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개들의 섬] - 명백히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

쭈니-1 2018. 6. 26. 17:46



감독 : 웨스 앤더슨

더빙 : 브라이언 크랜스톤, 코유 랜킨, 리브 슈라이버, 스칼렛 요한슨

개봉 : 2018년 6월 21일

관람 : 2018년 6월 24일

등급 : 12세 관람가



다행이다. 자막 버전만 상영해서...


요즘은 기대했던 애니메이션이 개봉할 때마다 혹시 국내 성우진에 의한 더빙 버전으로만 개봉하는 만행이 벌어지지는 않은지 신경써서 체크하고 있습니다. 이미 수 많은 애니메이션 기대작을 자막 버전 개봉을 찾지 못해 놓쳤습니다. 특히 [피터 래빗], [얼리맨]은 제가 정말 보고 싶었던 애니메이션이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다운로드 서비스로 관람을 미뤄야만 했습니다. [개들의 섬] 개봉 일자가 잡힌 이후에도 저는 [피터 래빗], [얼리맨]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만행이 벌어질지 몰라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개들의 섬]은 오히려 자막 버전만 상영된다고 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개들의 섬]은 비록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영화이지만 국내 더빙 버전을 선호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관객이 보기엔 적합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록달록하고 예쁜 그림체, 귀여운 캐릭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스토리 라인과 같은 어린이 관객이 좋아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요소가 [개들의 섬]에는 전혀 없습니다. 그 대신 사실적인 개 캐릭터, 그리고 엽기적인 인간 캐릭터와 디스토피아적 어두운 세계관이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웅이는 [개들의 섬] 예고편을 본 후 제게 "영화가 약간은 무서울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개들의 섬]은 가까운 미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가문대대로 개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고바야시 시장(쿠니치 노무라)은 인류를 위협하는 개 독감을 핑계로 일본내 모든 개들을 쓰레기 섬으로 추방합니다. 사고로 부모를 잃고 먼 삼촌뻘인 고바야시 시장에게 입양된 소년 아타리(코유 랜킨)는 자신의 경호개인 스파츠(리브 슈라이버)가 쓰레기 섬으로 보내지자 스파츠를 찾아 쓰레기섬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쓰레기 섬에서 각자의 사연을 가진 치프(브라이언 크랜스톤), 보스(빌 머레이), 듀크(제프 골드브럼), 렉스(에드워드 노튼), 킹(밥 발라반), 넛메그(스칼렛 오한슨), 쥬피터(F. 머레이 에이브라함), 오라클(틸다 스윈튼)과 만나 놀라운 모험을 하게 됩니다.


[개들의 섬]은 정말 개판이다.

하지만 지금껏 본 적이 없는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분명 [개들의 섬]은 개판이지만, 그 개판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웅이와 함께 [개들의 섬]을 보러 가기 전,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하는 웅이에게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해줘야 했습니다. 그러기위해서 저는 웅이에게 [판타스틱 Mr. 폭스]를 [개들의 섬]을 보기 전, 먼저 보여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기말고사를 앞둔 웅이의 시험공부 시간을 너무 빼앗는다는 이유로 구피가 저를 째려보며 반대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웅이와의 [판타스틱 Mr. 폭스] 관람은 기말고사 뒤로 미뤄졌습니다. 그렇기에 [개들의 섬]을 보러 가는 길에 간단하게 웅이에게 말로써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거늘...

일단 간단하게 [판타스틱 Mr. 폭스], [개들의 섬]을 통해 본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세계를 요약하자면 인간과 동물의 대립니다. [판타스틱 Mr. 폭스]는 미국의 유명 동화작가인 로알드 달의 동화를 원작으로 동물과 인간의 대립을 통해 인간 사회에 대한 풍자를 보여줍니다. 한때 악명높은 도둑이었지만 이젠 깨끗하게 손을 씻고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Mr. 폭스(조지 클루니)가 인간 마을의 악질 농장주 3인방의 창고를 습격하며 본격적으로 인간의 동물의 전쟁이 벌어진다는 내용입니다.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는 [개들의 섬]에서는 그러한 웨스 앤더슨의 세계관이 확장됩니다. 고바야시 시장으로 대표되는 인간 사회에 맞서는 것은 쓰레기 섬에 버려진 개들입니다. 그럼으로써 웨스 앤더슨 감독은 겉과 속이 다른 부조리한 인간보다 본능에 충실한 개가 훨씬 이성적이라고 말합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 세게에서 특히 주목해봐야할 것은 내용과 영상미의 부조화입니다.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 그의 실사 영화는 암울한 정서를 아름다운 영상미로 잡아냅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판타스틱 Mr. 폭스], [개들의 세상]에서는 아름다워야 할 동화속 애니메이션을 기괴스러운 영상미로 잡아냅니다. 그러한 내용의 영상미의 부조화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한 웅이에겐 조금 충격적일 수 있기에 저는 [개들의 섬]을 보러 가는 내내 웅이가 받은 충격을 최소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개들의 섬]을 보러 가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부분은

'과연 웅이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다.

다행히 영화가 끝나고 웅이의 표정은 만족스러워보였다.



각오는 했지만 예상보다 기괴했다.


