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독전] - 분명 인상적인 스릴러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쭈니-1 2018. 5. 25. 17:17



감독 : 이해영

주연 : 조진웅, 류준열, 차승원, 김주혁

개봉 : 2018년 5월 22일

관람 : 2018년 5월 24일

등급 : 15세 관람가



이 영화가 정말 15세 관람가 맞아?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서부터 불어닥친 할리우드발 블록버스터의 공세는 [데드풀 2]를 거쳐 [한 솔로 : 스타워즈 스토리]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복병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스릴러 영화인 [독전]입니다. 솔직히 저는 얼마전까지만해도 "또 스릴러 영화야?"라며 우리나라 스릴러 영화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독전]이 개봉 첫날부터 [데드풀 2]를 밀어내고 당당하게 일일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하자 슬슬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주말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지난 목요일에 [독전]을 보고 왔습니다.

[독전]을 보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 영화의 관람등급이 15세 관람가라는 점입니다. 사실 저는 [독전]을 주말에 웅이와 함께 볼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번 주말에 [한 솔로 : 스타워즈 스토리]가 개봉하지 않았다면 정말 웅이와 함께 [독전]을 보러 갔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구피한테 엄청 혼날뻔 했습니다. 소재 자체가 마약조직과의 전쟁이다보니 마약 흡입 장면이 여러번 등장하고, 독한 자들의 전쟁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잔혹한 장면도 꽤 자주 나옵니다. 특히 가장 놀라웠던 것은 중국 마약조직의 거물인 진하림(김주혁)의 연인이자 마약중독자인 보령(진서연)의 상반신 노출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15세 관람가 등급이라니...

[독전]에서 또 한가지 놀라웠던 점은 영화 초반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 김성령이 연기한 오연옥의 빠른 죽음입니다. 김성령은 우리나라 중년 여성 배우 중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배우입니다. 그녀의 카리스마는 이미 [표적]에서 류승룡, 유준상, 이진욱이라는 쟁쟁한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도 빛을 발했고, TV 미니시리즈 <미세스 캅 2>에서 김희애에 이어 여성 경찰로 등장하며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독한 남자들만이 득실거리는 [독전]에서 오연옥의 역할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허무하게 초반부터 죽어버리니 조금은 어리둥절하더군요.


마약에 취한 보령의 첫 등장은 정말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서늘했다.

하지만 그녀의 독한 연기보다 더욱 나를 오싹하게 만든 것은

이 영화를 중학교 3학년인 웅이와 함께 봤으면 어쩔뻔 했나? 라는 점이다.



배우들의 독한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다.


[독전]은 분명 독한 스릴러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독함은 아무리 너그럽게 봐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확실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15세 관람가 등급으로 확정한 영화등급분류위원회의 독한 결정 때문만은 아닙니다. [독전]에서 가장 독한 것은 배우의 연기입니다. [독전]은 그 누구도 실체를 본 적이 없는 한국 마약조직의 거물 이선생을 잡기위한 형사 조원호(조진웅)의 활약이 주요 내용입니다. 조원호는 이선생을 잡기 위해 이선생에게 버림받은 조직원 서영락(류준열)을 이용합니다. 이선생 마약조직과 중국 마약조직 사이의 연락책인 서영락의 도움으로 중국 마약조직 보스 진하림 앞에서는 이선생 마약조직의 중간보스 박선창인척 하고, 박선창(박해준) 앞에서는 진하림인척 하며 이선생이 진하림과의 거래에서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립니다.

일단 [독전]은 조진웅과 류준열의 연기가 영화의 중심을 잡습니다. [아가씨], [사냥], [보안관], [해빙], [대장 김창수] 등의 영화에서 코믹과 진지한 연기를 오고 갔던 조진웅은 그러나 스릴러 영화에서는 특유의 코믹한 이미지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독전]에서는 말 그대로 독하게 마음 먹은 듯, 기존의 코믹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집니다. 사정은 류준열도 마찬가지입니다.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청춘 스타로써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류준열은 그러나 [더 킹], [침묵]에 이어 [독전]까지 청춘 스타보다는 개성강한 연기파 배우로써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조진웅과 류준열이 영화의 중심을 잡았다면 김성령을 시작으로 김주혁, 진서연, 박해준, 차승원, 김동영, 이주영 등 조연 배우들이 미친 연기력으로 영화를 휘어잡습니다. 영화 초반 허무하게 죽음으로써 제 뒷통수를 제대로친 김성령과 중국 마약왕 커플로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산한 김주혁, 진서연, 그리고 이선생 조직의 중간보스 박선창과 브라이언을 연기한 박해준, 차승원과 마약제조자인 농아 남매를 연기한 김동영, 이주영까지... [독전]은 배우들의 독한 연기력에 의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선생을 체포하기 위한 경찰팀원들의 미약한 존재감 속에서 조진웅은 빛났고,

마약조직원들의 미친 존재감 속에서 류준열은 침착하게 안정감을 부여했다.

조진웅과 류준열이 있었기에 [독전]의 독한 주연들의 연기는 과하지 않았다.



이선생은 누구인가? (이후 영화의 스포가 존재합니다.)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는 분명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스릴러 영화의 경우, 영화가 재미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짜임새있는 스토리 라인입니다. 그렇기에 [독전]은 분명 배우들의 폭발적인 연기력이 엄청난 영화이지만, 이 영화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스토리 전개가 얼마나 짜임새있고 촘촘한가를 먼저 살펴봐야합니다.

