [오션스 일레븐]은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줄리아 로버츠, 앤디 가르시아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주목을 받았고, 촘촘하게 짜여진 세밀한 시나리오로 케이퍼 무비의 진수를 보여줬습니다.

[오션스 일레븐]의 성공은 당연히 속편으로 이어졌습니다. 2005년에 국내 개봉한 [오션스 트웰브]는 그렇지 않아도 화려했던 전편의 멤버를 더욱 보충했습니다. 그 결과 캐서린 제타 존스와 뱅상 카셀이 영화에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문제는 2007년에 국내 개봉한 [오션스 13]입니다. 제목 그대로 멤버는 계속 보충되었지만, 더이상 억지로 짜낼 이야기는 부족했습니다. [오션스 13]은 알 파치노라는 거물 배우를 새롭게 투입했지만 이미 흥행 성적은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하락했고, 결국 [오션스 13]을 마지막으로 대니 오션의 활약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오션스 8]에서는 대니 오션의 여동생 데비 오션(산드라 블록)이 새롭게 등장한 것입니다.


지금은 여성시대!!!

이제 더이상 할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았던 대니 오션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여성 멤버들로 똘똘 뭉친 데비 오션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 오빠에 그 여동생


[오션스 일레븐]이 그러했듯이 [오션스 8]도 애인인 클로드 베커(리처드 아미티지)의 배신으로 5년간 감옥에서 썩었다가 가석방으로 풀려난 데비 오션의 모습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감옥을 나오자마자 그녀는 가벼운 사기 행각으로 명품 화장품을 훔쳐 내고, 고급 호텔에서 공짜로 하룻밤을 보냅니다. 그리고는 옛 동료인 루(케이트 블란쳇)를 불러 새로운 작전을 계획합니다. 데비의 목표는 프랑스 보석회사 까르띠에의 금고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1억5천만 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 잔느 투생을 훔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최고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동료들을 모읍니다.

주인공은 대니 오션에서 데비 오션으로 바뀌었습니다. '오션스 시리즈'를 감독한 스티븐 소더버그는 제작으로 일선에서 물러났고, 감독은 게리 로스가 새롭게 영입되었습니다. 게리 로스 감독은 페니 마샬 감독의 [빅]과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데이브]로 아카데미 시나리오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TV 시트콤 애청자인 데이빗(토비 맥과이어)과 그의 여동생 제니퍼(리즈 위더스푼)가 TV속 시트콤 세상에 빨려 들어간다는 내용의 [프레전트빌]로 감독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경주말과 기수의 우정을 다룬 [씨비스킷]과 캣니스 에버딘(제니퍼 로렌스)의 전설을 탄생시킨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을 거쳐 [오션스 8]까지 도달했습니다.

이렇게 주연 배우와 감독은 교체되었지만 [오션스 8]은 [오션스 일레븐]의 적자임을 드러냅니다. 데비는 출소하자마자 오빠인 대니의 납골당에 가서 그리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명백히 데비의 영화 속 역할은 대니와 똑같고, [오션스 일레븐]에서 작전 참모 역할을 수행했던 러스티 라이언(브래드 피트)의 역할은 루가 맡습니다. 결국 [오션스 8]은 영화를 보는 내내 [오션스 일레븐]의 향수를 느끼게 만듭니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를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오션스 일레븐]이 케이퍼 무비의 교과서적인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오션스 8]의 이러한 시도는 꽤 성공적이라 할만합니다.


분명 [오션스 8]을 보며 [오션스 일레븐]이 자꾸 떠올랐다.

[오션스 일레븐]이 최고의 케이퍼 무비 중 한편임을 감안한다면

[오션스 8]의 이러한 전략은 분명 성공적이다.



단 한명도 허투루 모은 멤버는 없다.


일단 [오션스 8]의 전략은 분명 성공적입니다. 북미에서는 개봉 첫주 4천1백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리며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한 솔로 : 스타워즈 스토리]를 2위로 밀어냈습니다. [오션스 8]의 성적은 '오션스 시리즈'의 오프닝 성적 중 가장 높은 성적으로 이전에는 [오션스 트웰브]의 3천9백만 달러였습니다. 하지만 [오션스 트웰브]의 순수 제작비는 1억1천만 달러이고, [오션스 8]의 순수 제작비는 7천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굉장히 성공적인 북미 박스오피스 첫주 성적이라 할만합니다.

제가 [오션스 8]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션스 시리즈'가 [오션스 13]에서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멤버를 늘리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명씩 멤버가 늘어나다보니 당연히 출연료에 의한 제작비도 늘어나고, 너무 많은 주연급 배우들이 난무하여 그들을 화면에 잡기 급급하다보니 정교한 스토리 전개는 뒷전에 밀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오션스 8]은 제목 그대로 8명의 멤버로 구성됩니다. 이는 [오션스 일레븐]보다 멤버가 3명이 줄어든 것이고, 그만큼 영화는 슬립해졌습니다.