일요일 오전, [개들의 섬]이 상영되는 집근처 멀티플렉스에는 예상보다 관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12세 관람가 등급의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관객 중 대부분은 성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자 만약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관객이 [개들의 섬]을 봤다면 칭얼거리며 극장 밖으로 나가자고 엄마, 아빠를 졸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충분히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개들의 섬]의 예고편을 봤을 때 제 예상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직접 두 눈으로 확인을 하니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개들의 섬]은 훨씬 기괴스러웠습니다. 이 영화가 기괴스러웠던 첫번째 이유는 언어에서 비롯됩니다. [개들의 섬]은 두가지 언어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고바야시 시장, 아타리 등 인간 캐릭터의 언어인 일본어이고, 다른 하나는 개들의 언어인 영어입니다. 개가 영어를 한다는 불가능한 설정의 영화인만큼 영화 속 일본인 캐릭터가 영어를 해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웨스 앤더슨 감독은 굳이 영화 속 인간의 언어를 일본어로 설정했습니다. 그리고는 동시 통역 등을 통해 관객에게 영어로 인간의 언어를 번역해줍니다.

분명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영화 속 인간 캐릭터는 거의 대부분 일본인이기에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긴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 인본인 캐릭터가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해 보여야만합니다. 하지만 영어권 영화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일본어는 마치 다른 세계의 언어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보니 영어로 이야기하는 개들은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인간 캐릭터는 이질적으로 보입니다. 인간 캐릭터 중에서 그나마 정상이라 할 수 있는 아타리는 거의 말이 없고, 고바야시 시장의 비리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트레이시(그레타 거윅)는 미국인 교환학생이라 인간 캐릭터 중 유일하게 영어로 대화합니다. 이렇게 웨스 앤더슨 감독은 영어와 일본어의 대조를 통해 청각적인 인간 사회의 기괴함을 만들어냅니다.


사실 [개들의 섬]은 일본오 대사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웨스 앤더슨 감독의 의도에 의한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 캐릭터의 기괴함


앞서 언급했지만 [개들의 섬]의 특징 중 중요한 한가지는 인간 캐릭터의 기괴함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판타스틱 Mr.폭스]를 통해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습니다. [판타스틱 Mr. 폭스]의 악질 농장주 3인방은 동화를 원작으로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탐욕스럽고, 흉폭했습니다. 그런데 [개들의 섬]에서는 한술 더 뜹니다. 고바야시 시장은 12세 관람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괴합니다. 그리고 고바야시 시장의 집사는 마치 괴기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보이기도합니다.

주인공인 아타리 역시 기괴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는 경비견 스파츠를 찾기 위해 개인 비행기를 탈취해 홀로 쓰레기 섬에 가는데, 비행기 추락으로 크게 다칩니다. 그렇기에 영화 내내 아타리의 모습은 비행기 부품이 머리에 박혀 있고, 피가 얼굴을 적신 모습입니다. 마치 공포 영화 속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연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타리는 쓰레기 섬에 갇힌 개들을 구하고 고바야시 시장의 음모를 저지시키는 주인공입니다. 좀 더 멋있고, 좀 더 사랑스럽게 캐릭터를 만들어도 될텐데, 웨스 앤더슨 감독은 그러한 안전한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개들의 섬]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 관객에게 시각적인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웨스 앤더슨 감독은 애초부터 어린이를 위한 시각적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노래로 대변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청각적인 선물 또한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의 집단 광기에 대한 우화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그려 넣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명백히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어린 자녀와 함께 [개들의 섬]을 관람할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이러한 점을 꼭 참조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아타리를 명백히 [개들의 섬]의 영웅이다.

그는 쓰레기 섬에서 개들을 구하고 머나먼 섬촌인 고바야시 시장의 음모를 저지시킨다.

하지만 영화 속 그의 외모는 고바야시 시장만큼 기괴하다.



명백히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


지금까지 웅이와 함께 봤던 애니메이션은 솔직히 중학교 3학년인 웅이가 보기엔 조금 유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영화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제 경우는 나이 마흔이 넘었어도 여전히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에 상관이 없지만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웅이 입장에서는 철없는 아빠 때문에 유치함을 참으며 억지로 봐야하는 애니메이션도 분명 여럿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개들의 섬]은 웅이에게 있어서 신선한 충격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착한 어린이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분명 단순하게 영화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다른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영화의 시각적, 청각적 설정까지 꼼꼼하게 따지고나면 확연히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애니메이션만의 개성이 드러납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어린이 애니메이션이 있다면, 이렇게 기괴한 성인용 애니메이션도 필요한 법이죠. 저는 착한 어린이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기괴한 성인 애니메이션도 언젠든지 환영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개들의 섬]을 보기 전에 보려 했던 [판타스틱 Mr. 폭스]를 웅이의 기말 고사가 끝난 후에 웅이와 함께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잊혀졌던 프랑스 애니메이션 [내 이름은 꾸제트]도 챙겨 봐야 겠습니다. [내 이름은 꾸제트]는 [크리스마스의 악몽], [유령신부], [프랑켄위니] 등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과 [코렐라인 : 비밀의 문], [박스트롤], [파라노만], [쿠보와 전설의 악기] 등을 제작한 라이카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연상하게 만드는 기괴함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러고보니 이미 우리 주변에는 [개들의 섬]에 필적할만한 기괴한 애니메이션이 많이 있었네요. 그동안 착한 애니메이션에 심취해 있어서 잠시 잊었는데 [개들의 섬]을 보고나니 다시금 그들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착하고 아름답고 신나고 웃긴 애니메이션이 있다면

기괴하고 암울하고 어두운 애니메이션도 있는 법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다양성 속에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개들의 섬]은 다양성을 위한 유의미한 애니메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