[독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선생의 정체입니다. 이선생을 잡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노력한 조원호는 자신의 정보원인 수정(금새록)을 이선생에게 잃은 후 더욱 독기를 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조원호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이선생의 인천 마약공장에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고, 인천 마약공장 폭발 현장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서영락을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 이선생의 마약조직에 접근하는데 애 먹은 조원호 입장에서 서영락은 이선생 마약조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결국 조원호는 서영락을 설득하여 이선생의 마약 조직에 한걸음씩 접근해 들어갑니다.

자!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선생 마약조직의 규모입니다. 재계의 거물 이우해운의 회장 이학승이 이선생의 스승일 정도로 이선생 마약조직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를 자랑합니다. 특히 중국 길림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베일에 쌓인 마약왕 진하림의 정체를 알아내고 먼저 연락을 취할 정도로 정보력도 뛰어납니다. 그런데 과연 수년동안 자신의 조직을 뒤쫓은 조원호의 존재를 몰랐을까요? 재계 거물을 스승을 둘 정도의 파워가 있다면 경찰 조직에도 검은 손길이 뻗쳐 있을텐데... 태연하게 조원호가 진하림 행세를 해도 눈치채지 못하고, 인천 마약공장 폭발 현장의 생존자 서영락이 조원호와 손을 잡고 스파이 짓을 해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결국 [독전]은 가장 중요한 설정에서부터 이렇게 헛점을 노출시킵니다.


조원호가 진하림 행세를 하는 동안 나는 의구심을 떨쳘 수가 없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조직력을 가진 이선생이 조원호를 모른다고?

그리고 보령 행세를 하지만 전혀 보령같지 않은 여형사 소연(강승현)도 옥의 티이다.



결국 허점 투성이 설정에 마지막 반전의 모든 힌트가 담겨 있다.


[독전]은 이선생의 정체에 한걸음씩 다가가는 조원호의 활약담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선생의 정체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조원호가 진하림 행세를 하며 이선생의 마약조직에 잠입한다는 설정 자체에 큰 구멍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혹시 이선생은 조원호의 존재와 서영락의 배신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내버려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까지 생각에 미치자 이후부터 이선생의 정체에 대한 모든 의문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선생은 바로 서영락입니다. 영화 후반 브라이언이 잠시 자신이 이선생이라고 나서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관객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단 한장면도 나오지 않았던 캐릭터가 느닷없이 "내가 이선생이요."하고 나설리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독전]에 한번 이상 모습을 드러낸 캐릭터 중에 하나가 이선생이라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서영락 외에는 그럴만한 캐릭터가 없습니다. (죽었던 캐릭터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 이상...)

문제는 이러한 반전이 처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예상했던대로 서영락이 이선생임이 밝혀지자 제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영화는 [유주얼 서스펙트]입니다. [식스센스]와 더불어 최고의 반전 영화로 명성이 높은 [유주얼 서스펙트] 역시 베일에 가려진 카이저 소제를 잡기 위한 수사관 데니스 쿠얀(채즈 팔민테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산페드로 부두 폭발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인 버벌(케빈 스페이시)의 증언을 통해 카이저 소제의 정체를 밝혀나갑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버벌이 바로 카이저 소제입니다. 이러한 [유주얼 서스펙트]의 반전은 1996년 개봉 당시 관객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러한 [유주얼 서스펙트]가 있기에 제 개인적으로 [독전]의 반전은 미지근하기만 했습니다.


서영락은 시종일관 침착했다.

과연 그의 침착함은 인천 마약공장 폭발사고로 죽은 부모에 대한 분노 때문일까?

아니, 그의 침착함은 분노가 아니었다.

일개 조직원이 갖기엔 과한 침착함, 그것만으로도 그의 정체는 이미 드러난 것과도 같다.



분명 인상적인 스릴러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독전]은 분명 인상적인 스릴러 영화입니다. 먼저 배우들의 독한 연기는 오랫동안 회자들 정도입니다. 주조연 배우들 대부분이 너무 독한 연기를 펼치다보니 평범한 연기를 선보인 조원호 수사팀 대원들의 연기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감각적인 로케 촬영 장소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선생의 마약제조 공장이 용산역에 있다는 설정도 파격적이었고, 농아남매가 마약을 제조한 소금공장도 이해영 감독의 감각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마지막 열린 결말도 좋았습니다. 한국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설원의 한적한 집으로 서영락을 쫓아간 조원호. 그는 서영락에게 "넌 살면서 행복해본 적 있냐?'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카메라가 멀리 클로즈 아웃되는 동시에 한발의 총성이 울리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과연 조원호가 끝내 서영락을 죽인 것일까요? 아니면 서영락의 손에 조원호가 죽임을 당한 것일까요? 결국 이해영 감독은 [독전]의 결말을 관객에게 맡깁니다.

이렇게 인상적인 부분이 많은 [독전]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 이상의 평가를 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이선생의 정체에 대한 반전이 너무 쉬웠습니다. 만약 [유주얼 서스펙트]가 없었다면, 아니면 이선생이라고 의심할만한 미끼 캐릭터가 더 잘 구축되었다면, 서영락이 이선생이라는 반전에 박수를 보낼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저는 그저 무덤덤했습니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마지막 반전을 예측하고나니 [독전]은 그저 형사와 마약조직간의 총싸움이 난무하는 액션영화처럼 비춰졌습니다. 어쩌면 [독전]에 대한 저의 박한 평가는 스릴러 영화만큼은 깐깐하게 평가하는 제 개인적 취향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독전]의 마지막 반전이 [유주얼 서스펙트]와 너무 닮았다는 것을 바뀌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독전]의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제게 남아버렸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고나서 처음 생각해 놓은 리뷰의 제목은

"이 영화에서 가장 독한 것은 15세 관람가 등급을 매긴 영화등급분류위원회의 결정이다"였다.

하지만 그러기엔 배우들의 독한 연기가 아까웠고,

몇몇 감각적인 장면들이 너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