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바람 바람 바람] - 차라리 모르는게 약이 될 수 있는 유쾌한 바람 이야기

쭈니-1 2018. 4. 10. 10:43



감독 : 이병헌

주연 : 이성민, 신하균, 송지효, 이엘, 장영남

개봉 : 2018년 4월 5일

관람 : 2018년 4월 7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결혼은 원래 롤러코스터같다.


결혼이란 서로 살아온 삶의 방식이 다른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무리 깊은 사랑을 했던 사이라고 할지라도 살아가면서 지속적으로 다툼을 벌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자체가 생각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데, 결혼 전의 삶의 방식마저 다르니 처음부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알콩달콩 산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신혼 초에는 사랑이라는 콩깍지 덕분에 나와는 다른 배우자의 모든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흘러 사랑이 조금씩 식으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결혼이라는 롤러코스터가 펼쳐집니다.

지난 주말 제가 딱 그러했습니다. 금요일까지만해도 저와 구피는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넘쳤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토요일 아침에 터졌습니다. 아침에 너무 일찍 잠에서 깬 저는 곤히 잠이든 구피와 웅이를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거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라면 하나를 끓여 먹었습니다. 그러나 라면을 거의 다 먹었을때쯤 구피가 거실로 나와 버럭 화를 내는 것입니다. 일찍 일어났으면 가족을 위해 밥을 할 생각은 안하고 어떻게 혼자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냐며,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등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막말이 구피의 입에서 쉴새없이 쏟아져나오자 저는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결국 구피는 제가 씻는 사이 웅이를 데리고 나가버렸습니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저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배가 고파서 라면 하나 끓여 먹었다고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무작정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갈 곳이 없어서 마침 화장실 공사중인 회사에 들렀다가 일찍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혼자 회사 근처 영화관에서 [바람 바람 바람]을 봤습니다. [바람 바람 바람]은 저처럼 결혼 생활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중년 부부의 사랑과 위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그래도 영화를 보며 혼자 실없이 웃고나니 화가 좀 풀리더군요. 저녁때쯤 집에 도착하니 구피의 화도 풀린듯하여, 저와 구피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주말을 보냈습니다. 며칠 후면 결혼한지 만15년이 됩니다. 15년이라는 세월동안 이렇게 별 일도 아닌 것으로 화를 내고 섭섭해 했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풀리기도 하고,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어떨때 구피는 천사같이 예쁘고, 착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어떨땐 악마같이 무섭고, 못됐고, 밉다.

극과 극을 오고가는 결혼의 롤러코스터. 이게 결혼의 참맛은 아닐까?



바람둥이 그들...


[바람 바람 바람]은 불륜에 빠진 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모범택시를 모는 석근(이성민)은 자타공인 바람둥이입니다. 그는 20년의 결혼생활동안 셀수도 없이 많은 여성들과 바람을 폈습니다. 하지만 죄책감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그에게 바람은 그저 심심한 결혼생활을 복돋아주는 재미있는 놀이에 불과합니다. 바람을 피우고나면 아내 담덕(장영남)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진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펴기도 합니다.

그와는 달리 결혼 8년차 봉수(신하균)는 아내 미영(송지효)을 일편단심 좋아하는 순진남입니다. 손님없는 이탈리아 식당을 운영하지만, 중국 레스토랑을 꿈꾸는 그는 아내의 오빠인 석근의 바람끼가 그저 한심해 보이기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제니(이엘)가 등장합니다.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당구장에서 당당하게 치맛속 팬티를 벗는 그녀는 영업이 끝난 봉수의 가게에 찾아와 "나 당신과 자고 싶어요."라고 속삭입니다. 결국 석근의 바람끼를 나무라던 봉수는 제니의 유혹에 넘어가 버립니다. 