8명의 멤버들의 역할은 정확하게 나눠졌습니다. 데비는 작전의 설계 및 리더, 루는 행동대장 겸 참모입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패션 행사인 메트 갈라의 모델인 톱스타 다프네 클루거(앤 해서웨이)의 목에 잔느 투생을 걸게 하기 위해 한물간 패션 디자이너 로즈(헬레나 본햄 카터)가 섭외되고, 태미(사라 폴슨)는 메트 갈라 진행 요원으로 위장 취업해서 보안 정보를 빼냅니다. 해커인 나인볼(리한나)은 태미가 빼낸 정보를 토대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보완을 뚫고, 소매치기 전문가인 콘스탄스(오콰피나)는 다프네의 목에서 잔느 투생을 몰래 빼돌립니다. 보석 감정 및 세공 전문가인 아미타(민디 캘링)는 콘스탄스가 빼낸 잔느 투생을 분해해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밖으로 가져나오면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끝나는 것이죠.


그저 화려한 캐스팅을 위해 별 쓸모없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이 아닌

모든 캐릭터가 중요한 임무를 맡고 그 역할에 충실할 때

진정한 케이퍼 무비의 걸작은 탄생한다.



마지막 여덟번째 멤버까지 좋았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아마도 '[오션스 8]인데 왜 멤버가 일곱명이야?'라는 질문을 던지실 겁니다. 사실 저도 영화를 보는 내내 '한명은 어디있지?'라며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문은 영화의 후반부에 풀립니다. 잔느 투생 사건을 맡은 보험 수사관 존(제임스 코든)이 등장하며 마지막에 합류한 여덟번째 멤버가 큰 역할을 해내기 때문입니다. 분명 여기까지 [오션스 8]은 경쾌한 분위기와 화려한 캐스팅, 그리고 촘촘한 스토리 전개와 통쾌한 결말로 케이퍼 무비의 진수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션스 8]은 [오션스 일레븐]을 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왜 [오션스 8]은 [오션스 일레븐]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영화의 긴장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데비는 5년이 넘는 시간동안 감옥에 갇혀 있으며 수십, 수백번이나 잔느 투생을 훔치기 위한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렸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실제로 작전을 수행할땐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됩니다. 돌발사건이라고는 잔느 투생을 다프네의 목에서 풀려면 특수 자석이 필요하다는 점 뿐입니다. 하지만 이 돌발사건도 나인볼의 초등학생 동생이 특수 자석을 똑같이 만들어주며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오션스 8]의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데비의 계획의 너무 완벽하다는 점입니다. 데비가 아무리 5년이 넘는 시간동안 완벽하게 계획을 짰다고해도 그것이 실행으로 옮겨지면 수도 없는 돌발사건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에 데비가 생각한대로만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션스 8]에는 그러한 돌발사건이 부족하고, 돌발사건이 없다보니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도 사라집니다. 그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데비 일행의 범죄 행각을 멍하니 감상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영화의 긴장감이 떨어질 수 박에 없습니다. 진심으로 데비의 계획은 조금 덜 완벽했어야 했습니다.


데비의 계획에서 돌발상황이 생길 여지는 충분히 많았다.

다프네가 설사약이 든 수프를 먹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자신의 옆에 앉은 클로드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짜여진 각본대로 아무런 돌발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다.



대니와 데비의 크로스 오버가 보고 싶다.


영화가 끝난 후 구피가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바로 긴장감 부재였습니다. 구피는 "[오션스 일레븐]을 볼 땐 조마조마했는데, [오션스 8]에는 그런 것이 없네."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도 그러한 구피의 의견에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과 그러한 돌발 상황을 재치있게 해결하는 순발력도 케이퍼 무비의 재미인데, 아무래도 게리 로스 감독은 그러한 것을 미처 감안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체적으로 만족했습니다. 특히 대니의 죽음을 공식화하지 않음으로써 언젠가는 대니의 '오션스 시리즈'와 데비의 '오션스 시리즈'를 크로스 오버할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데비는 대니의 죽음이 가짜라는 의심을 합니다. 게다가 대니의 '오션스 시리즈'에서 활약한 루벤(엘리어트 굴드)이 영화 초반 대니의 납골당에 나타나 "그 계획이 무엇이든 하지말라고 오빠가 전해달래."라며 충고하는 장면이 나오고, 영화의 후반에는 곡예사 옌(샤오보 퀸)의 반가운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다른 멤버들도 데비의 '오션스 시리즈'에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죽음이 공식 확인되지 않은 대니를 비롯하여 러스티, 그리고 라이너스(맷 데이먼)까지... 물론 그들을 모두 출연시키려면 제작비가 엄청 올라가겠지만 말입니다.

솔직히 저는 줄리아 로버츠의 우정 출연을 은근히 바랬습니다. 줄리아 로버츠는 [오션스 일레븐]에서 대니의 전처인 테스로 나왔고, [오션스 트웰브]에서는 대니의 12번째 멤버가 되기도합니다. [오션스 8]이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팀이기에 대니의 '오션스 시리즈' 최초의 여성 멤버인 테스가 깜짝 등장했다면 더 큰 재미를 줬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오션스 8]은 다코타 패닝, 킴 카다시안, 케이트 홈즈, 올리비아 문 등이 카메오로 출연하며 볼거리를 풍성하게 했습니다. 결국 [오션스 8]은 긴장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케이퍼 무비라는 평이 가장 알맞은 평가인 것 같습니다.


너무 완벽한 사람은 오히려 지루하다.

조금은 모자라고, 조금은 부족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재미있다.

영화도 그러하다.

너무 완벽한 계획은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 수 있음을 게리 로스 감독도 깨달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