유교사상이 뿌리 깊은 우리나라에서 불륜은 그렇게 유쾌한 소재가 아닙니다. 불륜은 우리의 전통적 가정을 깨는 범죄행위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람 바람 바람]은 불륜을 코미디 소재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자녀의 부재입니다. 석근과 담덕, 봉수와 미영 사이엔 자식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부모의 신성한 의무에 얽매일 필요없이 서로 마음이 안맞으면 깔끔하게 이혼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이 두 부부는 맞바람을 피고 있습니다. 석근이 20년간 수 많은 여성들과 바람을 폈듯이 담덕은 맹인 안마사 범수(양현민)와 바람을 폈고, 봉수가 제니와 바람을 폈듯이 미영은 가게 주방장 효봉(고준)과 바람을 폈습니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석근, 봉수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그들의 유쾌한 소동극에 모든 초점을 맞춥니다.


제니와 바람을 피움으로써 도덕적 선을 넘어버린 봉수

하지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미영도 봉수 몰래 바람을 폈으니, 안걸리면 장땡이라더라.



이유없는 불륜은 없다.


아무리 [바람 바람 바람]이 불륜을 마냥 가볍게 웃고 즐길 오락거리로 만들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들이 자유섹스주의자라서 바람을 핀 것은 아닙니다. 네 사람 모두에게 그럴듯한 이유가 있습니다. 석근은 롤러코스터 설계자였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롤러코스터를 디자인했는데,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채우기 위해 여성의 나체에 집착합니다. 롤러코스터의 아름다운 곡석은 그가 바람을 핀 여성들의 나체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더이상 여성의 나체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없게 되자 롤러코스터 디자인을 그만두고 순수하게 바람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봉수가 제니와 바람을 핀 것은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줬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음식을 싫어하지만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해야만 하는 봉수. 가게는 미영의 것이고, 그가 사는 집은 석근의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는 심적으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중국 레스토랑을 하고 싶다고 말에 미영에게 매번 무시당하하지만 찍소리도 못합니다. 그런데 제니는 봉수가 만들어준 중국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말해주고, 그의 꿈을 응원해줍니다. 미영 앞에서 항상 위축되었던 봉수는 제니와의 바람으로 용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담덕의 바람은 외로움 때문입니다. 석근을 사랑하지만, 항상 밖으로만 나돌아다니는 석근의 바람끼를 잡을 수 없었던 그녀는 맹인 안마사 범수와의 바람으로 외로움을 잠재웁니다. 미영의 바람은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미영 앞에 위축된 봉수는 언제나 미영의 성적 욕구를 채우지 못했고, 미영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종마처럼 튼튼한 근육을 지닌 효봉과 바람을 피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이유없는 불륜은 없습니다. 바람을 피운 사람들은 모두가 제각각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고해서 그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람 바람 바람]은 불륜을 가벼운 농담처럼 다루고 있지만, 결국엔 그들의 행위에 대한 댓가가 영화 중반 이후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행위엔 그에 따른 댓가가 뒤따르는 법이다.

바람을 가벼운 오락처럼 즐겼던 석근은 담덕이 죽은 후 큰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렇다면 봉수와 미영은 어떤 댓가를 치루게 될까?



그들의 행위에 대해 치뤄야할 댓가.


확실히 석근은 20년동안의 바람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룹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은 담덕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죄책감이 그를 억누른 것입니다. 자신의 사랑을 그토록 갈구했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그는 담덕이 범수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과 범수가 자신보다 담덕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분노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제니와 바람을 피운 봉수와 미영의 댓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치뤄야할 댓가는 각자의 바람 상대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중국 레스토랑을 차렸지만, 이탈리아 음식 주방장인 효봉은 봉수의 가게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미영에게 치근덕됩니다. 결국 미영은 석근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처지가 됩니다. 석근의 바람끼에 욕을 했던 그녀로써는 굴욕적인 일이죠. 봉수의 댓가는 좀 더 간담이 서늘합니다. 제니가 봉수의 레스토랑에 취직을 하고 봉수의 옆집인 석근의 집에 가사도우미로 들어오며 봉수를 직접적으로 위협한 것입니다. 결국 봉수와 미영의 불륜은 부메랑이 되어 두 사람을 괴롭힙니다.

불륜은 대체적으로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짜 사랑을 해도 결혼으로 이어지기 어렵고, 결혼으로 이어진다고해도 영원히 행복하기 힘듭니다. 하물며 가짜 사랑인 불륜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짧은 순간의 육체적 쾌락일 뿐입니다. 그러한 쾌락을 우리는 행복이라 착각할 뿐입니다. 석근은 담덕의 죽음 이후 그러한 사실을 깨달았고 후회의 나날을 보냅니다. 봉수와 미영은 불륜 상대의 치사한 반격으로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봉수와 미영은 제니와 효봉과의 관계가 진정한 행복이 아닌, 두 사람의 가정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진짜 행복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에... 미영의 임신은 그러한 깨달음의 과정이 됩니다.


미영은 임신을 한다.

그럼으로써 봉수와 미영 부부는 신성한 부모로써의 의무를 짊어지게된다.

더이상 그들에게 불륜이라는 육체적 쾌감의 놀이는 허용되지 않는다.



모르는게 약이다.


솔직히 [바람 바람 바람]은 제 도덕적 기준으로 본다면 굉장히 발칙한 영화입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불륜이라는 도덕적 범죄행위를 저지르지만, 봉수와 미영은 부모가 되면서 그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까지합니다.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로 2007년 개봉한 [바람피기 좋은 날]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바람피기 좋은 날]은 이슬(김혜수)과 작은새(윤진서)에게 불륜의 댓가를 치루게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2015년 간통죄가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으며 폐지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람피기 좋은 날]이 개봉한 2007년 당시만해도 결혼한 유부남, 유뷰녀의 바람은 법적 처벌을 받았지만, [바람 바람 바람]이 개봉한 2018년에는 도덕적 책임만 뒤따를 뿐입니다.

그렇기에 [바람 바람 바람]은 봉수와 미영의 불륜을 한바탕 소동 끝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 버립니다. 어쩌면 봉수는 평생 미영이 자신의 레스토랑 직원이었던 효봉과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모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미영 또한 봉수와 제니의 관계를 평생 모를 것입니다. 그렇기에 봉수와 미영의 결혼생활을 위태로워보입니다. 차라리 두 사람의 바람이 상대방에게 밝혀지고,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는 것을 영화를 끝냈다면 뒷끝이 좀 더 깔끔했을텐데...

어쩌면 모르는게 약일지도 모릅니다. 20년간 숱한 여자들과 바람을 폈던 석근이 담덕이 핀 단 한번의 바람에 분노했듯이, 봉수와 미영 역시 자신이 핀 바람은 생각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며 가정을 파탄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이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니까요. 그래도 이 사건을 통해 봉수와 미영이 '세상에 착한 불륜은 없다'라는 교훈을 얻고 착실하게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또한 도덕적인 결말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2015년 개봉한 [스물]을 통해 희망은 없지만 그래도 젊음 하나로 유쾌하게 빵빵 터지는 청춘을 그렸던 이병헌 감독은 이번엔 중년의 위기를 가벼운 코미디로 변환하며 "짧은 인생, 심각할 필요없잖아. 그냥 즐기자."라고 관객을 유혹합니다. 저는 약간 보수적인 성격이지만  [바람 바람 바람]을 보기 전 구피에게 섭섭함을 느낀터라 이 영화가 더욱 유쾌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통한 대리 불륜으로 구피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 셈이니...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어도 세상에 착한 불륜은 없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그만큼 가정을 지킬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어떤 그럴듯한 변명이 있더라도 불륜은 가정을 지킬 책임을 외면하는 행위이다.

아! 그래도 영화를 보며 느끼는 대리 불륜까지는 이해해주는 것을... ^^